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희선 Feb 24. 2022

할머니의 편지 3

전쟁이 없는 세상, 그리고 과거 아름다웠던 바다를 물려줄 수 있기를.

너희들한테 전쟁이 없는 세상, 그리고 과거 아름다웠던 바다를 물려줄 수 있으면 좋겠어.      

영화 <1917>과 다큐멘터리 <미션 블루>를 시청했어. 마음이 정말 아팠어. 그리고 할머니의 신께 전쟁 없는 세상, 아름다운 바다를 너희들에게 물려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단다.      

1917년이었어. 1차 세계대전 전투가 한창이었어. 1600 명의 병사들이 독일군의 속임수에 속아 몰살될 상태였어. 그 소식을 전해야 하는데, 독일군이 미리 통신장비를 끊어 놓아 연락할 수 없게 해놓은 거야. 어쩔 수 없이 두 명의 영국 군인 친구가 그 소식을 전하기 위해 1600명 병사가 있는 곳에 직접 가서 전해야 했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일이지. 그 하나하나의 과정이 얼마나 위험하고 두려운 일인지. 친구 중 한 명이 죽어. 슬퍼할 시간도, 울 수도 없었어. 거의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쯤 정신없이 울다가 다시 목적지로 행해 임무를 완성해 다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었어. 대부분의 전쟁 영화가 그렇듯, 이 영화도 모든 전쟁이 얼마나 비극적인지 알려주면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어.


전쟁 안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가련하게 죽어가는지. 그 과정이 끔찍한지. 전쟁은 그야말로 악마의 얼굴이야. 전쟁이 아니라면 친구가 되었을 사람들이 서로 죽이게 하는 악마. 전쟁에서 사람은 사랑할 대상이 아니라 그냥 전쟁의 도구가 되는 거야.

영화에 이런 대사가 나온단다.

“돌격 준비! 전우가 쓰러져도 그냥 간다.”


전쟁에 이기기 위해 사랑하는 누구도 의미가 없어지는 거야. 누군가를 위한 전쟁은 없어. 있다면 그건 자신의 탐욕을 위해 사람의 목숨 따위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전쟁을 일으킨 한 두 사람일 거야.      

독일군의 속임수가 있다는 소식을 들은 장교는 이렇게 말해.

“오늘은 끝날 거란 희망이 있었다.”, “희망은 위험한 거지.”, “다음 주면 다른 명령이 내려올 거다. ‘일출과 함께 공격하라’”, “이 전쟁을 끝내는 길은 하나뿐이다. 마지막 한 사람까지 죽는 거지.”     

그래 전쟁은 결국 싸울 사람이 없을 때까지 사람을 죽이고야 끝나는 거야. 그런데 사람들은 여전히 땅을 더 가지려고, 자원을 더 빼앗으려고 전쟁을 불사하고 있단다. 다만 전쟁이 너무 많은 걸 잃어버리니까 기회를 볼 뿐 쉽게 덤벼들지 못할 뿐이야.

며칠 전에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단다. 이런 전쟁은 또 다른 나라들을 전쟁에 끌어들이게 돼. 누군가는 전쟁 때문에 돈을 벌게 되어 좋아하기도 하지. 전쟁은 정말 악마의 얼굴이고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도 악마가 되게 하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야.      

기도하지만 이 땅에서 전쟁은 끝나지 않을 거야. 그동안 많은 이들이 그런 기도를 해왔고 지금도 그렇지만 언제나 전쟁은 일어났어. 앞으로는 기후가 올라가고 지구 곳곳이 바다에 잠기게 되고, 식량 생산도 줄어들겠지. 그러면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식량을 구하기 위해, 자기가 살던 땅을 버리고서 다른 곳을 찾아 헤매게 될 거야. 난민이 되는 거지. 그럼 가뜩이나 모자라는 땅과 식량을 지켜내기 위해 어떻게든 난민이 자기 나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려고 하다가 또 전쟁이 일어날 거야.

그런데 왜 기도하냐고?     

할머니의 신은 우리가 기도하는 대로 일하시는 것 같지 않아. 그런데 기도하다 보면, 기도하는 할머니가 무엇을 할지 알게 하시더라. 그래서 할머니 자신이 바뀌는 것 같아. 그렇게 할머니의 신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천천히 바꿔 가시는 것 같아.     

할머니는 글을 쓰는 사람이야. 오래전부터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그렇게 된 지 얼마 안 됐어. 글을 쓸 수 있으려면 준비가 많이 필요한 데, 이제까지 살아온 삶, 기쁘고 슬펐고, 힘들었고 감사했고, 딸들을 낳아 기르고 직업을 가지고 해왔던 일들이 오래 쌓이면서 지금에서야 할머니가 마음속 바랐던 일들이 이루어진 것 같아.      

그래서 오늘도 기도해. 전쟁 없는 세상이 오게 해달라고. 너희들이 자랐을 때는 군대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미션 블루>를 보면서는 바다에서 말도 안 되는 핵실험을 하고, 사람들이 편히 살려고 바다에 구멍을 내고 석유를 끌어 올리고 하면서 끔찍한 충격을 받아오면서도 유지되어온 바다가 더 이상은 파괴되지 않은 채 너희들에게 물려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어. 그러다 보니 할머니는 또 이런 글을 쓰고 있어. 그게 기도하면서 할머니가 하게 되는 일인 것 같아.      

그리고 어제는 좋은 소식이 있었어.

산이 형이 대학에 가지 않고 요리사가 되겠다고 했대. 산이 형 엄마는 그러지 말고 대학에 가라고 권했나 봐. 여섯 달 동안 싸웠대. 사실 싸움이 아니라 씨름을 한 거겠지. 그런데 산이 형 엄마가 멋져. “그래 너는 네 길을 가라. 엄마는 네가 대학을 가든 안 가든 그건 네 몫이니 기도할게. 네가 선택한 거니까.”라고 했다는 거야. 그리고 요리 실습 도구도 사줬대. 너희들은 모르겠지만 엄마 아빠들은 자식이 더 좋은 길로 갈 수 있기를 바라며 얼마나 걱정한다고. 그래서 도리어 사이가 나빠지기도 하고. 자기 길을 찾아가지 못하는 자식들도 있어. 산이 형 엄마가 마음을 비우고 신이 형을 밀어줬지만. 그래서 마음을 비웠지만, 마음이 편할지만은 아닐 텐데 할머니는 기꺼이 속으로 축복했어. 건강하고 좋은 요리사가 되게 해달라고.

사실 너희 모두에게 같은 기도를 하지만, 산이 형 역시 제 삶을 살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거든. 그런데 꼭 그 기도가 이루어진 것 같았어. 사실은 할머니의 기도가 이루어진 게 아니라, 할머니의 신이 산이 형을 어떻게 만들어가고 있는지를 발견한 거겠지.     

너희들, 세상의 모든 해와 달, 산과 바다, 강과 들, 그리고 꽃들이 제 삶을 살기를. 그 삶이 아름다운 방향을 갖게 되기를.

그리고 전쟁 없는 세상, 아름다운 바다를, 지구를 너희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기도할게.      

나의 당신. 이 모든 이야기를 들으셨지요!


작가의 이전글 할머니의 편지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