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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선 Aug 22. 2022

소설<4개월>-4


이 한 줄의 다른 역사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이때부터 정수와 혜영은 다른 세계 안에서 살기 시작했다. 정수는 신앙의 세계로 들어갔고, 혜영이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살았다. 혜영은 정수를 의지할 수 있었겠으나 어머니였으며, 친구였고 뜨거운 동지였던 시어머니를 잃은 정수는 새로운 어머니, 새로운 동지가 필요했을지 모른다. 어려서 전도 받은 기억을 떠올렸다고 했다. 하나님이 아버지라고 들었다. 정수는 교회에서 자신에게 없었던 아버지를, 찾기로 했단다. 어쩌면 어머니를, 어쩌면 동지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성태와 은경이를 키우기 위해서 의지할 대상이 필요했다.     

정수와 혜영은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아닌 엄마와 딸이었고, 남편과 아내였고, 친구였고, 동지였다. 정수가 없는 혜영의 삶은 있을 수 없었다. 정수가 있어서 혜영이도 살 수 있었고, 성태와 은경이가 무탈하게 자랄 수 있었다. 정수 역시 그 셋이 있어서 살 수 있었다. 그리고 정수에게는 또 한 분의 아버지이며 어머니이며 친구요 동지인 하나님이 있었다.

정수는 쌍둥이 성태와 은경이를 업어줬고, 밥을 먹였고, 숙제를 봐줬으며, 준비물을 챙겨줬고, 책방에 데리고 다니며 책을 사줬다. 책을 읽어줬고, 그리고 교회에 데리고 다녔으며, 성경을 읽어줬고, 기도했으며 기도를 가르쳤다. 할머니 덕에 성태와 은경이 하나님을 알았고 하나님을 부를 수 있었다.     

요양원으로 들어가겠다는 정수의 고집마저도 자신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나온 거라는 걸 혜영도 성태와 은경이도 모를 리 없었다. 비록 요양원일지라도 쾌적한 곳에 모시고 싶었다. 요양원이나 병원은 그 시설이나 상태가 다양했다. 좋은 곳을 찾았다. 1인실로 모실까 했지만, 너무 적적할 것 같았다. 2인실로 정했다. 정부에서 어느 정도 보조를 받지만, 요양원에 매달 들어가는 기본비용이 최소한 120만 원이었다. 성태와 은경이가 함께 부담하기로 했다. 은경이가 가족이 있는 성태가 덜 부담해도 된다고 했지만, 성태 역시 자신은 맞벌이며 수입도 은경이보다는 상당히 많고 두 아들을 길러주신 할머니에게 어떻게든 보답하고 싶다고 했다. 성태가 80만 원, 은경이가 40만 원 정수의 요양원 비용을 감당하기로 했다.

그러나 요양원에 들어가기 전 천만 원이 넘는 액수가 찍힌 통장을 내놓았다. 비용을 아이들에게 부담시키며 요양원에 들어가겠다고 할 정수가 아니었다.     

정수는 하나 남은 아들 준호를 키우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했다. 시어머니 역시 팔을 걷어붙였다. 남편이 과학관 교사로 지낼 때 배운 미용기술로 남편이 죽은 후 미용실 시다가 되었고, 나중에는 야매 미장원 주인이 되었다. 시어머니는 손주를 업고 정수 옆에서 불에 달군 고데기를 넘겨주고 정수는 그 고데기로 종이에 싼 손님의 머리를 감았다. 먹기도 힘든 시절, 자신이 원하는 교육을 받지 못한 정수와 천석꾼 집 딸로 태어났으면서도 여자라는 이유로 배움이 없어 까막눈이 된 시어머니도 어떻게든 독자 준호는 대학을 가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살았다. 정수와 시어머니는 한팀이 되어 쉬지 않고 사랑했고, 쉬지 않고 일했고, 마침내 청주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수예점 점원으로 일하다 수예점을 차렸다. 수예점을 그만두었고, 어느 날은 우연히 길에서 만난 고향 사람을 만났고, 그가 하는 만둣집에서 카운터를 보았다. 집에 돌아올 때면 종이봉투를 붙이는 일을 받아왔다. 준호를 기르며 시어머니도 틈틈이 남의 집 빨래와 반찬을 해주고 돈을 벌었다. 그렇게 하면서 서울에 초라하지만 작은 집을 살 수 있었다. 빈궁하지만 주인집 눈치 보지 않고 살 수 있게 되었다. 다행히도 아들은 순하고 성실하게 자라주었다. 그렇게 컸던 아들이 사라졌고 남겨진 성태와 은경이를 키운 것이다. 성태와 은경이가 정수의 손을 덜 타게 되면서 틈나는 대로 뜨개질과 마늘 까는 일로 부업을 했고, 그렇게 번 돈으로 헌금을 했으며, 자신의 앞일을 대비해 모아놓은 것이다.     

*

왤까?, 왜 할머니는 그해 교회를 떠나셨을까? 성태도 은경이도 혜영이도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입 밖으로는 내지 않았던 그 이유를 성태는 지금 생각한다.

성태는 성태가 엄마 혜영과 똑같이 연세대 국문과를 나와 임용고시를 보고 국어 교사가 된 지 이미 10년이다. 성태 역시 처음 발령받은 학교에서 아내를 만나 결혼했고 혜영의 집 근처에 살고 있었다. 할머니 정수가 성태의 집을 드나들며 증손자 둘을 봐줬다. 손주에게 했듯, 증손자들에게 성경 이야기를 해줬고 기도를 가르친 할머니 정수가 2014년 갑자기 교회에 발길을 끊었다. 왜였을까! 성태는 이제는 굳이 그 이유를 분명히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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