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엄마, 당신의 아들..

린 램지 감독, <케빈에 대하여>

by HANA



아이가 운다. 뭐가 불만인지 도무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울어댄다. 엄마는 그런 아이를 이해할 수가 없다. 아이가 왜 우는지도, 어떻게 아이를 달래주어야 하는지도 알 수가 없으며, 자꾸만 자기를 괴롭히는 이 아이가 귀찮고 짜증이 난다. 여러모로 미성숙한 엄마는 결국 아이의 눈을 마주보며 그의 요구를 들어주는 대신, 우는 아이를 그냥 울게 내버려두는 방법을 택한다. 유모차를 끌고 공사장 앞을 지나가던 엄마는 순간 그 앞에 멈추어 선다. 공사장의 소음 때문에 아이의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된 것이다. 그녀는 드디어 해답을 찾은 듯 한동안 공사장 앞에 멍하니 서 있는다. 시끄럽게 울리는 드릴 소리 속에서 아이는 소리 없이 울고 있다.






당신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것



난 네가 태어나기 전에 더 행복했어.

너도 알지?

린 램지 감독의 영화 <케빈에 대하여>는 살인마 아들을 바라보는 엄마의 시점으로 그려지고 있어 더욱 신선하게 느껴진다.

어느 날, 한 고등학교에서 모든 문이 잠기고 전교생이 학교에 갇힌다. 그리고 한 명 한 명 어딘가에서 날아온 화살을 맞아 죽어간다. 피 튀기는 대학살이 끝나자, 학교 문을 열고 당당하게 인파 속으로 걸어 나오는 한 소년. 그는 순순히 수갑을 차고 경찰에게 연행된다. 자신에게 욕을 하며 울먹이는 사람들 속에서 엄마를 찾고, 그녀에게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다. 어쩌면 이 영화에서 개연성을 엮어왔던 하나의 큰 사건은 바로 이 살인사건일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살인사건만을 다루지 않으며, 이를 살인마의 엄마 시점으로 이야기하며 좀 더 깊숙하고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엄마의 개인사부터, 살인마 ‘케빈(에즈라 밀러)이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성장했고 성격은 어떻고 그의 사회생활은 어땠는지를 다 하나하나 그려주고 있다. 케빈이 맺는 인간관계와, 케빈과 엄마가 맺었던 인간관계, 혹은 엄마의 성격과 욕구와 사회적 관계 등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살인사건 자체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그런 사건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더욱 관객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케빈은 축복 받지 못한 아이였다. 케빈은 어쩌다가 덜컥 생긴 계획되지 않은 아이였고, 그의 임신소식을 알고도 엄마는 전혀 기뻐하지 않았다. 케빈의 엄마는 모험가였고 성격상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있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부모로서의 어떠한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채 덜컥 엄마가 되어버린 그녀. 한 아이에게 완전히 묶여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할 수 없게 된 그녀에게, 케빈은 예뻐 보일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항상 프랑스로 가기를 꿈꾸었다. 그녀는 아직 어린 케빈에게 프랑스 이야기를 하며 너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되었다는 식의 말을 많이 한다.


영유아기, 그 중에서도 생후 2년은 한 인간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이다. 자신의 가장 가까운 사람인 엄마와의 ‘애착’이 형성되는 시기이며, 이를 통해 아이는 세상에 대한 ‘신뢰성’을 배운다. 이 신뢰성을 바탕으로 아이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을 갖게 되고, 안정된 정서를 얻어 삶을 살아가게 된다. 발달심리학자 ‘에릭슨’은 인간은 전 생애에 걸쳐 발달을 하는데 각 사회성마다 발달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가 있으며, 그 시기를 놓치게 되면 인간은 평생 그 사회성을 얻기가 힘들다고 하였다. 생후 2년은 ‘신뢰성’이 발달하는 최적의 시기로, 이 시기에 엄마와의 애착이 잘 형성되지 않고 불안정한 정서상태를 유지했다면, 이 아이가 나중에 성인이 되었을 때도 세상에 대한 불신과 불안정한 정서 및 인간관계를 보여 건강한 성인이 되기가 힘들다. 그만큼 세상과 소통하는 첫 번째 관문인 영유아기는 한 인간에게 있어서 정말 중요한 시기인 것이다.

케빈은 불안정한 영아기를 보냈다. 아기가 운다는 것은 욕구 혹은 두려움이다. 아이가 울 때 엄마가 잘 반응해주고 자신의 욕구와 두려움을 해소해준다면, 아이는 엄마에 대한 믿음과 함께 세상에 대한 믿음도 생긴다. 그러나 케빈의 경우는, 엄마가 케빈의 울음에 반응을 해주지 않았다. 자신을 자꾸 귀찮게 괴롭히는 아기, 원하지도 않았던 아기가 자꾸 우니까 그녀는 짜증이 났을 것이다. 실제로 그녀는 케빈에게 웃으면서도 얼굴엔 너 때문에 힘들어 죽겠다는 표정이 가득했고, 웃는 표정조차도 매우 어색했다. 아무리 말 못하는 아기라지만, 엄마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케빈은 충분히 느꼈을 것이다. 결국 엄마는 케빈의 울음을 무시하고 방치하게 되는데, 여기서 케빈은 엄마에 대한 불신감과 이 무서운 세상에 혼자 버려졌다는 두려움이 마음 한 곳에서 싹 텄을 것이다. 엄마와 케빈의 이 불안정한 애착관계가 훗날 일어나는 엄청난 사건에 대한 복선의 기능을 하고 있다.

유아기에도 케빈과 엄마의 불안정한 관계는 계속되어 간다. 원래 모험을 좋아하는 엄마로서는 지옥인 가정생활. 그래도 케빈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미성숙한 부모인 그녀는 자신의 본심을 다 숨기지는 못한다. 전혀 진심도, 사랑도 느껴지지 않는 엄마와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케빈. 영화 속에서 케빈이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직접적인 장면이 나오지는 않지만, 어린 아이에게 엄마의 사랑은 절대적이며 모든 인간은 본능적으로 모정을 갈구한다. 모정이 충족되어야만(특히 이 유아기에), 우리는 올바르고 정상적인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 케빈은 자기가 부모로부터 버려진 아이라고 생각하며, 자기에게 대하는 엄마의 태도에서 그 어떤 진심 어린 사랑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엄마에게 심술을 부린다. 아빠에겐 말도 잘하고 살갑게 대하면서도 엄마에게만 유독 찬바람이 불며 엄마 말도 잘 듣지 않는다. 그러나 케빈이 엄마를 절실하게 원하고 있었다는 것은 그가 아플 때 잠깐 나타나는데, 케빈은 엄마에게 자신의 아픈 몸을 기대어 그녀가 읽어주는 <로빈 후드>를 듣는다. 평소 그렇게 좋아하며 따르던 아빠도 마다하고 말이다. 사람이 아프면 자신이 필요로 하는 사람을 찾듯, 케빈은 엄마의 품을 찾았다. 다 낫자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 케빈이었지만, 그는 엄마가 읽어주었던 <로빈 후드>처럼 활을 쏘며 노는 취미를 얻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활의 크기는 커지고 결국은 그 활이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는데 한 몫을 했지만 말이다.


아이러니한 건, 결국 그 활로 아빠와 여동생을 쏴 죽인다는 것이다. 케빈은 평소 아빠와는 사이가 좋았는데, 엄마에게 보여주기 위해 아빠에게 활시위를 당겼다는 것이 소름이 돋았다. 결국 그나마 정상적인 인간관계라고 생각되어졌던 아빠와의 관계도 사실은 정말 비정상적인 인간관계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케빈과 아빠의 대화는 의미 없는 이야기들뿐이다. 그 둘이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나오지 않으며, 케빈과 아빠의 관계도 겉으로는 좋아 보이지만 전혀 알맹이 없는 피상적인 관계였을 뿐이었다. 그가 정말 아빠와 진정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고 그를 정말 사랑했다면, 그에게 활시위를 당기진 않았을 것이다. 케빈은 그 누구보다도 엄마의 관심과 사랑을 절실하게 원하고 있었고, 그게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엄마에 대한 원망과 미움으로 그녀에게 심술을 부리는 것이다. 그녀에게 소중한 남편과 딸을 죽이면서 말이다. 그러면서도 케빈은 엄마를 죽이지는 않는다. 케빈에게 사랑을 가르쳐 준 사람은 없었고, 사랑이 뭔지도 모르지만, 엄마라는 존재와 모정에 대한 끈을 놓지는 않고 있는 것이다. 결국 케빈이 원했던 것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엄마의 ‘사랑’이었다.

그가 처음 살인사건을 계획하게 된 계기가 바로 ‘부모의 이혼소식’을 듣고서이다. 어느 날 밤, 케빈은 물을 마시러 나왔다가 우연히 부모님의 대화를 듣게 된다. 그 대화 속엔 이혼 얘기부터 시작해 케빈에 대한 이야기도 섞여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케빈은 무언가에 한 대 얻어맞았다는 듯이 무서운 표정이었다. 부모님의 대화를 엿들으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안 그래도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는 케빈이다. 또다시 한 번 더 버려질 것에 대해 생각하니 두려웠던 것일까. 분노가 치밀었을 수도 있겠다. 그동안 참아왔던 분노가 결국 그를 활을 잡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엄마만 빼고 모든 사람들에게 화살을 날린다.







너의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








빨강의 메타포



영화에서 ‘빨간색’의 이미지가 많이 등장하는데, 이는 눈여겨볼 만하다. 처음부터 토마토축제로 시작하며, 핏물과도 흡사해 보이는 시뻘건 토마토 물에 범벅이 된 케빈의 엄마 '에바'(틸다 스윈튼)는 떠밀리다가 결국 사람들에게 짓밟혀 사라져 간다. 그녀의 집, 어쩌면 그녀의 내면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간도 빨간색으로 물들어 있으며, 그 공간에서 세상과 소통하는 창문에 조차도 빨간 페인트로 범벅이다. 그녀가 세상을 향해 타고 나가는 차에도 빨간색이 가득하다. 이렇게 피로 물든 그녀의 세상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녀는 계속해서 닦아내고 손을 씻을 뿐이다. 그러나 아무리 씻어대고 문질러대도 자국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과거 회상 장면에선 빨간 빛이 강렬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영화의 전반을 다루고 있는 이 그림자는 자꾸 ‘피’가 연상이 되면서 소름이 끼쳤다. 자꾸만 빨간색을 문질러 지우는 모습과 빨간색이 범벅이 된 손을 씻는 행위를 보면서, 그러한 것들이 에바에게만 보이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사실, 그녀가 하얀 집에 묻어있는 빨간 페인트를 벅벅 지우고 있을 때, 사람들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저렇게 깨끗한데 저 여자는 왜 저렇게 맨날 뭘 지우고 있나 싶은 표정으로 말이다. 아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어떻게든 아들의 행동을 이해해보려는 인내, 살인마 아들을 두어 세상을 향한 부끄러움, 내 인생이 왜 이렇게 꼬였을까 하는 자괴감 등이 뒤엉켜 그녀를 괴롭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 중에서도 ‘죄책감’이 제일 클 것이다. 세상에 대해서도, 아들 ‘케빈’에 대해서도, 그녀 자신에 대해서도.


이 외에도 영화의 곳곳에 빨간색이 많이 등장한다. 등장인물들이 입고 나오는 옷들도 빨간 옷이 많다. 여동생이 갖고 노는 인형과, 파티 날 여동생이 신고 있던 구두, 눈을 다친 여동생이 먹는 과자가 담긴 그릇도 빨간색이다. 케빈과 엄마가 소통을 시도했다가 실패했던 공도 빨간색 공이다. 그리고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학교 강당의 문도 빨간색 문이다. 빨간색은 원형적으로 상징하는 의미가 많다. 경우에 따라서 여러 의미가 있지만 ‘폭력과 잔인’, ‘분노’ 등의 의미가 있다. 영화를 보면서 프랑스혁명의 이미지가 연상되기도 했다. 엄마는 계속해서 프랑스를 가고 싶어 했고, 마지막에 케빈이 모든 아이들을 죽이고 텅 빈 강당에서 “나가자! 싸우자! 이기자!”라는 말을 하는데 이는 프랑스혁명 당시 구호이기도 하다. 빨간색과 파란색의 대비도 많이 나와서 프랑스 국기가 연상되기도 하는데, 프랑스 국기에서 빨간색은 ‘박애’를 뜻한다. 어쩌면 영화 전반에 깔렸던 빨간색은 결국 케빈이 엄마에게 필요로 했던 ‘사랑’을 암시했던 것일 수도 있겠다.







서로 닮은 두 그늘




- 왜 그랬어?

-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모르겠어.


영화의 정말 훌륭했던 점은 ‘탄탄한 플래시백’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계속해서 시간을 넘나들고 장면들이 휙휙 튀어나오고 지나가며 빠르게 진행된다. 처음에는 다소 산만하고 정신이 없었으나, 결국 마지막에 그렇게 휙휙 지나갔던 장면들이 다 의미 있는 장면들이었고 한 데로 모아져 엄청난 공포를 주는 것이 감탄스러웠다. 장면들 하나하나가 다 개연성으로 탄탄하게 구축된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였다. 장면들 간의 전환과 과거와 현재의 전환이 아주 자연스럽게 효과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장면과 대사 & 장면과 음향효과의 연결도 적절하게 이루어졌다. 또한 영화에서 훌륭하다고 할 수 있는 점은 공포스러운 장면을 직접 보여주지 않으면서 공포의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다. 여동생의 햄스터가 사라졌을 때도, 영화는 햄스터의 행방을 알려주지는 않았지만 배수구가 막혀 물이 올라오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케빈이 죽였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여동생의 눈 또한 그렇다. 그녀의 눈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직접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영화는 케빈의 아빠인 '프랭클린'(존C.라일리)에바의 대화, 케빈이 구급차를 불렀다는 사건의 정황, 케빈이 리치를 경악스럽게 까먹는 장면을 보여준다. 직접 보여주기보다는 관객들이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두어 더욱 여운과 공포를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살인사건이 계획되어 있는 날 케빈이 아빠와 여동생을 보며 시리얼을 잘게 부수는 장면, 몸에 맞지 않는 유난히도 작은 케빈의 옷, 사이렌 소리가 들리며 케빈이 수정란에서 태아로 만들어지는 순간과 케빈이 일으킨 살인사건의 오버랩, 감옥에서 “날 놓아줘. 난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어.라고 울부짖으며 끌려가는 죄인과 에바의 출산장면의 오버랩, 물에 얼굴을 집어넣는 엄마와 케빈의 오버랩, 음식을 먹다가 입에서 계란껍질을 빼내는 엄마와 입에서 자신의 손톱을 빼내는 케빈 등 영화는 훌륭한 미장센을 갖추며 효과적인 장치들을 이용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케빈이 어린 시절 아빠에게 장남감 활을 선물 받았을 때, 엄마에게 활을 쏘았던 것이 가장 인상 깊은 장면으로 뽑고 싶다. 엄마 앞의 유리창에 날아와 꽂힌 그 화살은, 후에 일어날 엄청난 사건을 예고한 것일까. 깜짝 놀라는 엄마와 그녀를 바라보는 어린 케빈. 어쩌면 그들은 서로 너무도 닮아 있어 둘 사이의 공간을 좁힐 수 없었던 것일 수도 있다. 무언가를 애타게 갈구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서로를 외면하려 하였던 것을 아닐까. 과연 어린 케빈이 날린 화살의 끝은 누구를 향해 있었던 것일까.

들판의 꽃처럼 나는 누구의 아이도 아니네.

어머니의 키스도, 아버지의 미소도,

받아본 적이 없네.

누구도 나를 원하지 않네.

나는 누구의 아이도 아니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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