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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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칡넝쿨과 등나무가 서로 얽히고설킨 채 저 하늘 높이까지 거대하게 뻗어있다. 복잡하게 꼬이고 꼬여 첫 시작도, 원래의 목적도 잊어버린 채 그저 몸집만 키워가는 그 나무를 아이들은 ‘꽈배기 나무’라고 불렀다.
처음에 아이들은 이 거대한 나무를 타고 올라가면 먼 꼭대기에 거인이 살고 있을 거라 굳게 믿었다. 잭과 콩나무처럼 나무 위 거인의 집에는 보물이 가득하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연주하는 하프가 있을 거라며 언젠간 나무꼭대기에 오르기를 꿈꾸었다. 저 높은 나무를 어떻게 오를까 나무 주변을 서성이던 중, 파랑새 한 마리가 나무줄기를 뜯어 먹는 것을 발견했던 하빈이다. 새가 뜯어낸 나무의 부분에서 고소한 냄새가 풍겨왔고 하빈도 호기심에 한 입 베어 물었다. 이건 꽈배기빵이잖아,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달콤함에 환하게 웃음지으며 하빈은 얼른 오빠들에게 이 사실을 전달했었다. 그리고는 그 후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다. 이후 오빠들은 주기적으로 나무에 톱질을 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 하빈은 꽈배기빵을 많이 먹을 수 있어서 마냥 좋았었다. 오빠들의 의도를 알기 전까지는.
“베어서 다 먹어버리자. 알아서 거인이 내려오는 거야.”
“오랜만에 말 좀 통한다. 맞아! 힘들게 올라가서 뭐해.”
“나무가 다 무너지면 그때 거인을 생포하는 거야!”
“그럼 보물은 다 우리 거! 거인 생포해서 뭐해. 죽이는 게 낫지 않아? 나중에 탈출하면 어떡하려고.”
오르지 못할 나무는 잘라서 쓰러뜨리자. 거인의 보물을 가지게 된다고 하빈에게 나쁠 건 없었지만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끼게 된 시점이었다.
아무리 잘라도 잘라도 계속 자라나는 ‘꽈배기 나무’를 보면서, 거인을 생포하여 보물을 가지겠다는 아이들의 원대한 꿈은 사라져갔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톱질하고 얼마뒤 돌아오면 원래로 돌아가있는 나무의 모습에 허탈해졌던 아이들이다. 사그라드는 흥미에 꽈배기빵을 찾던 아이들의 손길도 사라져갔으며, ‘꽈배기 나무’는 그렇게 잊혀갔다. 그 말인즉슨, 이곳은 안전하다는 뜻이었다.
“진짜 괜찮을까? 오빠들 알면 난리날 수도 있어.”
나무줄기에 앉아 마지막 라면땅을 입에 털어넣는 정범을 보며, 하빈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입가에 묻은 과자가루를 털어내는 정범은 무척 핼쑥했으며, 안 그래도 왜소한 체구가 더욱 작게만 느껴졌다. 살이 쏙 빠져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채 창백해 보이는 것은 하빈도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다들 모를걸.”
“마지막 남은 과자였잖아. 식량을 다 먹어버린 사람이 누군지 찾아낼 거야.”
“괜찮아, 형아들은 우리가 가져온 식량 같은 거에 이미 관심도 없는걸.”
모험을 떠나기 전 아이들이 준비해왔던 것들 중 일찌감치 눈밖에 났던 것이 식량이었다. 이곳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 빵, 초콜릿, 아이스크림, 과일 등으로 넘쳐났으므로 그들이 가져온 식량이 있든 없든 누군가 통째로 들고 튀든 전혀 상관없었다. 더욱이, 아이들은 이곳에서 배고프지 않았다.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은 하루에 한 끼도 먹지 않아도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었다. 달콤한 샘물만 있으면 식량 따위 중요한 사안은 아니었다.
“이상하지 않아? 그동안 왜 우리는 배고프지 않았지? 분명히 이런 과자들을 가져왔는데 다 잊어버리고 있었잖아.”
“그야, 여기 더 맛있는 것들이 많으니까 그랬지.”
“그런데 지금은 맛이 없잖아?”
꽈배기나무의 빵을 뜯어 입에 넣었다가, 우웩하며 도로 뱉어내는 하빈이다. 그건 빵이 아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게 달콤했던 꽈배기 나무에게서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무껍질을 씹는 듯한 거친 촉감에 거부감마저 생겼다.
“그거 알아? 생각해보면 우리가 샘물을 안 먹기 시작하면서 이런 일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조용히 말하는 정범이다. 하빈도 덩달아 몸을 움츠린다.
“이런 일들이라 하면?”
“엄청 배고프잖아, 지금. 계속 자꾸 먹고 싶고. 그런데 여기 섬에 있는 음식들은 하나도 맛이 없어. 이상하지 않아? 그동안 우리가 먹었던 것들은 사실 음식이 아니었어. 아무 맛도 안 나.”
일명 ‘샘물 사건’ 후부터, 엄청난 배고픔을 느낀 정범과 하빈은 어느 한구석에 내팽겨친 그들의 식량을 미친 듯이 먹어 재꼈다. 오늘로서 바닥이 난 식량가방을 보고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왜 갑자기 그들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건지 의문도 들었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다. 그들이 샘물을 먹지 않기로 한 것 외에는.
“진짜 마법의 샘물인가봐, 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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