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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선 Feb 22. 2022

할머니의 편지 2

너희는 어떤 존재일까.

   

해 그리고 달. 오늘도 할머니는 너희를 위해 기도한단다.

사실 너희 둘 말고도 세상에는 얼마든지 많은 해, 달이 있지. 그 해들과 달들, 그리고 별들, 산들, 바다들, 강들, 들들과 일일이 이름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꽃이 있어. 역시 그 이름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이름도 모양도 다양한 레인이가 있지. 할머니가 본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우리가 사는 지구 위에만도 개미가 1만 2,000, 파리가 8만 5,000, 소라가 1만 8,000, 육지에 사는 달팽이만 3만 5,000, 매미가 2,500, 국화꽃도 2만 종류가 넘는대. 대단하지. 더구나 사람이 알아낸 것만 이러니, 실제로는 얼마나 더 많을까. 그런데 더 놀라운 건 그 하나하나가 다 연결되어 있다는 거야. 예를 들어 벌이 없다고 생각해봐. 꽃가루를 나르는 게 없어지는 거지. 그러면 우리가 먹는 열매가 열릴 수 없는 거야. 지렁이나 땅속 벌레들이 없다고 생각해봐. 그러면 흙이 딱딱하게 굳겠지. 지렁이나 땅속 벌레들이 분비하는 배설물들이 주는 양분도 없어지면서 땅 숙에 양분도 없어지는 거지. 숨도 쉬지 못하고 영양분도 없어지니까 결국 우리가 땅에 감자 고구마 쌀과 과일나무를 심어도 잘 자랄 수가 없는 거야. 이런 식으로 세상은 다 연결되어 있고 하나하나 모두가 중요한 거란다.      

이런 이야기를 왜 하냐구? 응. 맞아 그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 그래서 할머니가 너희들을 생각하며 기도할 때 이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위해 함께 기도한다고 말하려고 한 거야.

그러니까 할머니가 생각하는 해, 달, 별, 산, 바다, 강, 들, 꽃, 레인이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이 될 거야. 사실 그 어떤 것보다 너희 둘과 옆집의 별, 그리고 산, 바다, 강, 들, 꽃, 이미 죽은 레인이가 더 마음에 닿지. 그렇지만 너희들을 생각하면, 너희들 가족, 그리고 할머니와 친구였던 사람들, 새로 친구가 된 사람들, 여기에 다 늘어놓을 수 없지만, 할머니와 가깝게 지내는 그런 친구들이 떠오를 거야. 너희들을 지켜줄 나의 우주. 우리를 둘러싼 자연을 포함한 할머니의 작은 우주를 떠올릴 거야. 너희들은 그런 존재야. 너희를 생각하면 다른 누구를 다른 무엇을 떠올리며 그것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는 사랑받고 사랑하게 만드는 그런 존재.     

오늘은 너희들은 어떤 존재일까 생각한다.

레이첼 카슨이라는 할머니, 지금은 돌아가시고 없지만 그야말로 위대한 할머니가 있었어. 그 할머니 때문에 살아있는 사람들과 생명을 죽게 만드는 살충제가 얼마나 위험한지 세상에 알려준 분이야. 과학을 사랑한 과학자였는데, 과학을 잘못 사용하면 얼마나 위험한지 그 할머니 때문에 세상이 알게 된 거야.  무엇보다도 자연의 무한한 아름다움과 깊이를 알려준 분이야.   그분 때문에 지구의 날도 생겼단다. 4월 22일, 지구를 위한 날이지. 물론 지금도 우리가 먹는 식품을 기른다고 살충제를 뿌려 당 속 생물들을 죽이고 있지만, 많은 사람이 살충제가 얼마나 지구를 아프게 하고 너희들을 아프게 하는지 알기에 살충제를 쓰지 않고 쌀, 콩, 채소, 과일을 키우는 분들이 있긴 해. 체, 달걀을 많이 먹고, 닭고기를 많이 먹으려고 닭이 잠을 못 자게 하고 좁은 창살 안에 가둬 키우고, 그러니까 병이 나지 않도록 항생제라는 주사를 놔서 키우지만, 역시 닭이 넓은 닭장에서 풀을 먹으며 건강하게 살도록 하면서 달걀을 생산하는 분들도 있단다.


아 말이 딴 데로 새버렸네. 그분이 과학자였지만 글도 너무 잘 쓰셨어. 그분이 살아계실 때 미국 전체 책들을 통틀어 제일 잘 쓴 책에 주는 상이 있는 데, 그 상도 받으셨거든. 그런데 그분이 어떻게 해야 글을 잘 쓰냐고 묻는 고등학생들에게 하신 말이 있었어. 쓰려고 하는 글이 글을 쓰는 사람보다 훨씬 크다고 그래서 글을 쓰려고 하는 그 내용을 깊이 알려고 해야 한다고 하셨어, <진리의 발견>이라는 책에서 읽었는데, 아직 너희들을 읽을 수가 없어, 나중에 커서 생각나면 꼭 읽어봐. 그 책 안에는 감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멋있는 분들이 정말 많거든.     

그래서 할머니는 생각했지. 너희를 위해 기도하려면, 할머니의 작은 우주를 위해 기도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너희들을, 나의 작은 우주를 이해해야 한다고. 그래야만 <엄마가 딸에게> 노래 가사처럼, 자신도 잘할 수 없었던 것들 공부, 사랑, 성실을 너희들에게 요구하다가 뒤늦게 후회하는 일이 없을 것 같아. 사실 할머니도 너희들 엄마에게 그렇게 했거든. 그리고 나중에는 후회해서 미안하다고 했고 할머니 태도를 바꿨는데, 여전히 미안하거든,      

너희들은 엄마와 할머니가 아는 것보다 훨씬 많은 걸 갖고 있어. 아마 끝도 없이 알 수 있을걸. 할머니의 작은 우주 안에서 만날 수 있을 수많은 생명이 또 그렇게 많은 걸로 서로를 돕고 살아가는 거야.      

너희들 안에 뭐가 어떻게 있을까. 할머니는 다만 너희들 하나하나가 다 너희들 안에 갖고 있는 독특함이 드러나고 그 독특함으로 서로에게 힘이 되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갈 수 있기를 기도할게.      

할머니가 며칠 전 읽은 책이 있는데 제목이 <그럼에도 눈부신 계절>이야.

그 책을 읽다가 매실이라는 열매를 조금은 알게 되었어. 책을 쓴 분이 매실의 맛이 어떤 건지 알려주셨는데 그 부분을 읽다가 매실이라는 작은 열매 하나 조차 작은 우주라는 걸 알게 되었더. 그 안에 얼마나 많은 맛이 깃들어 있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그 작은 열매 하나가 할머니에게 위대하게 느껴졌어. 들어봐.      

●6월 매실을 수확할 때 즈음이면 일본에서는 우메보시를 담근다. 우리가 먹는 매실장아찌와 달리 일본의 우메보시는 설탕이 아닌 소금을 사용한다. … 나는 유독 일본의 여름 날씨를 견디지 못하고 입맛을 곧잘 잃었다. 그런 나에게 엄마가 내민 것은 영양 가득한 삼계탕도 전복죽도 아니었다. 하얀 쌀밥 가운데 우메보시 하나를 박아두고 뜨거운 녹차를 부어주셨다. 시큼한 우메보시 맛을 즐기지 않았던 나로서는 여관 난감한 게 아니었다. 어떻게 이걸 찍어 먹어야 하나 밥 한 그릇 앞에서 고개를 떨구고 차마 입으로 가져가지 못했다. … 나는 밥그릇을 들고 매실 맛이 짙어지기 전에 언저리부터 먹어나간다. 가운데로 갈수록 짙어지는 매실의 맛, 한 입 입안에 머금는 것만으로도 마치 금구류의 알갱이 하나하나가 살아 일어나듯 나의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그 시큼함에 기지개를 펴는 것처럼 살아난다. 녹차에 쓴맛, 매실의 신맛, 시간이 스며든 짠맛, 갓 지은 밥이 남기는 구수한 맛이 차례차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비강을 뚫는 신맛과 혀뿌리에서 박히는 쓴맛과 짠맛, 이 모든 것이 넘어간 다음 남게 되는 구수한 맛까지. 작은 매실 안에 담겨진 맛은 작은 우주다. 개성 강한 여러 맛들이 입안에서부터 기도를 타고 식도로 내려가 장기 하나하나를 깨우게 하는 이 음식은 화려한 장식 속에 의기양양하게 얹어진 자연산 회 몇 점이 아닌 쌀밥 위에 얹어진 하찮은 우메보시 한 알이다. … 그 밥을 먹은 날은 잃어버린 입맛이 돌아왔을 뿐 아니라 땀으로 빠진 염분도 보충할 수 있었다. …

마지막까지 매실을 남겨 뜨거운 녹차를 다시금 부어 젓가락으로 매실을 흩뜨리면 매실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자신의 몸을 허물어뜨려 속살을 보이고 안으로 안으로 감추어둔 최후의 신맛과 짠맛을 드러내 보였다.●     

한 계절 왔다가 사라지는 열매의 맛이 그런데, 1, 2년도 아니고 10년, 20년, 30년, 할머니같이 60년 삶을 훌쩍 넘어 70년에서 어쩌면 100살까지 살아가며 드러낼 너희들 안에는 어떤 맛, 얼마나 많은 맛이 깃들어 있을까. 할머니의 우주 안에 있는 그것들 하나 하나 안에 들어있는 그들만의 우주 안에는 어떤 것들이 들어있을까.      

할머니의 작은 우주, 그리고 그 안에 하나하나 안에 또하나의 우주가 안전하기를 아름답게 드러나기를 기도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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