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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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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어둠이 찾아오지 않는 이곳, 밝고 따뜻한 기운만 영원히 지속되는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흠을 찾자면 바로 준원이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바쁘게 걷는 준원의 얼굴에 그림자가 그득하다. 푸르른 수채화에 먹물을 엎지른 듯, 준원의 저런 표정은 이 무인도의 풍경과 걸맞지 않았다.
준원은 방금 전에 들은 아기 울음소리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요새 좀처럼 먹지 않고 시름시름 앓고만 있는 정범에게 평소 좋아하던 꽈배기빵을 뜯어다 줄 참이었다. 무슨 일이었는지 정범은 그렇게 좋아하던 샘물을 더이상 먹지 않았다. 몇 차례 억지로라도 먹이려 시도해보았으나 그때마다 뱉어냈던 정범이다. 그래도 하빈과 둘이 다니며 뭐라도 뜯어먹는지 그럭저럭 살아가고는 있어 당분간은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최근 하빈이 보이지 않았다. 하빈이 오랫동안 찾아오지 않자 정범도 에너지를 잃어갔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직접 음식을 찾아나선 준원이었다. 평소 꽈배기빵을 무척 좋아했으므로, 이거라도 좀 먹기를 바라며 꽈배기 숲속 입구에 다다랐을 때였다. 숲속 저 안쪽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무인도에 아기가 있었던가. 무인도에 우리 외에 다른 사람들도 살고 있었던가. 무결점 미완성교향곡에 스크래치를 내듯, 불협화음처럼 발악하는 아기 울음소리를 멍하니 듣다가 돌아선 준원이었다.
울상인지, 고뇌인지, 불안인지 모를 표정을 얼굴에 잔뜩 구겨넣은 준원은 바쁘게 걸어갔다. 무언가를 찾고 있는지 주변을 훑어가면서. 잰걸음으로 준원이 도착한 곳은 커다란 나뭇잎들로 둘러싸인 거대한 폭포였다. 우레와 같은 소리로 사방을 요동치며 포효하는 폭포에 귀가 멍해지는 준원이다. 거세게 수직낙하하는 폭포수로 근방은 요란하게 흔들렸고 뿌옇게 일어난 물안개 속으로 기다랗게 아른거리는 무지개가 보였다. 그리고, 물줄기에 섞여 따끔한 무언가들도 함께 쏟아졌다. 근래 자주 내리는 비비탄 총알비이다. 주변에 범석과 승혁이 있다는 뜻이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포효하는 폭포는, 숨어서 들키지 않고 전쟁하기에 딱 좋은 곳이었다. 어쩌면 이 폭포소리도 그들이 쏘아대는 총소리일 수도 있을 터였다. 준원을 향한 총알비가 거세지자, 준원은 서둘러 파란 우산을 펼쳤다. 익숙하게 우산을 몇 차례 돌렸고, 곧 아군임을 확인한 누군가가 물안개 밖으로 나왔다. 승혁이었다. 준원을 확인한 승혁은 주춤하더니 다소 놀란 듯했다.
“그만 좀 싸워라. 이번엔 또 뭔데?”
“서범석 그 새끼, 인정머리가 없잖아. 사람이 아니라니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야. 이상한 게 한두가지가 아니라고. 싸움 좀 그만하고 우리의 무인도에 관심 좀 가져봐.”
“야, 너 말 서운하게 한다. 내가 지금 누굴 위해 싸우고 있는데. 섬의 질서를 위해서 이 한 몸 희생하고 있는 거 아니냐.”
“그니까, 희생하지 말고 같이 힘을 합쳐보자고.”
준원을 잠시 응시하던 승혁은 두 눈을 씰룩거리며 콧방귀를 낀다. 새어나오는 웃음을 누르며 준원에게서 우산을 가져가 고이 접는 승혁이다.
“일단 동생들이 어디 있는지는 아냐?”
“동생들?”
“지금 며칠째 하빈이가 안 보이잖아. 그리고 오늘은 하루종일 정범이도 안 보여. 걔들 어디 갔냐?”
승혁은 접은 우산으로 땅바닥을 꾹꾹 눌러 구멍을 낸다. 뭔가를 생각하다가 우산을 파진 구멍에 꽂고는 한숨을 내쉰다.
“하빈이도 없어졌다고?”
“없어진 지 오래됐지.”
“...내가 그래서 서범석 그 새끼를 싫어하는 거야. 처음부터 그런 인간미라곤 없는 새끼랑 여기 같이 오는 게 아니었어.”
“왜? 너 뭐 알고 있는 거 있어?”
우산을 빼서 준원의 손에 쥐어주며 한동안 준원을 바라본다. 그러다 또한번 한숨을 깊게 내쉬는 승혁이다.
“내 입으로 말 못하겠다. 네가 나중에 직접 가봐라. 다른 건 또 뭐 있어? 우리가 힙을 합쳐야 하는 그런 거.”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는 승혁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하는 준원이다. 준원은 승혁에 가까이 다가가 주변을 의식하며 작은 목소리로 운을 뗐다.
“여기 무인도가 아닐 수도 있어.”
“그건 무슨 말이야, 또?”
“우리 말고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 같아. 내가 아까 무슨 소리를 들었거든.”
“그래! 그래! 맞지?!”
준원의 말에 승혁도 맞장구를 치며 크게 소리쳤다. 이에 준원이 오히려 당황하며 승혁에게서 물러났다.
“어쩐지! 글쎄, 우리 식량이 다 사라졌다니까! 전부 다!”
“식량이 사라졌다고?”
“그래! 우리가 챙겨온 거 있잖아. 과자랑 음료수랑 그런거. 몽땅 다 사라진 거야. 그런데 웃긴 건 뭔지 알아? 서범석이 정범이랑 하빈이가 그 식량을 다 털었다는 거야. 이제 하다못해 동생들을 도둑으로 몰아세웠다니까. 미친놈이.”
“정범이랑 하빈이가 그랬다 했다고?”
“그래. 그 둘 잡아서 혼쭐을 내주겠다는 걸 내가 말렸잖냐. 뭐 소용은 없었지만. 어쨌든 내가 힘없는 어린 두 친구들을 위해 피나게 싸우고 있다는 것만 알아줘라, 친구. 그런데 너 그건 어떻게 알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건. 누굴, 본 거야?”
“누굴 본 건 아니고. 무슨 소리를 들었거든.”
“무슨 소리?”
“아기 울음소리.”
“.......?”
“꽈배기 나무 숲 알지? 거길 지나가는데 아기 울음소리가 엄청 크게 나는 거야. 갓난아기 울음소리가.”
승혁은 순간 멈칫하더니 아무말 없이 준원을 쳐다보았다.
“아기, 봤어?”
“아니. 소리만 들었어. 괜히 무섭기도 하고, 정범이도 빨리 찾아야 하고.”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승혁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아기, 얼굴 보면 더 무서울걸.”
과연 아기의 얼굴은 무서웠다.
승혁은 웃는 건지 일그러진 건지 모를 애매한 표정을 남긴 채, 그렇게 준원의 앞에서 사라졌다. 아니, 도망쳤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마지막 말과 함께. 승혁의 마지막은 미안한 듯 보이면서도 콧방귀를 뀌며 실실 웃고 있던 이상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지금 준원의 앞에는, 갓난아기가 되어버린 정범이 세상을 무너뜨릴 듯한 기세로 바락바락 악을 써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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