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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선 Aug 23. 2022

소설<4개월>-6,7,8

⑥⑦⑧

처음에는 당장이라도 돌아가실 것 같더니, 예상과 달리 정수는 점차로 좋아졌다. 의미 있는 대화는 불가능했지만, 미소로 눈을 맞출 수 있었다. 빨대로 두유를 빨아들일 수 있게 되었고, 숟갈로 떠넣는 죽을 조금은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또 어느 날부터는 아주 조금이지만 혜영이 가져간 생선 살과 된장국을 먹었으며, 또 어느 날은 딸기 한 알, 또 어느 날은 부드러운 티라미슈를 삼킬 수 있었다. 다만 역겨운 소변 냄새는 어쩔 수 없었다. 깨어있는 시간이 늘었는데, 그게 문제였다. 학교는 개학 상태고 가족이 곁에 없이 정수 혼재 깨어있는 건 그야말로 가슴 아픈 일이다.

혈혈단신 정수, 혈혈단신 혜영이다. 혜영이 아주 짧은 기간 함께 했던 할머니는 정수가 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다. 그러나 정수는 이 노인 병원에서 마지막을 보낼 것이고, 어쩌면 혼자 있을 때 숨을 거둘 수도 있다는 게 혜영은 불안했다. 혜영 자신도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라면 요양원으로, 그리고 노인 병원으로 옮겨갈 것이고, 그곳에서 삶의 마지막을, 어쩌면 혼자 그 마지막을 보내게 될 것이다.

교장과 교감은 퇴근을 자유롭게 해서 어머니의 마지막 길을 살펴드리라고 했다. 고마웠다. 일찍 혼자가 된 젊은 과부 혜영이는 학교의 동료 교사들에게 조금 특별한 존재였다. 배려의 대상인 동시에, 불쌍한 존재, 혹은 복이 없어 남편을 먼저 보낸 존재로 여겨지는 걸 의식해야 했다. 공립학교 교사의 특성상 학교를 정기적으로 옮겨야 했고, 옮길 때마다 처음 일 년 기간이 같은 이유로 힘들었다. 그러나 학교 말고도 붙박이로 있을 수 있는 직장이 어디 있겠으며, 젊은 과부가 특별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직장은 어디에도 없다. 학교는 성태나 은경이가 자라는 동안 공유할 수 있는 게 있었고, 방학이 있고, 대기업의 현장과는 달리 피 튀기는 전쟁이 없었고, IMF 시절 무탈하게 지낼 수 있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젊은 과부라는 딱지도 흐려졌다. 연금은 아픈 손가락인 성태와 은경에게 짐이 되지 않게 해줄 것이다. 참 고마운 학교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혜영은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 특히나 결손 가정의 아이들, 가난한 아이들에게 마음이 갔다. 아이들도 그런 혜영의 마음을 아는지, 조금은 덜 어렵게 마음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세상이 변했다. 학생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점점 여유가 없을 만큼 경쟁적으로 되어가는 게 마음 아프다.     

어느새 5월이다. 정수는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받았다. 스승의 날에도 카네이션 다발을 받았다. 꽃을 좋아하는 정수가 활짝 웃었다. 그리고 입원 4개월을 꼬박 채운 날 정수가 얼굴을 찡그렸고, 음식을 거부했다. 통증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혜영이지만 별수 없이 기도한다. “어머니의 하나님. 당신을 믿는 이 가련한 어머니를 너무 힘들지 않게 데려가 주십시오.” 그러자 정수가 깊은 잠에 자주 빠졌다. 통증을 느낄 수 없을 것 같아 다행이라 여기며 혜영은 신의 응답일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같은 기도를 반복했다. 5월 마지막 일요일 성태네 4식구와 은경, 혜영이 함께 병원에 간 그날 정수는 매우 또렷한 정신으로 깨어있었다.

-어머니 오늘 좋아 보이세요. 아픈 데는 없어요?

-괜찮아. 안 아파.

정수의 말이 또렷하다.

어린 것, 둘이 정수 위로 기어오르고 정수는 어린 것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모처럼 다들 웃었다. 그때 은경이가 나갔고 낯선 남자와 함께 다시 병실로 들어왔다.

-할머니. 내 남자 친구.

틀니를 뺀 지 오래인 정수의 합죽이 얼굴에 환한 웃음이 돌았다.

-잘 생겼어.

이 상황에서 정수의 입에서 나온 말이 너무나 천진해 병실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혜영이 쇼핑몰에서 하얗고 도톰하고 부드러운 면으로 된 실내복 세트를 샀고 깨끗하게 빨았다. 월요일 퇴근길에는 세탁소에 들러 정수의 작고 마른 몸에 맞도록 소매와 바지 길이를 줄여달라고 했다. 화요일 퇴근길에는 세탁소에 들러 수선을 맡긴 옷을 찾아왔고 미리 준비해놓은 옥양목 수의도 꺼냈다. 그리고 늦은 시간 병원을 향했다. 정수는 곤히 잠든 상태였다.

-오늘 아무것도 드시지 않고 거의 종일 저렇게 계세요. 며칠 남지 않으신 것 같아요.

혜영이 정수의 이불을 살폈다. 발이 퉁퉁 부어있었다. 혜영의 마음이 침착하다. 수요일 정수의 발은 여전히 부어있었고, 눈을 잠시 뜨고 혜영이를 바라본 정수는 곧 눈을 감고 잠에 빠졌다. 목요일 퇴근길 곧장 병원으로 갔다. 정수가 눈을 뜨고 웃어주었다. 혜영이 정수의 손을 잡았다. 정수와 혜영의 눈에 동시에 눈물이 고인다. 별말은 오가지 않았다.

금요일 출근 전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자 ‘실버행복의원’

-아무래도 오늘을 넘기지 못하실 것 같습니다. 가족들에게 알려놓으시라고 전화 드렸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혜영이의 눈에 뜨거운 것이 흐른다.

-목욕하시고 그제 주신 옷 갈아 입혀드렸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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