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잠> 4. 신기한 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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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A


신기한 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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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야, 나무야. 내 소원 좀 들어줄래?”


하빈이 나무에 손을 대자 반짝이는 광채가 나무 주위를 감쌌다. 가지마다 별들이 고개를 내밀며 피어나면서 일렁였다. 나무 곳곳에 숨어있던 수많은 별들이 밖으로 기어나와 춤을 추기 시작했다. 거대한 샘물 앞의 커다란 나무는 곧 수억개의 별들로 뒤덮여 반짝였고, 그 찬란한 빛은 샘물에도 반사되어 마치 온 세상이 황금빛에 물들어 빛나는 듯했다.


“신디를 정범이로 바꿔줘.”


하빈은 신디인형을 황금빛 나무 아래에 두고는 그 앞에 가만히 앉았다. 집에서 가져온 하나뿐인 소중한 보물이었지만, 이제 하빈은 신디인형보다 정범이 더 소중해졌다. 일곱 살은 사랑을 느끼기 충분한 나이였다. 하지만 정범은 너무 바빴다. 무인도에 온 후로 정범은 여기저기 놀러다니며 틈만 나면 사라지기 일쑤였다. 더는 하빈을 외롭고 불안하게 하지 않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하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무에 피어있던 별들이 신디인형에게 달려들었다. 얼마간의 황금빛 쇼가 끝나자, 인형은 감쪽같이 정범으로 바뀌어 있었다. 인형 크기만한 작은 정범은 하빈을 향해 싱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방금까지 소중한 친구였던 신디가 사라진 것에 대한 애도 따위는 하빈에게 없었다. 대신 자신에게 걸어오는 작은 정범을 보며 아쉬운 듯 중얼거렸다.


“으음, 이건 너무 작은데.”


그때였다. 작은 정범을 품에 안은 하빈에게 정범이 다가왔다.


“야! 너 이거 뭐야! 얘는 나잖아!”


놀라는 정범에게 하빈은 활짝 웃으며 작은 정범을 들이밀었다. 작은 정범은 정범에게도 똑같이 손을 흔들며 싱긋 웃었다.


“응. 앞으로 내가 외로울 때마다 같이 있어줄 친구야.”

“외로워? 왜?”

“넌 맨날 없잖아. 혼자 있으면 슬프단 말이야.”

“어떻게 여기에서 외로울 수가 있어? 너도 좀 돌아다녀봐. 여기 재밌는 거 엄청 많아. 저기 별사탕 풀밭 가본 적 있어? 또, 저쪽으로 가면 매일매일 색깔이 바뀌는 꽃들이 있는데, 아, 오늘은 구름콩팥 색깔인데, 걔네가 웃긴 노래도 불러준다고. 그리고, 저기에 엄청 큰 폭포도 있는데 막 소리 지르거든? 그런데 엄청 웃겨. 웃음소리도 웃겨서 같이 웃으면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아. 아, 소리는 좀 방귀소리 같은데 어쩔 땐 똥냄새가 날 때도 있어. 그리고 또 .......”

“그냥 나는 너랑 놀고 싶어. 그런 거 필요없어.”


하빈도 정범이 말하는 게 무엇인지는 안다. 없는 게 없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고 만들어낼 수 있는 곳이다. 슬플 게 전혀 없다. 정범이처럼, 아니 다른 오빠들처럼, 재밌고 신나는 게 정상이다. 무인도에 오고 처음 며칠간은 하빈도 무척이나 아름다운 이 섬에서 황홀한 나날들을 보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하빈에게는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같은 것이 생겨났다. 괜스레 슬퍼지고 엄마가 보고싶어지고는 했는데, 하빈을 제외하고는 엄마를 보고싶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하빈이 어려서 그런 거라며 귀찮아할 뿐이었다. 지금도 정범은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하빈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근데 걔는 좀 징그럽다. 난 징그러운 건 딱 싫은데.”

“징그러워?”

“응. 그냥 얘 말고 내가 계속 네 옆에 있어주면 되잖아.”


작은 정범을 가리키며 정범이 얼굴까지 찡그리며 한마디 했다. 하빈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곧, 나무 아래에 작은 정범을 앉혔다. 작은 정범은 곧 자신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도 모른 채 신사같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나무야, 나무야. 이제 얘는 없어도 될 것 같아.”


이번에도 하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별들은 작은 정범에게 달려들었다. 하빈과 정범은 번쩍번쩍 황금별 쇼를 지켜보았다. 언제 보아도 반짝이는 것은 아름다웠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쇼가 끝난 후 별들은 모두 자기 자리를 찾아 나무로 돌아갔고, 나무 아래에 남은 형체에 하빈과 정범은 기겁하며 비명을 질렀다. 눈알이 파지고 머리통이 으스러진 채 온몸이 찢겨 피범벅이 된 작은 정범이 놓여있던 것이다. 큰 충격에 하빈은 연신 헛구역질을 해댔다. 충격을 받은 것은 정범도 마찬가지였는데 마치 본인의 최후의 순간을 마주한 듯했다.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얼어있던 정범에게 불현듯 무슨 생각이 들었다.


“이건 신기한 샘물이잖아! 무엇이든 다 낫게 해주고, 또, 아! 이걸 먹으면 젊어지니까. 죽은 것도 살리지 않을까?”


정범은 두 눈을 질끈 감고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작은 정범을 집었다. 그리고는 나무 앞의 샘물에 퐁당하고 던졌다.


“야! 던지면 어떡해. 그럼 어떻게 건져?!”


정범과 하빈이 발을 동동거리며 안절부절못하는 사이, 물속에 던져진 작은 정범 주변으로 보글보글 거품이 일었다. 거품이 일 때마다 빠른 속도로 찢어진 부분이 도로 붙고 머리도 부풀어 오르고 눈알도 생겨나며 원래 상태로 복구되는 듯하였다. 그러나 샘물은 생각보다 깊었고 건져낼 방법이 없었다. 물에서 빠져나올 시기를 점점 놓쳐만 갔고, 작은 정범의 다리 한쪽이 없어지더니 나머지 한쪽도 없어지기 시작했다. 팔이, 몸통이, 눈코입이, 머리가 점점 없어져 갔고 이후에는 형체가 쪼그라들고 쪼그라들고 쪼그라들어만 갔다. 결국 형체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퍼런빛을 띠는 돌멩이 형태의 최후가 둥둥 떠다니다가 샘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이 광경을 전부 지켜본 정범과 하빈은 사색이 되었다. 그제야 아이들은 샘물 주변에 수두룩한 파란 돌멩이들을 보게 되었다.






“너희 대체 왜 그래? 왜 갑자기 안 먹겠다는 건데?”


여느 때처럼 모래사장에서 신나게 뛰어논 아이들은 샘물을 먹기 위해 모여앉았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정범과 하빈이 샘물은 절대 먹지 않겠다며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무인도에는 밤이 없었다. 해가 지지 않고 온종일 밝아 실컷 놀 수 있어서 좋긴 했지만,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는 점이 큰 흠이었다. 그래서, 어느날 아이들은 규칙을 만들었다. 하늘에서 유니콘이 날아와 무지개 방귀를 뿜으면, 그것을 하루의 끝으로 하여 모여앉아 샘물을 마시자는 것이었다. 나름 일리가 있었던 것이 유니콘은 꽤나 규칙적으로 바닷가에 물을 마시러 날아왔고, 또 샘물은 아주 달콤하고 포만감도 있었다.

게다가 샘물이 주는 효능을 아이들은 익히 알고 있었다. 지난번 언젠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이 둘의 싸움 놀이는 한두번이 아니어서 횟수로도 손꼽기 힘들다- 범석과 승혁이 칼싸움 놀이를 하다가 심하게 다친 적이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샘물의 물기를 품은 승혁의 절단된 엄지손가락이 손에 다시 철썩 붙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멀쩡해진 승혁의 손가락을 보며 아이들 모두 입을 쩍 벌리고 놀랐다. 거의 죽어가던 범석이 샘물을 먹고 멀끔하게 살아난 적도 있었다. 샘물의 효능을 알게 된 이후, 이 둘의 싸움은 점점 더 잦아지고 과격해졌으나 샘물만 있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쨌든 이렇게 몸에도 좋고 맛도 좋은 샘물을 규칙적으로 먹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샘물로 시간을 만든 아이디어는 무척 기발했다며, 아이들 스스로도 뿌듯해하면서 꼬박꼬박 잘 지켜왔다.

그런데 지금 이탈자가, ‘샘물 반대파’가 생긴 것이다! 그것도 두 명씩이나. 준원은 의아했다. 특히, 달콤한 것을 좋아하는 정범은 그 누구보다도 샘물을 좋아하던 아이였다. 샘물을 너무 많이 먹지 못하도록 단속해야 할 정도였으니까. 어느날부턴가 정범은 하빈과 함께 샘물을 보면 사색이 된 채 입에도 대지 않았다. 준원은 정범이 더이상 샘물을 먹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사실 이것은 샘물을 먹고 안 먹고의 문제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우리가 만든 규칙에 반(反)하는 일이기에 범석이 정범을 굉장히 눈엣가시로 생각하고 있었으며, 이 문제를 가지고 범석과 승혁의 다툼은 점점 더 거세져만 갔다. 그 사이에서 중재하느라 준원은 늘 진땀을 빼야 했다.

그리고, 샘물의 영향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샘물을 안 먹겠다고 선언한 이후부터 정범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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