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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선 Feb 20. 2022

할머니의 편지 1

존재하는 모든 것이 제 삶을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22. 2. 18.

    

너희 해와 달을 위한 기도를 글로 적어보기로 했어. 기도라지만 편지고, 편지 같지만 기도야. 이 편지를 읽는 분이 너희 말고 또 있거든.

오늘 너희들을 생각하는데 엄마와 딸이 함께 하는 노래 <엄마가 딸에게>가 생각났단다.      



난 잠시 눈을 붙인 줄만 알았는데 벌써 늙어 있었고

넌 항상 어린아이일 줄만 알았는데 벌써 어른이 다 되었고

난 삶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기에 너에게 해줄 말이 없지만

네가 좀 더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마음에 내 가슴 속을 뒤져 할 말을 찾지

공부해라 아냐 그건 너무 교과서야

성실해라 나도 그러지 못했잖아

사랑해라 아냐 그건 너무 어려워

너의 삶을 살아라!     

난 한참 세상 살았는 줄만 알았는데 아직 열다섯이고

난 항상 예쁜 딸로 머물고 싶었지만 이미 미운털이 박혔고

난 삶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기에 알고픈 일들 정말 많지만

엄만 또 늘 같은 말만 되풀이하며 내 마음의 문을 더 굳게 닫지

공부해라 그게 중요한 건 나도 알아

성실해라 나도 애쓰고 있잖아요

사랑해라 더는 상처받고 싶지 않아

나의 삶을 살게 해줘!     

공부해라 아냐 그건 너무 교과서야

성실해라 나도 그러지 못했잖아

사랑해라 아냐 그건 너무 어려워

너의 삶을 살아라!     

내가 좀 더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던 걸 용서해줄 수 있겠니

넌 나보다는 좋은 엄마가 되겠다고 약속해주겠니     



노래 가사를 따라 할머니의 신께 부탁을 드렸어. 너희들의 삶을 살게 해달라고.

할머니의 신이 누구냐고? 응 보통 사람들이 하느님이라고 부르는 분이야. 그런데 할머니는 왜 나의 신이냐고?

하느님이 같은 분이지만, 아주 오래전에 사신 분들, 혹은 다른 나라 다른 마을에서 할머니와는 하는 일이 전혀 다른 어떤 분들은 할머니와 다르게 하느님께 이야기하고 다른 부탁을 드릴 것 같아서, 그러면 할머니에게 해주시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느님은 그분들께 들려줄 것 같아서. 할머니가 알고 있는 하느님이 다른 분들이 알고 있는 하느님과는 조금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아마 할머니가 사는 것과 다른 시대에 살아갈 너희들이 만나게 될 하느님도 할머니나 다른 분들이 알고 있는 하느님과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하느님은 할머니와 다른 분들, 그리고 너희들이 알게 될 하느님 모두를 더한 것보다 훨씬 큰 분이니까 우리가 도저히 다 알 수 없는 분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래서 계속해서 더 알아갈 수 있는 분이고, 무엇이든 물어보고 부탁할 수 있는 분이기도 해.      



해와 달, 너희들이 너희들의 삶을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다 보니 별도 생각나고 산도, 바다도, 강도, 들도 꽃도 생각이 났어. 누구냐고? 별은 할머니 옆집에 사는 해보다 두실 많은 형이야. 산, 바다, 강, 들, 그리고 꽃은 얼굴도 보지 못한 다섯 명의 아이들이야. 이름을 기억하기 힘들어서 할머니 마음대로 그렇게 이름을 지었어. 그리고 너희들처럼 별과 산, 바다, 강, 들, 그리고 꽃 모두 자기의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되었어.  모든 게 연결되어 있어서 그럴 거야.

어른들도 힘들게 살아가지만, 너희 아이들도 사는 게 참 힘들 거야. 네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한 날이 길었잖아. 그때 할머니와 할아버지, 이모와 노할머니가 다 같이 너희 집에 가서 달을 봐줬잖아. 달이 우유를 빠는 데 없는 머리털이 젖을 정도로 땀이 나는 거야. 그 모습을 보면서 작은 생명이 태어나면서부터 얼마나 힘들게 노력을 해야만 살아가는지 알 수 있게 되었어. 어리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걸 참아내야 하는지. 세상에 약한 존재들이 다 그럴 거야. 어리지는 않지만, 사랑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기운이 없어서, 사람이 아니라서 어른들에게, 가진 게 많은 사람한테서, 기운이 넘치는 사람에게서 학대받는 사람들이 연달아 떠올라. 유치원, 직장, 요양원에서 학대받는 아이들과 어른들. 힘이 없어 말도 하지 못하고 풀이 죽어 있는 살아가는 사람들이.

산, 바다, 강, 들, 그리고 꽃, 그리고 그것들을 둘러싼, 그것들 안에 있는 모든 것들, 엊그제 죽은 햄스터 레인이도.(레인이? 할머니 친구가 길렀던 햄스터야. 2년 조금 더 넘게 살았는데, 사랑은 받았지만, 너무 좁은 공간에서 살다 가게 한 게 가슴 아프대) 모두 모두 연결되어 있단다. 세상의 모든 것이 자기의 삶을 살 수 있어야 너희들도 너희의 삶을 살 수 있어. 그래서 너희 해와 달의 삶뿐만 아니라 수없이 많은 별과 산, 바다, 강, 들, 그리고 꽃들이, 레인이들이 모두 제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했단다.      



아마 3월이 되면 그림동화 한 권이 너희 집으로 배달될 거야. 햄스터 레인이 아버지인 할머니 친구가 소개해준 책이야. 그 친구가 그 책을 읽고 햄스터가 생각나 눈물이 났대. 레인이가 살아있을 때 더 잘해줄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서. 할머니도 아직 내용을 잘 몰라. 강아지 이야기라고 들었는데 제목이 <오리 국수>라네. 왜 강아지가 아니라 오리인지 잘 모르겠어. 나중에 너희가 이야기해줘. 이 책을 읽고, 너희들이 살아있는 모든 것에게 할 수 있는 한 잘해주면서 커가면 좋겠어.      



나의 신께 부탁드립니다. 우리의 해와 달과 별들이, 바다와 산, 강과 들과 꽃들이 레인이와 같은 다양한 생명이 예외 없이 제 삶을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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