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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선 Aug 20. 2022

<몸을 돌아보는 시간 2>-8

이해

씨부럴, 씨발, 미친, 우하하하, ㆍㆍㆍ

그녀가 사용하는 언어는 거칠었고 목소리는 컸다. 쩌렁거렸다.  '안그려요?','그렇잖아'라는 말은 그녀의 생각이 얼마나 확고한가를 나타내주는 것 같았다.

누군가와 전화를 하면 그건 중계방송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병실에 있는 어느 누구도 인상을 찌푸리지 않았다. 도리어 말을 걸었고 격려하는 듯했다. 똑부러진다고 칭찬까지 해주었다. 좋은 분들이 확실한 듯.


나는 슬며시 짜증이 났다. 설마 늦은 시간이 되어도 그러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도 생겼다. 어지러움 증상이 줄었고 일어나 앉았고,  환자간 영역을 지켜주는 커튼을 젖혔다. 그리고 그녀를 보게 되었다. 그녀의 얼굴과 팔이 먼저 보였다.

머리는 거의 박박머리에 가까왔고, 팔은 아주 짧았으나 충분히 굵고 단단했으며 손가락은 굵었다.  

앉아있는 그녀는 단단하게 보이는 몸에 비해 아주 작았다.


순간 나는 그녀를, 어쩌면 그녀의 모든 상황을  단번에 이해할 것도 같았다.

사실 그녀의 거친 말에는 분노가 섞여있지 않았고, 그녀의 웃음은 자기 스스로 흥을 돋우는 기술같았다.

그녀는 그렇게 스스로 흥을 돋우며 하루를 버텼고, 하루를 누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말이 많았다. 생판 남인 내가 그녀의 사정을 짧은 시간 안에 꽤나 알게 된 건 그래서였다.


약 때문인지 늘어진 채  잠이 들었다가 그녀의 큰 소리에 깜짝 놀라 깼다.


큰 소리의 정체는 그녀가 방금 도착한 간병인과 인사를 나누는 소리였다.


몇살?

어머 쥐띠?

나는 범띠!

쥐띠와 범띠는 잘 맞는다는 데. 어쩜!

그리고는 흔히 간병인을 칭하는 '여사님'이라는 호칭 대신 '언니'라는 호칭이 왔다갔다 했다. 서로가 언니인 그녀와 간병인의 대화가 끝나지 않았다. 실은 그녀가 말을 했고 그녀보다 한 살 어린 간병인 언니는 추임새를 넣는 형편이었다.


그녀가 주민센터에 전화를 걸었고 복지 담당자랑 통화가 시작되었다.


"제가 대상포진으로 입원을 했는데유. 혹시 간병인 비용을 보조받을 수 있는지 알아봐주셔유."

상대방이 어떻게 답했는지는 들리지 않았으나 그리 좋은 반응은 아니었나보다. 언성이 높아졌고 옥신각신 격앙된 대화가 오갔다.

 

"알아보고 가능허면 되는 쪽으로 해주시고 연락주셔요잉."

당연하고 적절한 방향으로 대화가 끝나는 듯했다.


전화가 끝나고 씩씩거리며 '미친년'을 연발하는 그녀는 아마도 거의 모든 통화내용을 녹음하는지, 이번 통화도 녹음했고, 역시나 중계방송하듯 재생했고, 나는 강제적으로 통화내용을 들으며 그녀가 통화중 격앙된 소리로 화를 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간병인 비용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 하겠는데요. 따님이 있으시잖아요."

"네. 딸은 있는데 이미 출가외인이고 자기 살림 하는데 문병이면 몰라도 저를 종일 간병해줄 수는 없지유. 지 아이가 셋이어유. 어린 게 다섯살에  학교댕기는 것 둘이나 있는데 저를 봐줄 수는 없쥬."

ㆍㆍㆍ(중략) "근데 애가 셋이라고 자기 어머니를 간병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는 건가요?"


나는 젊은 여자 목소리의 복지담당자가 하는 말을 듣고 내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 애가 셋이라고 자기 어머니를 간병하지 못하는 게 말이 되냐고?'


21세기 우리나라 복지담당자 입에서 나오는 말이 이럴 수 있다니.


미리 말했지만, 결론은 간병인비를 보조받을 수 있는지 확인해 연락해 주는 것으로 끝났으니 적절했지만.


아직도 환자의 돌봄은 무조건 가족이 책임져야 한다는 의식을 가진 개인이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리고 그녀가 살아온, 그리고 살아가야할 세상이 참으로 힘들고 아팠고, 그리고 여전히 아프겠구나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녀의 악의는 느껴지지 않는 거칠고 심지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폐가 될 만큼 큰, 교양 따위는 갖춰지지 않은 날 것 같은 목소리와 내용이 싫지 않았다.

그녀는 병원에서 나오는 이른 저녁을 먹은 후 둔탁한 소리를 내는 아주 짧은 목발을 짚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물론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아휴. 운동을 못하고 침대에만 앉아 있으니 다리가 터질 것만 같이 아파 죽겠어 !"


그녀는 목발 대신 침대 난간을 붙잡고 위아래로 몸을 움직여 다리 운동을 한 뒤 다시 침대로 다시 올라가 조용히 잠들었다. 더는 큰 소리로 병실 사람을 힘들게 하지 않았다.


밤새 소변이 흐른다고 간병인을 깨워 종이 기저귀를 갈아야 했고 그때마다 내가 깨어 뒤척여야 했던 건, 순전히 나의 수면 건강 문제였다.

간병인 언니 역시 힘들었겠으나, 그것은 간병인 언니의 일이었다.


이번 병실에서의 경험이 나를 조금은 바꿔놓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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