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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선 Aug 28. 2022

소설 <4개월>-10

<정수의 연대기>

1925. 황해도 백천. 아버지 없이 유복자로 태어남

1944. 19세 결혼(남편 과학관 교사)

1945. 큰아들 출산

1948. 딸 출산

그리고 어느 때쯤. 서울시가 주는 미용사 자격증 취득

1950. 남편의 전근(문산제일고등학교) 발령. 전원생활의 꿈을 꿈.

1950.6.24. 시댁 백천행 기차 탑승

1950.6.25. 청천벽력같은 6.25

남편의 행방불명. 남편 없이 떠난 피난길. 시아버님 사망(장티푸스). 친정어머니 사망(아마도 심장마비). 딸 사망(천연두)

1951. 청주시 상당구 영운동 청남초등학교 뒤편 피난민 수용소 거주. 기적처럼 찾아온 남편(해주 감옥에 갇혔다 폭격으로 뚫린 감옥에서 도망칠 수 있었다고 했음)

1953년. 큰아들 사망(디프테리아). 남편 사망(아들 잃은 상실감)

1954. 유복자 준호 출산.

1974. 유복자, 독자 준호의 국문과 입학. 군 면제.

1980. 준호의 결혼과 며느리(혜영)의 임신. 행복의 절정. 그리고 준호의 행방불명.



혜영은 여기에서 멈추고 남편 준호의 행방불명을 생각한다. 그날들과 그 일들.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글을 쓰기 위해서 아픔을 무릅쓰며 그 일들의 발단을 생각해야 했다.      

1979.10.26.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되었다.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가 시작되면서 10월 27일에는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 12월 12일 전두환의 군사반란이 일어났다. 개강과 함께 학생들은‘전두환 퇴진’, ‘계엄 해제’를 주장하며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모든 게 어수선했으나 혜영은 자신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다. 준호가 광주에 내려갔다. 친구의 아버지 장례에 조문을 갔다 온다고 나갔다. 퇴근 후 저녁 기차를 타러 가면서 “내일 일찍 올라올게. 내가 보고 싶어도 참아.”라며 맑고 장난스러운 웃음을 남겼다. 혜영의 뱃속에서 발길질을 시작한 성태와 은경에게는 뽀뽀를 남겼다. 5월 14일 수요일이었다. 다음 날인 5월 15일 남편 준호는 올라오지 않았다.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전화도 없었다. 15일 서울역에는 30개 대학 10만 명이 모여 시위하다가 해산하면서 연행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준호는 이미 학생이 아니었다. 경찰도 군인도 아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 리가 없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전화가 없었다. 다음날 뉴스에는 정부가 비상계엄령을 확대했다고 했고 국회 앞에는 탱크가 모여있다고 했다. 정치인들이 잡혀갔다고도 했다. 준호는 정치인도 아니었다. 잡혀갈 리도 없었다. 교통사고일지 모른다 생각했다. 그러나 어디서도 준호에 대한 소식이 오지 않았다.

지옥 같은 날들이었다. 지금도 몸서리쳐진다. 그날들이 언제라도 생생하게 다가온다. 두려움과 불안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던 그때 학교에 출근했다. 배는 더 빨리 불러오는 것 같았고, 불러오는 배가 부담스러웠다.      

기적같이 준호가 돌아왔다. 7월 8일. 23일 만이었다. 정수의 전화를 받고 기쁨으로 정신없이 집에 왔다. 준호는 쓰러진 채로 누워있었다. 온몸에 멍이 들어있었다. 번들거리는 상처가 곳곳에 있었다. 마를 대로 말라 있었고 눈에는 총기가 사라진 채. 기쁨은 슬픔과 무기력으로 바뀌어 갔다. 그는 이미 폐인이 되어있었고 점점 더 폐인이 되어갔다. 그는 종일 누워있었고, 말도 없었다. 그리고 혜영이는 쌍둥이를 출산했다. 그가 억지로 기운을 차리려 애를 쓰는 듯했다. 그러나 끝내 일어나지 못했고 혜영, 성태, 은경이와 어머니 정수와 할머니를 두고 세상을 떴다. 쌍둥이로 태어난 성태와 은경이에게 말할 수 없는 큰 빚을 지고 산다. 임신 중 사랑이 아닌 부담을 느꼈고, 출생을 마음껏 환대하지 못한 빚을 평생 가슴이 안고 살아간다.

얼마 전 출간된 김동규 에세이 <사람이 온다>를 읽으면서 혜영은 42년 만에야 남편의 사라진 2개월여의 시간을 그려볼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갔다. 결국은 지나갔다. 정수와 할머니 덕분이었다. 두 분과 성태와 은경이 중 누구 하나라도 없었다면 혜영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혜영이 다시 정수의 연대기 기록을 이어간다. 이때부터는 한줄 한줄 연대기가 이어지지 않는다. 깊은 생각에 빠져든다.   

   

1983. 줄초상. 준호 사망. 할머니 사망.

지옥처럼 끔찍한 삶. 그리고 정수의 신앙입문.     


짧게 동거한 할머니의 삶을 혜영은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다. 평생 말이 없던 할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셨을까? 천석꾼 집안의 딸로 태어났으면서도 여자라는 이유로 무학자가 되어 글을 몰랐던 할머니. 바람피운 할아버지. 딸 셋을 잃은 여자. 남편을 잃고 아들을 잃고, 또 핏줄이었던 손주들 셋을 고스란히 잃었으니, 그분의 삶이란 어떤 것인가!

어머니 정수가 그때부터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한 이유가 있을까?, 남편을 잃은 혜영 자신보다 더 힘드셨을까?     


1987. 성태와 은경 초등학교 입학.     


아버지 없이 자란 어머니 정수가 아빠 없이 자란 손주들을 보는 심정이 어땠을까.

아빠는 기억조차 없이 일찍 돌아가셨고 고작 대학생 시절 엄마마저 잃은, 그리고는 남편까지 잃고 아빠 없는 아이들의 엄마가 된 혜영이다. 한결같이 비극의 주인공 같은 이들과 가족이 되어 혜영은 살았다. 그래서 엔도의 글귀를 잊지 못한다. ‘인간이 이토록 슬픈데 주여 바다가 너무도 푸르릅니다’

엔도의 <삶을 사랑하는 법>을 읽었다. 그리고 이후 그의 번역된 작품 대부분을 읽었다. 그런데 <침묵>에 실린 그 글귀를 잊고 있다가 그의 마지막 작품 <깊은 강> 역자의 에필로그에서 다시 읽게 되었다.

그때부터 혜영은 그 글귀를 자신의 식으로 바꿔 중얼거렸다. ‘세상이 이리도 아픈데, 신, 당신은 너무도 평안합니다.’, ‘세상이 이리도 아픈데, 교회는 너무도 즐겁습니다.’라고. 그게 자신이 신을 믿지 않는 이유며, 교회를 다니지 않는, 아니 경멸하는 이유라고. 믿지 않은 신을 행해 중얼거렸다. 그런데 정수는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니. 왜일까?  답을 찾지 못한 의문을 그대로 가슴에 품은 채 다음 연대기 한줄을 더한다.


2000. 성태와 은경이가 동시 대학 합격(연세대 국문과,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연대기 한줄 한줄을 따라 혜영은 그때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때의 정수 안으로 들어간다. 손주 성태가 연세대에 입학했을 때, 분명 정수는 저세상 사람이 된 아들 준호가 연세대 국문과 입학했을 때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두 아이의 등록금을 생각하셨던 게다. 이미 일흔다섯의 연세로 마늘 까는 아르바이트를 하셨다.      


2002. 성태 입대.      


혜영이도 정수도 똑같이 가슴 졸였다. 아직은 어린 두 손주가 또 군대에 가야만 한하는 현실이 두렵다.      


2004. 은경이 취직, 성태의 제대와 복학.      


하필이면 일반 회사의 반에 불과한 월급을 받고 은경이는 기독 잡지사에 갔다. 그러나 지금 글을 쓰면서는 어쩌면 그건 섭리였을지 모른다 생각한다.      


2007. 성태 졸업. 임용고시 합격. 중학교 발령.

2012. 성태 결혼.

2013. 성태 아들, 정수의 첫 증손자 출생

2014. 세월호.      


어머니 정수와 성태를 그리고 은경이를 교회로부터 떠나게 한 사건, ‘국가란 무엇인가?’ ‘권력과 교회는 무엇인가?’ 어쩌면 신과는 무관한 교회의 진실을 마주하게 한 그 사건. 아직도 의문투성이인 바로 그 사건. 어머니 정수를 무너뜨린 그 사건. 그런데 왜 성태보다 은경이보다 우리 중 누구보다 크게 무너지셨을까? 그때 어머니는 그야말로 급작스럽게 무너져 내리셨다. 급작스러운 노화는 분명 아니었다. 어머니 내면에 무슨 특별한 일이 일어난 것일까?     


2015. 정수의 우울증 진단. 어두운 그림자. 며느리의 육아휴직. 성태의 둘째 아들, 정수 두 번째 증손자 출생.

2015. 제주도 여행. 어머니와 마지막 여행.

2016. 요양원.

2018. 정수의 연이은 신우염과 입·퇴원.

2019. 1월 29일. 세 번째 신우염. 실버행복의원 입원(죽음을 기다리며). 5. 31. 어머니 안녕. 그리고 나의 정년퇴직.

2020. 코로나 펜데믹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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