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희선 Sep 07. 2022

<세상이 이상해지지 않으려면>-2

기도는 떠남이다

그녀의 떠남이 사놓고 읽지 못한 <오색사막 순례 이야기>(도멀드 밀러|잉클링즈·알맹4U)를 펼치게 했다.


"나는 당신의 이야기에 집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사연이, 몇 번의 여름과 겨울이, 뛰노는 아이처럼 피어나는 장미꽃이 담겨 있기를 기도합니다. 당신의 이야기에 변화가, 아름다운 것을 태어나게 만드는 이야기가 담겨 있기를 바랍니다. 한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이야기, 아이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이야기, 바다와 산속을 돌아다니는 이야기, 친구들의 이야기, 자신보다 남을 더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이야기, 그리고 하나님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인 하나됨을 배우는 이야기가 담겨 있기를 바랍니다. 당신과 나, 우리는 누구나 한 가지 이야기를 부여받습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하나의 이야기지요. 기본 요소와 배경, 절정, 결말은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용감하게 떠나지 않는 것은 범죄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이제 당신이 떠나야 할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변화할 시간, 빛날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당신에게 단 한 마디만 뒤풀이해서 말하고 싶습니다. 떠나세요.

이 말을 입안에서 굴려보세요. 정말 아름다운 단어입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당신이 항상 원했듯 아주 강하고 힘이 넘치는 말입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닐 것이며, 결국 혼자였던 적이 없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이 돌아왔을 때 모든 것은 여기 그대로 있을 것입니다. 변화되는 것은 당신입니다." (14, 15)  

   

나는 그녀에게 암시를 건다. "떠나세요. 잘 떠나시는 거예요. 앞으로는 더 자주 떠나보세요. 용감하게!"      


"그때는 모든 사람이 떠나야 한다는 것을, 계절처럼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계절은 내가 계속 변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고, 나는 그것이 하나님의 방식임을 알기에 항상 변해가고 있습니다. 평생 동안 나는 변해 왔습니다. 아기에서 아이로 변했고, 부드러운 장난감은 가짜 칼이 되었습니다. 십대로 자라나 자동차를 운전했고, 노동자가 되어 돈을 썼습니다. 나는 한 여자를 사랑하는 남편으로, 내 아이를 사랑하는 아버지로 변할 것이며, 물가에서 그리고 다시 산 근처에서 살기 위해, 또 친구들 가까이 살기 위해 집을 바꿀 것입니다. 또 아내와 함께 계속 변화하면서 우리 사랑도 거듭 죽고 계속 다시 태어나게 할 것입니다. 사계절을 따라 계속 변하는 정원처럼 말입니다. 모든 사람은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유통기한이 끝나버리고 맙니다. 우리는 모두 떠나야 합니다. 집을 떠났다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이유로 다시 자신의 집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오색사막 순례 이야기> 10, 11.     

20대 초반 도널드 밀러는 떠났다. 만난 지 얼마 안 되어 잘 모르는 친구 폴 해리스와 함께. 그는 자신의 여행을 ‘반항아의 자유가 아닌, 정해진 마감이 없다는 자유, 내일까지 반드시 어디에 가야 한다는 제약이 없는, 최종 목적지만 있을 뿐 딱히 전해진 경로도, 일정도 없는 길 떠남이라 했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무뎌진 기쁨과 두려움, 고통,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을 벼리기 위한 노력이라고도 했다.(18)


그는 자신과 폴 해리스가 진정한 여행자가 되기로 했고 진정한 여행자라고 했다. 미국 남동부 텍사스주의 가장 큰 도시이며 미국 전체에서 4번째로 많은 인구가 사는 익숙한 곳 휴스턴을 떠나 그랜드 캐니언과 미국 중북부 고원지대 오색사막을 거쳐 오리건에 이른다. 그와 그의 친구가 믿고 의지한 건 낡은 밴이었다. 고장 날 것 같아 불안하게 하더니 기야 고장이 났다. 한 번이 아니다. 큰 위험에 처하게 한 게 한 번이 아니다. 기도하기도 했고, 도움을 준 손길을 여러 번 만났다. 우스개와 같은 농담과 희롱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험악한 꼴을 당할 뻔했다. 그러나 그렇게 설익은 청년들을 받아줬을 뿐 아니라 그들의 굶주린 배까지 채워주는 인심과 친절을 경험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그들의 여행은 ‘영적 순례’로 바뀌어 갔다. 한없기 가벼워 보이지만 한편 진지한 두 친구가 새로 만나는 친구들과 새로운 환경에서, 떠나지 않았다면 얻지 못했을 위기와 해결의 과정을 통해 '생'에 대해, '신'에 대해 답을 얻어간다.      


그때의 경험이 2000년 “기도와 폭스바겐 관리 기술”(Prayer and the Art of Volkswagen Maintenance)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가 절판되었다. 그 후 2003년 그의 다른 책 <재즈처럼 하나님은>이 베스트셀러가 되자 2005년 <재즈처럼 하나님은>을 펴낸 출판사 토마스넬슨이 제목까지 새롭게 해 <도널드 밀러의 오색사막 순례 이야기>(Through Painted Deserts)로 다시 출판했다. 나는 2022년 잉클링즈와 알맹이 4U에서 번역본으로 낸 <오색사막 순례 이야기>를 읽었다.      


책을 읽으며, 도무지 여행에 가난하기만 한 나는 혹 다음 생이라는 게 있다면 그때에는 여행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나이가 들었고, 오랜 기간 앓고 회복되었으나 신체가 자유롭지 않다며 길을 떠나지 않는다. 여전히 책 안에서 여행을 할 뿐이다. 쉰이 넘은 나이에 암을 선고받고 교직을 그만두고 자전거 여행을 떠나 여행길에서 글을 썼고, 책이 나오기 전에 죽은 작가가 있다. 그 외에도 병 중에 여행을 시작하며 경이로운 세상에 도전하는 이가 있다. 그러니 내가 여행자가 되지 못하는 건 순전히 핑계다. 다른 이의 떠남을 더 응원하는 건 여행자가 되지 못하는 가련한 나의 대리만족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산과 바다 강과 도시 야경 사진이 실린 잡지를 넘겨보았다. 꿈이 계획으로 바뀌자 다른 친구들은 책임과 안락함을 생각하며 한발 물러섰다. 그들은 불안해했다.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일을 그만두거나 학교를 한 학기 쉰다는 의미였다. 결국, 여행을 떠나겠다는 사람은 폴과 나밖에 남지 않았다.”(24)     


바로 전날 서촌의 작은 도서관 호모북커스 대표인 김성수 목사님의 페이스북 담벼락에서 올린 글도 생각났다.      


“공부했다는 이유로 좋은 자리를 꿰찬 어리석은 사람들이 아주 많다.”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 (마이아 에켈뢰브|교유서가) 79      


모든 사람이 떠나기를 원하지만 모든 사람이 떠나지는 않는다. 떠난다는 건 얻는 게 있는 동시에 잃게 되는 것도 있다.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을 건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려있다. 도널드 밀러의 떠나지 않은 친구들은 책임과 안락함을 선택했다면, 나는 안전한 신체를 선택했고 그 대신 경험하지 않아 뭔지 모른 그 무엇을 포기했다.           

다행인 건, 지리적 이동으로 낯선 세계를 직접을 체험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글로, 혹은 기도로 하는 여행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수많은 곳을 여행하지만, 전혀 배우는 것도 변화도 없이 다만 구경을 하고 오는 이들이 많다. 반면 제대로 된 여행 한번 못했지만, 자신을 그리고 사회를 바꿔놓은 이들이 얼마든지 있다. 끊임없이 현실을 직면했고, 생각했고, 글을 읽었고 글을 쓰며 익숙한 사고에 물음을 던졌고 계속 변화한 사람들이다.


도널드 밀러와 같이 길 떠나지 못하는(안 하는?) 내게는 기도가 떠남이다. 있는 곳에서, 당연하다고 믿는 것에서 떠나는 것이 기도다. 그러므로 이 글은 떠남에 관한 것이며, 떠나는 기도에 관한 것이다.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주어서, 네가 크게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너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베풀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릴 것이다.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아브람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길을 떠났다.“_창12:1-4a(새번역)     

작가의 이전글 <세상이 이상해지지 않으려면>-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