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원혁
떠나지 않은 아이, 돌아온 아이
원혁
세상의 모든 딸들은 어머니를 가진다. 그리고, 좋든 싫든 어머니의 일부를 가진다. 외모든 성격이든 습관이든 하다못해 머리카락 한 올에 새겨진 유전정보마저 어머니로부터 가져온 것이다. 딸에게 옮겨지는 수많은 이야기들에는 그 종류나 정도에 있어 사람마다 다르며, 무엇이 전달되었는지 당사자들은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때때로 딸에게서 그 어머니의 과거를 맞닥뜨리고는 당황하는 일이 발생하고는 한다.
지수도 마찬가지였다. 지수가 일곱 살 때였나. 어느 저녁, 현주는 지수를 잠깐 집에 두고 외출해야 했다. 아마 집 근처에 있는 갤러리아 백화점에 갔고, 돌아올 때 새우버거를 사다주기로 약속하고 외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평소 지수는 혼자 남아 집을 지키는 일이 많았기에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날 유독 지수가 눈물을 글썽이며 현주를 붙잡더랬다.
“엄마, 안녕. 꼭 돌아와요. 꼭 다시 와야 돼요. 엄마.”
현관문을 나서는 현주에게 손까지 흔들며 눈물을 쏟아내는 지수를 보며, 온몸에 소름이 끼쳐 매몰차게 뿌리치고 나왔다고 했다. 그날 밤, 현주는 침대에서 몸을 뒤척이며 오랫동안 숨죽여 울었다.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대사를 내뱉으며 울었던 어린 날의 현주 본인을 보았던 것이다. 지수에게는 종종 이런 순간들이 있었다. 본인의 상처까지 고스란히 품고서 자꾸만 과거를 되새김질하는 지수를, 현주가 미워했던 것도 같다. 심지어 얼굴마저 지수는 어린 시절의 현주와 쌍둥이처럼 똑같았는데, 이것마저 현주는 싫어했다. 지수에게 무척 쌀쌀맞았던 현주를 떠올려보니, 어린 시절 지수는 참 외로웠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수인 줄 알았던 어느 여자아이는, 그로부터 30년 정도는 더 거슬러 올라가야 만날 수 있었던 아이였다. 뉴스 영상은 1979년 2월 7일에 보도된 것으로, 97년생 지수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이 아이는 현주인가. 결국 책장 저 구석에 꽂혀있던 현주의 오래된 앨범을 집어들었다. 몇 장을 뒤적이다보니 확실해졌다. 영상의 아이는 현주가 맞았다.
무려 45년 전 뉴스에서 아내를 발견하자, 이 사건의 내막이 무척 궁금해졌다.
“無人島간다 少年5명 家出, 떠나지 않은 少女”
제목마저 자극적이었다. 영상 속 아이가 현주가 정말 맞다면, 과거에 어느 가출사건과 연관이 있었고 그 중 떠나지 않은 아이가 현주라는 것이었다. 현주에게 이런 흥미로운 과거가 있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최준원은 잠시 내려두고, 새롭게 떠오른 이 특종에 눈을 돌렸다. 검색엔진을 통해 알아낸 사실들은 무척 흥미로웠다.
첫째, 45년 전 한동네의 아이들 다섯명이 가출했다. 그들의 목적지는 제주도 주변 어느 무인도였다.
둘째, 원래는 여섯명이 가출을 계획하였는데 현주로 추정되는 여자아이가 당일 일행에서 빠졌다.
셋째, 아이들은 인천항에서 어느 중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덕적도로 가는 배 ‘덕적호’를 탔다.
넷째, 기상악화로 덕적호가 침몰했고 아이들은 실종되었다.
다섯째, 실종아이들: 김승혁, 서범석, 이하빈, 최정범, 최준원
앞에 앉은 남자는 연신 물잔을 기울이며 목을 축였다. 나와 동년배인 이 남자는, 세월의 풍파를 세게 맞았는지 머리도 많이 벗겨지고 색깔도 희끗희끗한 게 실제 나이보다 서너살은 더 들어 보였다. 원시가 있는지 휴대폰을 멀찌감치 떨어뜨려서는, 안경을 코끝으로 내린 채 사시눈으로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휴대폰을 내게 돌려주었다.
“맞는 것 같습니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해도, 워낙 충격적인 사건이었어서 평생 잊을 수 없는 얼굴들이죠. 그때 범석이 옆에 있었던 아이들 중 한 명이랑 좀 비슷하게 생긴 것 같기도 하네요. 이 아이가 뭔가 리더처럼 보였어요. 배에서도 애들을 잘 챙겼던 것 같아요.”
이미 내 손으로 돌아온 휴대폰에 남자는 시선을 던지며, 휴대폰에 든 나와 준원이 찍힌 사진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이렇게 생긴 아이는 우리나라에 많아요. 흔하게 생긴 얼굴이잖습니까.”
“만약에 이 아이가 살아서 돌아왔다면 어떻습니까?”
“45년만에요? 45년 동안 어디 있다가 지금에야 나타난단 말입니까. 싹 다 죽은 거죠. 당시에 사망처리 다 된걸로 압니다.”
“선박침몰로 인한 특별실종 사망처리는 실종자가 살아서 돌아올 경우 취소가 가능합니다. 시신이 발견된 것이 아니어서, 사망으로 간주한 것이지 정식사망은 아니니까요.”
“아니, 이봐요. 경찰양반. 정말 살아돌아오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남자는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잠시 남자의 눈을 응시하다가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45년 전 침몰사고를 접하고 해당자료들을 보다가 아이들이 배를 탈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친절한 학생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오래 흐른 지금 그 학생은 그 사건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만약 아이가 돌아왔다면 찾아갈 수 있는 곳이 있는지, 유가족의 소식도 알고 싶었고요. 그게 다입니다. 선생님께 무례를 범했다면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세요.”
침몰사고 구조자 명단에는 아이들의 배 탑승을 도왔던 중학생들도 있었다. 한때 이 중학생들에게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고 한다. 이제 그 중학생은 머리도 희끗해지고 얼굴에 검버섯도 피어난 늙은 남자가 되어 내 앞에 앉아있다. 그가 견뎠을 세월의 무게를 생각하며, 살아오면서 수도 없이 되새김질했을 ‘만약에’하고 이어지는 후회들을 온전히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타인의 케케묵은 죄책감을 순진한 척 건드리는 일은 무례한 짓이다.
그때, 자리에서 일어선 나에게 남자가 다급히 말을 걸었다.
“그 사진. 그건 어디서 찍은 거요? 정말 본인 맞아요?”
“손녀딸 친구가 집에 놀러왔는데 함께 찍었습니다. 아무래도, 많이 닮았죠?”
“네. 만약 정말 어딘가에 살아있다면 그 아이들도 나이가 많이 들어있겠죠. 그 어린 애들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있을 생각을 하니, 그거도 또 마음이 이상하네요.”
“혹시 유가족의 소식을 알고 있는 게 있을까요?”
“너무 오래된 일이라. 부모들은 뭐, 이미 다 저세상 가셨죠. 그 아이들 중에 형제가 있었던 애가 범석이뿐이었는데. 규식이라고. 맞아, 규식이었어. 걔도 그 사건 있고 힘들어하다가 스무살 되구 독일로 이민을 갔어요. 그 이후엔 소식이 끊겼죠. 어떻게 사는지도 몰라요. 살아는 있는지. 죽었는지.”
카페를 나서는데 머리 위로 강렬한 여름햇살이 쏟아졌다. 긴 세월 알지도 못했던 두 사람이 45년 전의 오래된 어떤 사건을 계기로 만났다. 누군가의 실종으로, 그들의 사망으로, 그리고 그들이 다시 돌아왔을지도 모른다는 약간의 덧없는 기대감으로. 뜨거운 여름을 머리에 이고 한동안 서 있었다.
“그때, 한 여자아이가 기억나요. 그 애들이랑 같이 배를 타기로 전부 다 같이 계획했다던데, 그날 갑자기 혼자 쏙 빠졌다죠. 그때 그 여자애한테 쏟아지던 비난이 엄청났어요. 저도 저였지만, 그 아이는 아마 못 살았을 거예요.”
눈부심에 눈을 찡그리며 남자는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한 명이 더 죽을 뻔한 거, 다행히 살아난 거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 여자애를 엄청 몰아세웠죠. 그 애가 순진한 아이들 배타게 사주해서 죽인 것처럼. 왜 너는 같이 안 갔냐, 왜 너만 살았냐, 별소리들이 많았죠. 정말 많이 괴롭혔어요. 그 아이는 이후로 잘살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지금 살아있다면 나이가 저만큼이나 많이 들었겠죠. 그래도 씩씩하게 잘 살아가고 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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