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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선 Feb 07. 2022

잔인한 시절이 지나갔다.

큰딸이 둘째 손자 달을 출산했다. 모두가 기뻤지만, 엄마를 독점해왔던 큰 손자 해는 출산하러 병원에 간 엄마의 빈자리에서 당황하고 슬프게 울었다. 엄마가 안고 돌아온 동생 달 앞에서 어쩔 줄 몰랐다. 이쁘고 신기하기도 했지만, 전과는 달라진 집안 분위기가 편하지만은 않았다. 그러다가 2주 동안 엄마를 독차지할 수 있었다. 마냥 좋은 일은 절대 아니었다. 처음 첫 주는 폐렴에 걸려 엄마와 함께 병원에 입원한 것이다. 처음 피를 빼고 주사를 맞는 과정에 적응하느라 몹시 힘들었다. 그래도 엄마와 함께라서 좋았고, 병원으로 아빠가 오고, 할머니와 할아버지, 이모가 들락거리니 웃을 수 있었다. 병원에서 퇴원해 다시 달과 엄마를 나눠야 했는데, 이번에는 달이 폐렴에 걸려 병원으로 갔다. 생후 한 달이 안 되어 달은 인큐베이터에 들어가게 되었고 해는 집에서 엄마를 독차지하며 예전처럼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기간을 보상하라는 듯, 인큐베이터에서 나온 달이 또다시 병원에 입원했다. 중이염이었다. 이번에는 달이 생후 한 달을 넘긴 뒤라 엄마가 달과 함께 병원에 있어야 했다. 해는 아빠와 집에 있었다. 아빠가 휴가를 냈고, 토요일과 일요일도 있었다. 끝까지 그럴 수 없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와서 상암동 할아버지 집으로 데려왔다. 익숙한 곳이고 해는 할아버지를 제일 좋아해서 괜찮긴 하지만, 엄마가 보고 싶었고 몸이 힘들 정도로 기운이 없었다. 할머니와 이모가 밖에 나가자고 하는데, 따라갈 힘이 없어 싫다고 했다. 그런데도 자꾸 같이 나가자니 따라 나갔다. 자꾸 주저앉고 싶었다. 속이 울렁거렸다. 할아버지 집에서 하루 잤을 뿐인데, 달이 퇴원한다고 했다. 아빠가 와서 함께 엄마가 있는 병원에 갔다. 익숙한 곳이다. 전에 사귀고 온 간호사 아줌마와 의사 아저씨가 있는 곳이다. 병원에서 네 식구가 다 함께 나와 집으로 갔다.

 

이제 달과 함께 있는 것도 익숙해질 것 같았다. 그런데 속이 울렁거렸고, 입에서는 침이 흘렀다. 거실 바닥에 침을 흘렸다. 계속 침이 나왔고 뱉었다. 어쩔 수 없었다. 아빠한테 큰소리로 혼났다. 참으려고 애썼는데 잘 안 됐다. 며칠 뒤 달이 또 병원에 가야 했다. 달의 중이염이 다 나았는지 확인해야 했다. 해도 엄마와 달과 함께 병원에 갔다. 병원에는 해가 제일 좋아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와있었다. 반갑지만 몸이 힘들었다. “우리 해, 왜 이렇게 얼굴이 부어있지? 푸석푸석하고. 이상해. 우리 집에 와있을 때도 힘이 없어 이상하다고 생각했거든.” 할머니가 걱정하는 얼굴로 말했다. “해를 데리고 들어오래. 선생님이 해가 전에 입원했다가 퇴원한 거 기억하시고 같이 왔으면 데리고 오래. 달을 데리고 있어.” 엄마가 달을 데리고 의사 선생님께 들어갔다가 나오더니 이번에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달을 맡기고 해를 데리고 의사 앞에 앉았다. 의사 선생님이 해의 가슴에 청진기를 대더니, 깜짝 놀라 말했다. “어머니, 지금 해가 정상이 아닙니다. 심장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아요. 어서 검사받으세요. 아마 당장 입원해야 할 겁니다.” 해의 엄마는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로 해를 안고 검사를 받으러 돌아다녔다. “해의 심장 기능이 40 프로도 채 안 됩니다. 더 검사해봐야 알겠지만, 심근내막염일지 모릅니다.” 엄마의 하늘이 노래졌다. 해도 덩달아 불안했다. 입원실이 잡히는 동안 해의 엄마가 해의 아빠에게 그리고 달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간 해의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검사 결과를 알렸다. 해의 아빠가 집으로 왔다가 눈물을 흘리며 허둥지둥 병원으로 갔고, 잠깐 외출한 할아버지도 들어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해의 지루하고 지난한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확장성심근내막염 같은데 급성인지 만성인지 아직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만성이라면 좀 여유가 있지만, 급성이라면 그럴 여유가 없어요. 중환자실로 옮겨 치료해야 할지 모릅니다. 결과는 장담하지 못합니다. 치료제를 쓰기 위해 해의 심장 기능을 올릴 약을 미리 투여해야 합니다.” 다음 날 의사가 한 말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와 달 모두가 해의 1인 병실에 모여있었다. 해가 “속이 이상해.” 하며 엄마 품에 안기더니 정신을 잃었다. 아무리 흔들어도 볼을 때려도 깨어나지 않았다. 맥박이 200을 넘었다. 의사도 분주하게 병실을 들락거리더니, 어쩌면 부정맥일지 모른다고 했다. S 병원 소아심장과에 연락한 후, 해의 엄마와 의사가 동승한 앰뷸런스가 S 병원으로 떠났다. 해의 아빠도, 할아버지도, 할머니랑 이모도 다 달을 데리고 S 병원으로 갔다. 다시 검사를 시작했고, 해는 부정맥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창원에 계신 해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올라오셨고, 서울에 있는 고모도 달려왔다. 해와 해의 엄마와 아빠를 병원에 남겨두고, 해의 창원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달을 데리고 해의 집으로 상암동 식구들은 상암동으로 갔다.

 

해의 가슴, 다리와 발에 빨간 불이 반짝거리는 줄이 달렸다. 그 줄에 걸려 해는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줄이 나오는 기둥에 붙어 있는 네모난 기계에는 빨갛거나 초록인 숫자들이 엉켜 있었다. 답답하고 무섭고, 불편했다. 가뜩이나 입이 짧은 해가 식사로 나오는 것을 고집스럽게 입에 대지 않았다. "내 방에 갈 거야, 내 방에 가고 싶어~"를 되풀이하며 울었다.

해의 창원 할머니가 창원으로 내려가시고 상암동 식구들 전부 해의 집으로 가서 달을 돌보기 시작했다. 해의 증조할머니도 같이 갔다. 해가 언제 퇴원할지 알 수 없었다. 마침내 해에게 맞는 약을 찾았다. 해가 약을 거부하며 울면서 약을 쏟고 토했다. 드디어 약을 먹기 시작했고, 간호사 아줌마, 의사 아저씨들과도 눈을 맞추고 웃을 수 있게 되었을 때 퇴원할 수 있었다. 새해를 맞기 이틀 전이었다.

상암동 가족들이 상암동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참으로 잔인한 시절이었다. 해와 달, 그 엄마와 아빠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 그리고 해의 증조할머니, 모두에게.


*****


저녁 시간 할머니의 블로그에 과거 손자 사진이 떴다. 블로그에도 이런 기능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고

. 어쩌다 올라온 건지.

할머니는 그 사진을 좇아가다 6년하고도 2달 전 사진들을 만났다. 

당시 마음이 너무 아파 페이스북에는 올리지 못했던 사진들인데

이제는 다만 과거의 사진이 되어있었다.

지금  해는  정기 검진을 받긴 하지만, 잘 자라고 있다.

그렇게 먹기를 싫어했지만, 지금은 저 막을 만큼 먹는다.

잔인한 시절이 지난 지금 해는 그때 과거의 일을 기억하는지 못하는지  자기가 잘것 같이 느낄 때가 있다.

어릴 적 그런 맛도 있어야 좋은 것일 게다.

때가 되어 또 어느 시기가 되면, 그때는  잔인하다싶알 만큼 현타가 또 찾아올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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