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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희 Nov 16. 2018

날씨에 대한 사소한 기억들

디뮤지엄 <Weather: 오늘, 당신의 날씨는 어떤가요?> 

우리는 작은 메모 조각이나 낙서 한 장, 사진 한 장으로 순간들을 기억한다

과거, 그러니까 지나간 시간이라는 건 어떠한 수를 써도 다시 완벽하게 재현될 수 없다. 어떤 순간이 완벽하게 재현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적어도 그때 내가 느낀 감각들을 완벽에 가깝게 기억하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그러면서도 모든 순간을 완벽하게 기억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본능적으로 알기에 우리는 약간의 수를 쓴다. 


예컨대 그 순간에 함께한 사람에 대해서, 느낀 감정에 대해서, 들었던 노래에 대해서, 먹었던 음식들에 대해서 기억을 온전히 보관하는 데에 중요한 순서대로 다시 재구성하고 그것을 기억한다. 혹은 기록한다. 이렇게 지나간 순간들을 기억하고자 하는 노력은 늘 파편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생각보다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 속에 '날씨'는 꽤나 중요하고 우선시 되는 파편 중 하나일 테다. 어린 시절 일기장을 떠올려도 그날의 날씨를 적는 앙증맞은 한 칸이 늘 존재했음은 날씨가 과거를 떠올리는 데 많은 단서를 쥐고 있기 때문이리라. 어떤 옷을 입을 것인지에서부터 당시의 나의 활동 반경을 결정해주는 일까지. 그래서 나의 감정과 감각에 꽤 많은 역할을 미치는 것이 바로 날씨이다. 


어떤 것을 건들이느냐에 따라 시시각각 변할 수 있는 기억의 빛깔들

한편 올해는 너무 덥거나, 너무 춥다는 말들을 정말 많이 하게 되었던 해였다. 1월의 극한 추위의 겨울이 있었고 8월의 뜨거운 여름이 있었다. 날씨 주의보를 알리는 재난 문자도 꽤나 자주 울렸고, 이제 다시 더 추울 겨울을 걱정하고 있다. 극단적인 두 계절이 점점 더 견디기 어려울 정도가 되어버려 날씨에 대한 극단적인 표현만을 하게 되는 날들인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날씨가 다 인가. 언제 왔었나 싶을 정도로 짧은 순간이었지만 분명 맑고 높은 하늘이 예쁘던 가을밤도 있었고, 탁한 공기를 깨끗이 씻어내주는 것 같았던 비 내리는 아침도 있었다. 중요한 기억의 파편인 날씨는 그 또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느끼느냐에 따라 수만 가지의 방식으로 기억될 것이다. 거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전시가 있다. 


바로 디뮤지엄의 <Weather : 오늘, 당신의 날씨는 어떤가요?>가 하고 있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오늘, 당신의 날씨는 어떤가요?

 

디뮤지엄(D MUSEUM)은 2018년 5월 3일부터 11월 25일까지 날씨의 다양한 요소를 사진, 영상, 사운드, 설치 작품을 통해 감각적으로 경험하면서 날씨에 대한 감수성을 확장하는 전시 <Weather: 오늘, 당신의 날씨는 어떤가요?>를 개최합니다. 
(...)
총 세 개의 챕터 "날씨가 말을 걸다", "날씨와 대화하다", "날씨를 기억하다"로 크게 나뉘어 전개되는 전시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그리고 여섯 가지 이야기가 담긴 한 권의 수필집처럼 구성되어, 어쩌면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매일의 날씨를 작가 개개인의 색다른 시선과 특별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을 통해 감각적으로 경험하게 합니다. 이를 통해 내면 어딘가에 자리한 날씨에 관한 기억과 잊고 있던 감정을 새로이 추억하고, 익숙한 일상의 순간이 지닌 특별한 가치를 발견하기를 바랍니다.

디뮤지엄 공식 전시 소개 中


전시는 날씨의 요소들을 '햇살, 눈, 비, 안개, 구름' 등으로 나눈 후, 아티스트들의 작품들을 그 구획에 맞추어 보여준다. 우리는 전시에서 아티스트가 말하는 제각각의 날씨에 대한 기억으로 소환되고 그를 보며 나의 기억을 떠올린다. 전시 소개에 쓰인 '날씨에 대한 감수성을 확장한다'는 표현. 그 표현을 적확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그건 엄청나고 대단한 것을 보고 있다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별 것 아니라고 지나치던 것에 대한 나의 감각들을 간지럽히는 것이었다. 사소하지만 아름다울 수 있는 일상의 영감들을, 화창한 느낌이 가득한 공간에서부터 어두 컴컴하고 축축한 안개로 뒤덮인 공간 까지를 천천히 걸으며 느낄 수 있었다.


평소였으면 신경쓰지 않았을 모습을 영상에 담았다

전시를 다 본 후 나오니 해가 쨍했다. 왜인지 내게 느껴지는 햇살이 더 따뜻하고 어여쁘게 느껴졌다. 그 날 식당에서 사이다를 따른 유리컵에 비친 햇빛을 담아두고 싶어 영상을 찍기도 했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일상의 영감은 확장되어 예술이 된다. 그리고 그 예술은 다시 작품을 경험하는 이들에게 제각각의 이야기가 된다. 그럼 이제 그건 더 이상 사소한 것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전시 정보 

<Weather : 오늘, 당신의 날씨는 어떤가요?>

2018.5.3-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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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뮤지엄 전시와 다양한 공간의 기억을 담은 브이로그입니다 :)

참고로 디뮤지엄은 3:40 부분부터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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