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잠> 1. 파란 돌멩이

02 연

by HANA


파란 돌멩이










강물은 왜 파란색인 걸까. 내가 만약에 이 세상을 만들어냈다는 그 하느님이라면, 세상을 온통 눈부시게 분홍색이나 노란색으로 칠했을 거다. 그래야 잃어버린 물건을 찾을 수 있으니까. 파랑도 왜 하필 이렇게 어둡고 거무칙칙한 파랑인 건지. 어두운 곳에서는 사람도, 물건도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단 말이다. 일곱 살도 아는 이런 간단한 ‘법칙’을 하느님이 모르고 있다는 게 충격이다. 아니지, 하느님은 그동안 무언가를 잃어버린 적이 없었나 보다. 부럽다. 하느님은 엄마한테 혼날 일도 없었겠지.




어제 엄마가 신기한 돌멩이를 가지고 돌아왔다. 아프리카에서 왔다는 그 신기한 돌멩이는 바다처럼 파란색으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파란색 돌멩이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이었다. 아프리카는 참 신기한 나라다. 아프리카에는 마음껏 뛰어다니는 사자랑 얼룩말, 코뿔소 이런 동물들도 있고, 파란색 돌멩이도 있으니 말이다. 나중에 엄마랑 할머니랑 꼭 아프리카에 가서 파란색 돌멩이들을 많이 모아올 것이다. 그리고, 엄마가 꼭 가고 싶어하는 폭포에도 갈 것이다. 엄마가 좋아하는 폭포에 가면 이런 파란 돌멩이들은 많이 있다고 했다. 이번에는 아쉽게도 돌멩이를 하나밖에 가져오지 못했지만 다음에 가게 된다면 꼭 백 개, 아니 천 개, 거기에 있는 돌멩이들을 몽땅 가져와서 오늘 같은 ‘대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할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엄마가 하나밖에 없는 그 파란 돌멩이를 왜 할머니한테 선물해줬는지 모르겠다. 할머니는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다. 차라리 나를 주지. 파란 돌멩이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은 할머니가 아니고 나였다.


“연이야, 귀한 거니까 갖고 놀면 안 돼. 할머니 거니까 함부로 만지지 말고. 눈으로만 봐. 알겠지?”


엄마는 아예 할머니의 것이라고 못을 박고는 또 세계여행을 떠나버렸다. 속상했다. 나한텐 아프리카에서만 판다는 초콜릿 몇 상자가 다였다. 나도 파란 돌멩이가 갖고 싶다고.


“엄마 올 때까진 갖고 놀아. 돌멩이가 뭐라고. 그래도 조심조심 가지고 놀아야 한다. 니 엄마가 귀하게 생각하는 거라 부서지면 또 큰일나.”


그래도 내 마음을 아는 사람은 할머니밖에 없다. 가지고 놀아도 된다는 할머니의 허락을 받았으니 사실 나는 잘못이 없다.

그때 유주랑 진호가 놀러온 것이 잘못이었다. 유주랑 진호에게 파란 돌멩이를 조심히 보여준 뒤, 자전거 앞 바구니에 소중히 담고 한강으로 놀러갔었다. 할머니는 슈퍼에 가셨고 유주랑 진호는 자꾸 자전거를 타자고 하는데 돌멩이를 그냥 두고 혼자만 나갈 수는 없었다. 집에 두고 나갔다가 도둑이라도 들어와서 가져가면 큰일이었다. 진호가 이건 아프리카 깊은 바다에만 있는 보물이 확실하다고 했다. 이런 보물을 도둑이 놓칠 리가 없다. 도둑은 분명 아무도 없는 집을 노릴 것이다. 도둑으로부터 이 보물을 지키기 위해 바구니에 소중하게 돌멩이를 얹고는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도록 수건으로 덮어주기까지 했다. 이 신비스러운 파란 돌멩이를 보면 누구라도 가져가고 싶은 마음이 들 테니 말이다. 바구니에 실린 돌멩이를 생각하며 느릿느릿 자전거를 몰았었다. 전봇대나 나무를 박으며 곧잘 넘어지긴 했으나 바구니는 분명 멀쩡했다. 이렇게 나는 최선을 다했단 말이다. 그러니까, 돌멩이가 사라진 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아무리 두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샅샅이 뒤져봐도 파란 돌멩이는 보이지 않았다. 큰일났다. 우리 집에 굴러들어온 보물을 내가 잃어버린 것이다. 엄마한테 뭐라고 하지. 아프리카에서 어렵게 구해온 돌멩이를 잃어버린 내가 얼마나 미울까. 엄마가 돌아오기 전까진 돌멩이를 어서 찾아야 한다.





“혹시 이거 찾아?”


거의 울다시피 하며 어느 풀더미를 헤집으며 들썩이는 내 어깨를 누군가 두드렸다. 웬 남자애였다.

그리고, 그 애의 손에는.


“야, 이거 내 거야!”


그 애의 손에서 영롱하게 빛나고 있는 파란 돌멩이를 황급히 낚아챘다. 찾았다. 다행이다. 이걸 무사히 집으로 가져가서 도로 돌려놓으면 된다. 이제 엄마한테 안 혼나도 된다. 눈물을 두 손으로 훔치며, 나를 구해준 이 생명의 은인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얼떨떨한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있는 그 모습을 보니 조금 미안했다.


“미안해. 나한테 소중한 거라서 그만. 이거 어디에 있었어?”

“저기.”


그 애는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으로 한강의 어느 곳을 향해 손가락을 펼쳤다. 역시 물속에 있었던 거다. 파란 돌멩이가 파란 물속에 있었으니 당연히 안 보였을 수밖에. 하느님은 이번 일을 계기로 ‘반성’ 좀 해야 한다.


“그게 그렇게 소중해서 울고 있었던 거야?”

“응. 이거 우리 엄마가 아프리카에서 가져온 보물이거든.”

“아프리카?”


그 애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내 손을 바라봤다. 다시 돌려달라고 할까봐 겁이 났다. 얼른 파란 돌멩이를 바지 주머니에 넣고는, 불룩해진 주머니를 움켜쥐었다.


“이게 보물이라고? 내가 있는 곳엔 이런 거 엄청 많은데.”

“너 아프리카에 살아?”


유치원에서 아프리카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 배운 적이 있다. 아프리카는 더운 나라여서 까맣게 탄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이 애도 얼굴이 좀 까만 것 같다. 실제로 아프리카 사람을 만난 건 처음이라 신기했지만, 까무잡잡한 것 말고는 딱히 특징이랄 것이 없는 남자애를 보며 생각보다 아프리카 사람도 우리와 다르지 않구나 하고 생각했다.

신기한 나라 아프리카에서 왔다는 그 애는, 키가 나보다 조금 컸고 깡마른 체구에 호리호리한 스타일이었다. 사실 내가 본 다른 애들이랑 느낌이 좀 다르긴 했다. 그 이유가 뭘까 하고 찬찬히 생각해보다가 그 애의 차림새가 눈에 들어왔다. 그 애는 청색 멜빵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멜빵의 단추 부분이 다 떨어져나가고 그 자리를 색바랜 녹슨 클립들이 고정하고 있었다. 멜빵바지 속으로 보이는 누리끼리한 하얀 티셔츠는 양 소매의 끝이 많이 헤졌으며, 티에 그려진 미키마우스는 희미해지다 못해 사라져가고 있었다. 물에 젖었다가 마른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그 애에게서 물비린내가 풍겨왔다.


“아니, 아프리카에 사는 것은 아니고.”

“그럼, 넌 어디에서 왔는데?”


뚫어질 듯한 나의 시선에 그 애도 지지 않고 맞서 나를 뚫어져라 보며 대응했다. 그 애도 내가 신기한지 아까부터 계속 동물원 원숭이 보듯 나를 훑어보는데, 그 느낌이 싫지는 않았다.


“야, 근데 너 몇 살이야? 왜 아까부터 반말이야. 누가 봐도 내가 훨씬 오빠인데.”

“나 일곱 살인데.”

“나는 열한 살이거든. 오빠라고 해. 너라고 하지 말고.”

“오빠는 어디서 왔는데?”


‘오빠’라는 그 애는 말없이 나를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애의 서늘한 눈매에 숨은 갈색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그걸, 잘 모르겠어.”

“길을 잃은 거야?”

“그런 것 같아. 눈 떠보니까 내가 여기에 있었어.”

“엄마 전화번호 알아?”

“.......”

“집 주소는?”

“.......”

“경찰에 신고는 했어?”


계속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이 ‘오빠’라는 애를 보니까 답답해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열한 살이나 된 오빠의 엄마를 내가 찾아줘야 하는 건가. 그래도 이 오빠는 날 만나서 다행이다. 나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친절한 마음씨를 가졌고, 더군다나 나를 위기에서 구해준 이 생명의 은인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이 지금 나한테 있기 때문이다.


“우리 할아버지가 옛날에 경찰이었어. 할아버지한테 가보자.”


할아버지라는 든든한 사건해결의 키를 잡고서, 나는 의기양양하게 그 애를 우리 집으로 이끌었다. 경찰이 우리를 도와줄 수 있을까, 못 미더워하면서도 딱히 다른 방도는 없었으므로 순순히 그 애는 나를 따라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애는 생각보다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그 애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에 휩쓸려 나는 집에 도착했음에도 그 주위를 빙빙 돌아야 했다. 그 애는 이름이 준원이고, 열한 살이고, 홍악국민학교를 다니고, 학교에 안 간지는 아주 오래되었고, 남동생이 있고, 찾고 있는 여자애가 있고, 좋아하는 만화영화는 <15소년 표류기>라고 했다. 생전 처음 듣는 만화였지만 그 신비로움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그 애가 이야기하는 텔레비전 만화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 같은 것들 속에서 시간 가는 줄 몰랐고,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나서야 초인종을 누를 수가 있었다.

아프리카는 생각보다도 훨씬 더 재미있는 나라였다. 우리는 아마 앞으로 좋은 친구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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