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이 있는, 쉴 곳을 알아둘 걸

나는 단단하지만,

by Hee

하필 비가 올게 뭐람.

바람 쐬고 온다며 후다닥 옷을 갈아입고 나온 참인데

건물 사이 울창한 나무를 몇 그루 지나자

얇은 빗방울이 떨어진다.


도통 내보일 자신 없는 이야기가

가슴을 꽉 채워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깜깜해지면 금방 후회될 몇 마디를 벌써 뱉어서일까

남은 말이 속에서 꿈틀대느라 오장육부를 밀어내는 탓일까

보이는 게 없어서 속상했던 때를 철이 없을 때라 한다면

누구든지 붙잡고 상관없이 한잔 기울이며 털어놓던 그때가 심신 건강엔 더 좋았지 싶다.

읽히고, 이해되고, 한 수 넘어까지 순식간에 유추되니

어떤 말도, 행동도 쉽게 할 수가 없다. 그렇게 나 스스로에게 눈치 보여 얼음이 되는 날이 더러 생기고야 만다.


비가 거세어지지 않았으니

아직 추스러지지 않은 마음으로 들어가진 말아야지.

흙내음도 일으키지 않는 얄궂은 빗물 사이로

약속 있다는 듯 길거리를 흐느적거리다 보면

좀 낫겠지 싶어서.


믿을 구석 없이 어스름한 거리를 헤집는다.


왜 하필, 지금 비는 내려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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