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원혁
파란 돌멩이
원혁
“대체 어떤 아이길래 그러십니까?”
조과장이 가져온 신원조회서를 대강 훑었다. 종이 한 바닥을 채운‘최준원’이라는 이름 석 자. 이 아이들이 지금 대한민국에 있는 2014년 5월 25일생 최준원들이란 말이지. 한날한시에 태어나 이름까지 똑같은 아이들을 한데 모아놓고 보니 묘했다. 생각보다 그리 많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적지도 않은 집단이었다. 의미 없어 보이는 똑같은 글자들 속에, 주인을 잃은 진짜 이름은 반드시 숨어있을 것이다.
“그 중 실종신고된 아이는 한 명도 없습니다.”
“단 한 명도?”
“다 자기들 집에서 잘살고 있어요. 서류상으로는 뭐 그렇죠.”
“난감하군.”
“그 아이가 잘못 말한 것은 아닐까요? 열한 살이면 나이를 잘못 말했을 것 같지는 않고. 생일을 정확히 모른다든지.”
“열한 살짜리가 자기 생일을 모를까. 다른 건 몰라도 자기 생일은 꼭 기억하는 나이 아닌가.”
“모를 수도 있죠, 뭐. 저도 제 생일 기억 잘 안 나는데요. 특별히 생각하지 않으면 생일 같은 건 중요하지 않을 수 있죠.”
“생일이 특별하지 않은 아이라......”
“아니면, 일부러 다르게 말했다든지.”
“왜?”
“모르죠. 선배님이 보시기에 그 아이는 어땠는데요?”
불그스름했던 하늘이 점차 어두워지고, 낮부터 떠있던 붉은 보름달이 선명해지며 그 핏빛을 발광해가던 초저녁이었다. 한강에 놀러 나갔다던 손녀딸 연이가 돌아오지 않았다. 같이 갔다던 유주랑 진호는 진작에 집에 들어갔다던데, 연이는 무언가를 잃어버려서 그걸 찾아야한다며 한강에 남아있었다고 했다.
“못 살아. 그놈의 돌멩이. 돌멩이 때문이야.”
아내는 연신 이상한 소리를 하며 외투를 걸치고 나갈 채비를 했다. 어제 딸이 아프리카에서 이상한 돌멩이 하나를 가지고 왔는데, 호기심 많은 손녀딸이 그걸 엄마 몰래 갖고 나갔다가 잃어버린 모양이라는 대강 그런 내용이었다.
“애들끼리 한강 보내지 말라니까. 이렇게 세상이 흉흉한데 왜 애들끼리 보내.”
“뭐, 내가 보냈나. 나 슈퍼 간 사이 지들끼리 나간 걸 갖고 어쩌라고. 그렇게 걱정되면 당신이나 좀 집에 붙어서 애들 좀 보지 그러슈. 우리 고원혁 씨는 정년퇴직해서 이렇게 동네방네 놀러 다니는데, 장현주 인생엔 퇴직이란 것도 없네.”
해가 넘어갈 때까지 밖에 나간 어린이가 소식이 없다는 것은 분명 큰일이었다. 더군다나, 최근 한강에서 사람 형체 비슷한 무언가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는 이상한 소문까지 도는 마당이다. 초조한 마음에 아내를 따라나설 생각에 외투를 입을 참이었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연이냐?”
외투를 마저 입고 아내를 따라 현관으로 나가보았다. 버선발로 나가 문을 열어준 아내는, 무슨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으로 우두커니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 아내를 힐끗 본 뒤 문 쪽을 보니, 연이와 함께 웬 남자애가 있었다.
“할아버지! 얘는, 아, 이 오빠는 준원인데요. 아프리카에서 왔는데, 집을 잃어버렸대요. 엄마 전화번호도 모른대요. 할아버지는 경찰이니까 찾아줄 수 있죠?”
그때, 그 아이를 처음 마주했다. 낡고 꾀죄죄한 차림새에 물비린내 비슷한 이상한 냄새를 풍기던 까무잡잡한 아이. 나도 놀랐지만 아내가 무척 놀란 눈치였다. 그대로 망부석이 되어 있는 아내를 등지고, 일단 아이를 집안으로 들였다. 이 밤중에 길 잃어 갈 데 없다는 아이를 내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음날, 연이와 함께 아이를 데리고 경찰서로 향했다. 정년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서에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경례소리들이 들려왔다. 아는 얼굴들 여럿을 거쳐 곧바로 조과장을 찾아갔고, 평소에 형님처럼 잘 따르던 후배 조과장 게이트를 통해 편안하게 지문을 스캔하였다. 미아방지 지문등록제도가 생기면서 이제 대한민국의 어린이들은 손가락만 대면 5분 안에 부모님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참 살기 좋은 세상이다. 문제는,
“선배님, 신원조회가 안 되는데요?”
경찰청 데이터베이스에 아이의 지문 스캔본과 일치하는 것이 없었다. 아이는 몇 번이고 손가락을 바꿔가며 손가락 도장을 찍어댔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마치 세상에 없는 아이, 혹은 세상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아이라는 듯이 계속 오류경보가 울려댔다.
“이상하네. 작년에 아동지문등록은 필수였는데. 왜 등록을 안 했을까? 학교에서 다 했을 텐데. 얘야, 너 어디 학교 다니니?”
경찰의 앞이라 긴장했는지 아무 말 못 하고 있는 아이를 대신하여 연이가 대답했다.
“학교에 안 간지 엄청 오래됐대요. 그래서 못 했나봐요.”
“얼마나 오랫동안 안 갔는데?”
“엄청 오랫동안이요. 오빠는 아프리카에 있었거든요.”
“아프리카?”
이야기가 산으로 가는 듯하여 중간에 끊고 서를 나왔다. 손가락만 있으면 부모님을 찾을 수 있다는 말에 눈을 반짝이던 아이였다. 연이도 이 할아버지의 능력에 우쭐거리던 모습이었다. 서에 들어갈 때와는 달리 축 처진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며 기분을 달래주었다. 왜 지문등록이 되어 있지 않을까,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뭐 다른 방법으로 아이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으니 그 생각은 일단 접기로 했다.
그 사이 이틀이 더 흘렀고, 딱히 갈 데가 없었던 아이는 이틀을 더 집에서 함께 보냈다. 그동안 연이와 아이는 점점 더 가까워졌고, 무슨 일인지 이틀 내내 아내는 가위에 눌리고 악몽에 시달리며 잠을 설치는 듯했다. 아이가 온 이후로 아내는 말이 없어졌고, 이따금 눈시울을 붉히다가 황급히 표정을 다시 지우고는 했다.
그리고 오늘, 조과장은 다시 한번 나의 요청사항들을 가져온 것이다. 아이의 생년월일과 같은, 똑같은 이름을 가진 아이들. 그 수많은 아이들 중 실종신고가 된 아이가 적어도 한 명쯤은 있을 터였다. 실종된 아이들을 중심으로 찾다 보면, 아이의 부모님을 찾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웬걸. 일말의 희망마저 날아가버렸다.
“이름도 최준원이 맞기는 한 거죠?”
“뭐하러 거짓말을 하겠어.”
“가출했을 가능성은요?”
“가출한 애가, 부모님 찾아달라고 경찰을 직접 찾아와?”
그건 또 그렇긴 해, 유자차를 숟가락으로 휘휘 젓는 조과장이었다.
“아직 실종신고를 안 했을 수도 있지.”
“그렇죠. 애가 사라진 지 얼마 안 됐다면 아직 애타게 찾고 있을 수도...... 아니죠, 선배님 집에 애가 며칠 있었다고 했죠?”
“오늘로 5일 됐나.”
“5일동안 애가 안 들어오는데, 실종신고를 안 했다고요?”
이상하긴 했다. 여러모로 피어오르는 의심에 조과장이 가져온 신원조회서를 다시 집어들었다. 수많은 최준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여기 숨은 진짜 최준원을 꼭 찾겠다는 뜨거운 무언가가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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