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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선 Jan 26. 2022

책임을 미루는 기도

딸과 손자 둘이 자고 있다. 커피를 타가지고 조용히 들어와 바로 이 방 내 책상에 앚아있다.

다른 때와 방의 냄새가 다르다.

평소 난방하지 않는 방이 오랜만에 최대로 올린 난방으로 인해 춥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따수운 냄새를 피워서일까싶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사람냄새일 테다.

처음에 들리지 않던 손자의 쌔근쌔근 숨소리도 들리다말다 한다.

그 숨의 냄새도 깜깜한 방안을 따뜻하게 만드는 만든다.


이런 따순 냄새를 내지 못하는 가엾은 존재들이 바깥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지.


학대받고,

외면당하고,

버림받는,

어리거나, 나이 많거나, 가난해서, 미움받아서 아무런 힘없는

차갑고, 아리고, 비릿하거나, 퀴퀴하게 썩어가는 냄새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멍이 들고,

부러진 이들의 몸 그래서 그만큼 죽음 외에는 다른 마음이 비집고 들어갈 수 없을 차디차 부패할 리 없으나 부패해가고 있을 인생들.


나의 신.

당신께서 이들에게 온기를 불어넣어주시기를.


당신께 부탁해서 미안합니다.


어린 두 손자라고,

아픔이 없는 게 아니다.

누구나 다 그럴 테지만,

어리다는 이유로,

제 생각이나 입장을 할 말을 다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그저 꿀꺽 삼켜야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을지.


평생에 당신이 동행하셔서,

좌충우돌 제 길을 가는 동안 힘이 되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스스로 하지 못하고,

당신께 부탁드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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