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인형극
어둠이 켜졌다
잃어버린 시야를 찾아 빠르게 굴러가는 눈동자
정적을 타고 흘러가보면 어느새 가까워지는 진짜 빛
관객은 일제히 입을 다문다
이 빛을 이용해서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모든 빛과 소리는 휘발성을 가졌으니
관객 여러분 집중해주세요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세상이 눈감으면
비로소 어둠에서 스며나오는 형체가 있다
작은 빛을 동력삼아 쭈뼛거리는 익숙함 덩어리
모든 그림자들은 슬프게 등장한다
나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거 아세요?
나는 한순간도 당신 곁을 떠난 적이 없었어요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진 게 아니랍니다
그런데, 정말 나의 이야기가 궁금한가요?
각자의 어둠을 해매는 눈동자들 속에서
그림자는 할 말이 없었다
누군가는 기억하고 있을 몸짓만 쭈뼛거리며
깨진 거울조각들을 바닥에 뚝뚝 흘렸다
우리는 암묵적으로 서로를 알고 있었다
똑같은 장소를 찾아가고
똑같은 사람들을 만나고
똑같은 언어를 듣고
똑같은 습관을 가지고
똑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똑같은 트라우마를 겪었다
똑같은 곳에서 세상을 처음 보았고
똑같은 생각을 하며 세상을 보았다
똑같은 우연에 서로를 확인하고
똑같은 기시감을 느끼며 서로를 외면했다
무엇이 진짜인지 무엇이 가짜인지
그건 모르는 거예요
이 세상에 과연 가짜가 있을까요
그럼, 당신의 그림자는 가짜인가요
그럼, 누가 그림자이고 누가 가짜인가요
그림자로 남겨지는 기분이 어떤지 알아요?
그림자의 기분까지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우리는 모두 바쁜 사람들이었다
관객들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림자들은 서둘러 사라질 채비를 했다
온통 어둠이어도 괜찮아요
원래 세상은 어둠의 형태로 시작되었으니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진 게 아니랍니다
모든 빛과 소리는 휘발성을 가졌으니
기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무런 책임은 없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그림자 여러분들
그렇게 어둠은 잠시 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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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의 입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