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싶지 않은 스물여덟의 일상
나는 어렸을 때부터 백화점에 가서 어른들 옷을 구경하는 걸 좋아했었다. 난 나중에 커서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일을 해야지 혼자 상상하며 행복해하곤 했다. 돌이켜보면 상상 속 나는 항상 정장을 입고 구두를 신었고, 미팅과 프레젠테이션을 자주 하는 바쁜 일상 가운데에서도 운동을 꾸준히 하며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는 비현실적인 인물이었다. 외국에서 유학을 하고 큰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쓴 자기 계발서도 몇 권 읽었던 것 같다 (푸핫:)
이십대 후반에 접어든 지금의 나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사실 상상한 바와 정말 다르다고 볼 순 없다. 꽤나 근접하게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불편해서 굽은 자주 못 신지만, 회사에선 정장이나 그 비스꾸무리한 것이라도 입어야 한다. 런던을 가로지르며 출퇴근을 하고 있고, 미팅이 많을 때엔 하루에 6개를 소화하기도 한다. (아, 물론 화장은 대충..)
어렸을 적 꿈과 얼추 비슷하게 살고 있는 지금의 나는 얼마나 만족하고 있을까. 일단 당장 이직하거나 이민 가고 싶은 마음은 없고, 가족이나 친구들과 내 얘기를 하는 것에 스스럼없다. 칼퇴 후 남편과 요리해서 저녁 식사를 하고, 집안일을 하거나 드라마를 챙겨보는 소소한 일상이 행복하다.
그러나 점점 더 생각을 멈추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두려운 마음이 든다. 특히나 내 생각을 글로 담는 것이 가면 갈수록 어렵다. 지금까지 썼던 글들도 나의 커리어에 관련하여 객관적인 사실을 담는 것이었다. 그런 글을 쓸 때에는 구체적인 주제만 정해지면 비교적 빠르게 단락이 채워졌는데, 나의 경험과 생각을 담는 글은 너무나도 느리고 어렵다.
2년 전 취업과 이민을 했을 때에는 매일 일어나는 일들이 신기하고 감격스러웠다. 그래서 하나하나 기록하고 싶었고, 스스로 성장하고 싶었다. 그때는 더 불안정했고 걱정이 많았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조금 더 안정되면 많이 경험하고, 생각하고, 기록하겠다 다짐했다. 하지만 오히려 약간의 여유가 생긴 지금도 일상을 살아내는 데에 급급하다.
내가 잘살고 있는 걸까 초조한 마음이 들 때면 글을 쓰기 시작한다. 어떤 글을 쓸까 주제를 생각해보면 내가 요즘 어떤 생각을 하고, 회사에선 어떤 그림을 그리며 일하고 있는지 조금 더 구체화된다. 아직
조금은 먼 얘기지만 유럽 어딘가에서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건 어떨까, 한국인 디자이너로서 회사에서 어떤 차별점을 가질 수 있을까, 이직은 언제 어디로 하면 좋을까, 이러한 한계들을 극복하고 내가 과연 디자인 매니저가 될 수 있을까, 내가 원하는 방향은 구체적으로 어디일까, 10년 뒤에도 나는 회사원 디자이너고 싶을까 등등.
그런데 긴 글을 꾸준히 자주 써내려 가는 것이 어렵다. 그리고 가끔은 스스로도 지루하다. 그래서 고안한 나만의 방법을 실천해보려 한다. 회사에서나 출근길 튜브에서나 집에서나 교회에서나 내가 겪고 있는 경험을 근거로 짧은 스토리를 묘사하고 그 안에서 생각을 추출하는 연습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스토리와 생각을 담은 간단한 일러스트를 하면 좋겠다.
어느 정도 스토리가 모인다면 이를 모아 인스타 계정을 파고 싶다. 더 모인다면 웹이나 앱을 디자인하고 개발하여 퍼블리싱하는 것도 좋겠다. 그렇게 나의 경험 조각들을 모아 간다면 언젠간 나만의 스타일과 스토리가 브랜딩 되지 않을까.
A piece of eXperi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