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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선 Aug 25. 2022

소설 <4개월>-9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창이 있는 편백 나무집, 토마토, 가지, 오이 등이 수확을 기다리는 텃밭, 복숭아나무와 살구나무. 땅 밟는 곳마다 지천으로 널려있는 질경이, 민들레, 냉이. 사정없이 쏟아져 내리는 따스한 빛. 그 위에 금가루가 날아 앉는다. 저 멀리서 남편이 보인다. 정수 쪽으로 다가온다. 얼굴빛이 하얀 큰아들이 아빠에게 달려가고, 아장아장 딸아이가 오빠의 뒤를 뒤뚱거리며 쫓는다. 남편이 큰아들을 번쩍 들어 올린다. 딸 앞에서 무릎을 꿇고 딸 마저 들어 올린다. 남편 뒤에서 남편만큼이나 큰 작은아들이 온다. 정수는 마냥 행복하다. 정수도 가뿐하게 남편에게로 걸어간다. 미끄러지듯 발걸음이 가볍다. 갑자기 혜영이와 성태 가족, 은경이가 눈에 밟힌다. 마침 아이들이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어머니!

-할머니!


정수가 눈을 뜨고 셰영이 성태 가족, 은경이에게  미소로 화답했다. 잠시 호흡이 가쁜가 하더니 이내 편해졌다.     


~~~


정수가 혜영의 생각에서 도무지 떠나지 않았다. 이상한 게 좋았던 기억은 없이 아픈 기억들만 있었다. 과거의 아픔을 생생하게 다시 겪어야 했다. 정수를 마음에서 떠나보낼 궁리를 했다. 기록이 답이었다. 평소에도 드라마같이 살아온 정수의 ‘기구하면서 용감한’ 삶을 기록해야겠다고 다짐하곤 했는데 늘 미뤘다. 정수에게 삶의 의미를 찾아주고, 40년간 동지로 살아온 정수에 대한 사랑과 의리를 지키면 마침내 정수를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코로나 펜데믹이 왔고, 성태와 며느리의 수업 준비, 학교에 가지 못하는 어린 손자들 덕분에 정신없는 2년을 보내고 정수를 보내고 이미 3년이 되어서야 혜영이 노트북을 열었다. 남편을 보내고도 기록하지 않은 혜영이 시어머니를 기록하려고 한다. 남편보다 어머니 정수와 보낸 날들이 더 길었고 더 진했다. 함께 울었고, 함께 웃었다. 서로에게 기대며 살아온 분이 어머니 정수였다.     


<정수의 일생>이 좋을 것 같다. 그곳에 정수와 가족에게 일어난 일련의 주요 사건들을 그대로 옮길 계획이다. 자전적 소설의 경우, 윤리적 문제들이 있다고 하지만 성태도 은경이 찬성한 마당에 문제 될 것은 전혀 없었다. 1925~2019. 94년간 어머니 정수가 살아온 기록이 <정수의 일생> 안에 담길 것이다. 그동안의 역사적 사건들을 찾아봤다. 1926년 6.10만세 사건부터 혜영이 알지 못했거나 잊고 있던 역사 기록들이 쏟아져 나온다. 힘없는 자들을 묻어버린 역사가 인터넷에는 빼곡하게 적혀있다. 물론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이들의 핏빛 역사가 얼마나 많으랴만.

어머니 정수의 삶을 기록하는 건, 묻힐 수 있는 가련한 자들의 역사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만큼 의미가 있는 듯했다. 일단 어머니의 연대기를 나열한다. ‘주제?’ ‘어머니 정수와 나의 삶, 어쩌면 우리가 아프게 보내야 했던 사람들,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그렇게 떠나보내는 이들의 삶, 그 기구한 삶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 의미는 무엇일까?’ ‘이걸 찾는 걸까?’ ‘글쎄. 아직은 잘 모르겠다.’ ‘쓰다 보면 알게 될까? 글을 쓰는 게 그걸 찾아 나가는 과정 아닐까?’ 혜영은 머리에 닥치는 대로 찾아오는 생각을 접고 연대기를 기록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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