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잠> 5. 떠나지 않은 아이, 돌아온 아이

03 연

by HANA


떠나지 않은 아이, 돌아온 아이










다 보았다. 나는 분명히 보았다.

너무 세게 물어뜯었는지 새끼손톱에서 피가 났다. 상처난 자리가 따끔거려서 눈물이 났다. 손가락을 타고 흘러내리다 빨갛게 물든 핏자국을 보니까 괜히 억울했다. 아직 어린 내가 모르는 또다른 뜻이 있을 수 있다. 마음을 좀 진정하고 스마트폰을 켰다. 이럴 땐 무엇이든 알려주는 챗봇이 있다.



- 누나가 무슨 뜻이야?

-“누나”는 한국어에서 남자가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여자 형제를 부를 때 사용하는 말이에요. 자세히 설명하자면, 말하는 사람이 남자일 때만 사용합니다. 상대 여성이 자신의 친누나이거나, 혹은 나이가 많은 친한 여성일 경우에도 사용돼요. 예시: ㆍㆍㆍ

- 열한살이 할머니한테 누나라고 불러?

- 좋은 질문이예요! 결론부터 말하면 열한살 아이가 할머니한테 “누나”라고 부르는 건 틀린 표현이에요. ㆍㆍㆍ “할머니”는 보통 60세 이상, 즉 아이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은 여성이기 때문에, 호칭으로 “누나”를 쓰는 건 사회적ㆍ언어적으로 맞지 않아요. 그러면 뭐라고 불러야 돼? 정답은: 할머니. 예시: “할머니, 안녕하세요,”, “할머니, 어디 가세요?”ㆍㆍㆍ

- 열한살이 할머니한테 누나라고 부르면 그건 뭐야?

- 훌륭해요! 그건 아주 예리한 지적이죠! 열한살 아이가 할머니에게 “누나”라고 부르면, 그건 틀린 호칭이지만 아래 상황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어요ㆍㆍㆍ정리하자면, 몰라서 말함: 실수/배움의 기회, 웃기려고 일부러: 장난/귀여운 유머, 무례하게 의도적으로: 버릇없고 무례함. ㆍㆍㆍ맞는 표현으로 자연스럽게 가르쳐주면 된답니다ㆍㆍㆍ



아무리 준원오빠가 좀 모자라고 이상한 사람이라지만, 할머니를 누나라고 할 만큼의 바보는 아니다. 할머니를 할머니라고 부르는 것은 나보다도 어린 다섯 살짜리 아기들도 아는 거였다. 그건 기본상식이다. 그 오빠가 아무리 멍청해도 기본상식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웃기려고 일부러 그렇게 말할 리도 없다. 준원오빠는 재미라고는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버릇없고 ‘무례(?)’한 사람. 무례한 건 모르겠고 오빠는 ‘무식’하다못해 버릇없는 사람이었던 건가. 그런데, 그런 ‘부례’한 분위기는 분명 아니었다. 준원오빠와 할머니는 무척 ‘화기애애’했다. 오빠랑 할머니는 언제 그렇게 친해진 거지. 오빠랑 할머니는 정말 친구같았다. 그 둘은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났다. 아무래도 혼자선 해결이 안 된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직 일곱 살이라 생각주머니가 작아서 그런가 보다. 엄마라면 알려줄 수도 있다. 자다가 화장실에 가는 중 갑자기 마주친 이 ‘광경’을. 준원오빠가 할머니한테 누나라고 부르며 아무렇지 않게 반말을 하는데, 할머니는 그걸 또 혼내지도 않고 받아주고 있는 이 이상한 ‘광경’을. 그때 할머니랑 오빠는 무슨 말을 하고 뭘 하고 있었더라. 잠에서 덜 깨서 잘 기억나진 않는데, 아마 같이 어딜 가자며 가방에 물건들을 넣고 있었던 것 같다. 맞아, 같이 떠나자. 오빠가 할머니한테 그랬던 것 같다! 같이 떠나자고 그랬다!


그때, 현관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나지 않도록 조심을 기울이는 그 움직임을 공기의 흐름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이 밤중에 굉장히 조심해하며 나가야 하는 사람들이라. 벌떡 일어나 창문가로 갔다. 블라인드 사이로 얼굴을 내밀어 숨죽여 기다렸다. 우리 집은 11층이니까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곧 있으면 집에서 그렇게 숨죽여서 몰래 빠져나간 정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볼 거다.


“박 연! 너 거기서 뭐해?”


뒤에서 들려온 날카로운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혹시나 위를 올려볼까 블라인드로 칭칭 감은 채 숨죽여서 내려보고 있었다. 갑작스런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는데, 그만 블라인드에 몸이 엉키고 말았다. 어둠 속에서 블라인드에 엉켜 헤매는 동안 방의 불이 환하게 켜졌다. 순간적인 빛에 눈이 찡그려졌다. 누군가 블라인드를 거친 손으로 풀어 재꼈고, 그 손의 주인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너 지금 방불 다 끄고 뭐하는 거야!”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엄마에게 달려가 와락 안겼다. 그동안 참아왔던 서러움이 터졌다. 아, 내가 지금 울고 싶은 기분이었구나. 왠지 모를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기분이다. 한밤중의 두 사람의 이상한 만남에 대해 다 일러바칠 거다. 둘이 나를 두고 몰래 나가버린 것도. 눈물 콧물 범벅으로 엉엉 우느라 잘 전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엄마의 표정이 순식간에 무서워지는 것으로 봐서 이건 확실히 말했던 걸로 기억한다.


“엄마, 준원오빠랑 할머니랑 집을 나갔어. 둘이 가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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