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희선 Sep 07. 2022

<세상이 이상해지지 않으려면>-3

“만일 인간이 이상해지지 않는다면 세상은 절대로 이상해지지 않는다."

“대우조선해양 노동자 파업 이야기가 사실은 임금 30%를 올려달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깎인 걸 회복시켜달라는 거라면서요? 알고 계세요?”

    

수영장 물속에서 고개를 까딱하며 눈인사 정도 할 뿐인 어떤 분, 게다가 나보다 나이가 많은 70대가 그야말로 맥락도 없이 치고 들어오는 뜬금없는 물음에 나는 귀를 의심했다. 주변에 파업의 배경에 잘 알지 못하고, “황제노동자, 귀족 노동자가 또 파업한다.”, “그렇게 회사에 피해를 주면서까지 파업하는 건 옳지 않다.”라며 파업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분의 물음이 반가웠다.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이하 거통고조선하청지회)는 '임금 30% 인상'을 요구하며 2022년 6월 2일부터 파업 중이다. 6월 22일 대우조선해양 한 하청노동자가 경남의 거제옥포조선소 1도크 탱크탑 바닥에 가로 1m, 세로 1m, 높이 1m로 설 수도 없는 크기의 길이로 철판을 용접했다. 그리고 스스로 그 안에 자기 몸을 가두고, 임금 30%를 올려달라며 농성에 들어갔다. 그는 철판 사이로 다리와 손을 내놓고 손팻말을 들었다. 손팻말에는 '생지옥 대우조선(해양), 우리는 살고 싶습니다'라고 적혀있었다. 같은 날 오전 다른 하청노동자 6명도 1도크 VLCC 5495호선 탱크탑 10m 높이의 스트링거에 올라 농성에 들어갔다. 도크 바닥에서 20m 정도다.

조선경기 불황으로 최근 5~6년 사이 하청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이 30% 정도 하락했기 때문이다. 임금 삭감과 함께 상여금도 일방적으로 깎였다. 그들이 요구하는 임금 30% 인상 요구란, 그동안 하락된 임금에 대한 원상회복 요구인 셈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수주대박에도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손실 문제의 핵심이 파업 노동자들의 불법 행위에 있는 것처럼 주장하지만, 거통고조선하청지회는 20~30년 일한 숙련노동자가 최저임금을 받는 현실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날을 세웠다. (출처: 오마이뉴스 2022.06.22. “가로세로 1m 철판에 스스로 몸을 가둔 남자의 호소”)      

한편 51일에 걸친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통고조선하청지회 파업이 끝난 7월 22일, 대우조선해양은 하청 노조의 조선소 점거로 하루 259억 원씩 매출 손실이 발생했고 총 피해액이 8천억 원에 달한다며 손해배상소송을 하겠다고 했다. 259억 원은 그해 목표 매출 6조6천억 원을 한 해 영업일로 나눠 단순 계산한 액수이며, 모든 조업을 멈춘 상황을 가정한 금액이었다. 그러나 취재 결과는 그와 달랐다. 대우조선해양은 현재 8천억 원이 아닌 1천억 원 미만의 손해배상소송(손배소)을 검토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파업 당시 경남 거제 옥포조선소의 5개 도크(배를 만드는 작업장) 중 실제 조업을 멈춘 곳은 제1도크 뿐이었다. 선박 인도 지연배상금 역시 파업 당시 130억 원으로 알려졌으나, 파업 종료 후 잔업·특근으로 작업에 속도를 내면서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 한편 조선하청지회는 그들의 핵심 요구였던 ‘임금 대폭 인상’까지 철회하며 “개별 조합원이라도 소 제기 대상에서 제외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관철되지 않았다.(출처:한겨레 2022.8.17. “뻥튀기 파업피해…대우조선, 8천억이라더니 슬그머니 “1천억””)      


나는 ”알지요“하고 답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은 소위 노동자들이죠, 만일 청소노동자들이 없다면 세상이 어떻겠어요?”라고 답하는 데까지 나가버렸다. 그때 바로 전날, 호모북커스 김성수 목사의 담벼락에서 만난 책,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마이아 에켈뢰브|교유서가)를 떠올린 것은, ‘노동자’, ‘청소노동자’를 내 입에서 꺼내서였을 것이다.      

책의 자가 하필이면 여자·청소·노동자였다. 쉽게 투명인간으로 취급받는 여자·청소·노동자가 화자인  일기 글을 빨리 읽어보고 싶었다. 급한 마음에 되도록 정가로 오프라인서점에서 사려던 의지를 무시하고, 알라딘에 주문했다. 당일 도착한다는 데 더욱 신이 났다가, 비가 억수같이 퍼붓기 시작할 때에야 잊고 있던 배달 노동자를, ‘싸게싸게’, ‘빨리빨리’가 초래하는 위험을 생각할 수 있었다.      


여자·청소·노동자 마이아 에켈뢰브는 이미 1953년에, 소위 지구의 엘리트 계층이 사유하지 못하거나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이상한 인간, 이상한 인간이 만들어내는 이상한 세상과 그 근원을 간파하고 있다.          


“만일 인간이 이상해지지 않는다면 세상은 절대로 이상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권력욕으로 가득하여 인간과 인간 사이의 커다란 차이는 늘 존재할 것이다”(19)    

 

당일 배송에 잠시의 고민을 뒤로하고, ‘신나라’ 했던 나 역시 이상한 세상에 물들어 살아가는 이상한 인간으로 이상한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셈이다.

띠지는 보지도 빼서 버리거나 책갈피로 사용하지만, 추천사는 반드시 보게 된다. 물론 다는 아니지만, 여전히 난독증이 있는 내게 추천사는 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 책을 통해 ‘세상의 가장 낮은 존재를 해치지 않는’ 선함과 지혜를 얻으리라 …”

“… 어떻게 그는 항상 따스하면서도 날카롭게 세계를 염려할 힘이 있을까. 끊임없이!”

“글쓰기가 세상을 구원하지는 못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밖에 없어 간절히 쓰는 사람 만큼은 구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 한 명 한 명의 구원이 더해질 때 세상도 조금은 움직인다는 사실을. 이 책은 믿으라는 말도 없이 믿게 만든다.”     


정희진(여성학 박사), 희정(기록노동자), 이문영(기자·작가)의 추천사는 정말이다.     

1953년 그녀의 마음은 온통 한반도에 있는 마음은 한반도에 가 있다.   

   

"마음은 한반도에 가 있다. 한 철이 지나면 그곳에는 얼마나 많은 재킷이 필요할까 ㆍㆍㆍ나는 온통 한국 생각뿐이다.”(14)        

 

전쟁의 한복판에 살던 당국의 권력자와 재력가들이 전쟁을 이용해 권력을 얻고 군수품 시장에서 재물을 버는 데 혈안이 되었던 1953년. 같은 시기 먼 이국땅에서 한국의 민중을 걱정하는 청소노동자가 있었다니. 복지국가의 복지대상자로 아동복지담당자에게 제출할 자기 아이들에게 필요한 겨울옷 목록으로 ‘바지 한 벌, 재킷 한 벌’을 적는 그녀의 머릿속을 온통 채운 것이 한국이라니. 어떻게 이리도 따스할 수 있는가 말이다. ‘세상의 가장 낮은 존재를 해치지 않는’ 선함을 보여 줄 수 있는가 말이다.          

복지국가에 살면서도 복지대상자인 그녀에게 연민을 가질 이유란 없었다. 1965년 8월 4일에서 1969년 6월 6일까지 4년에 조금 못 미치는 그녀의 일기 안에 적힌 세계사와 그에 대한 날카로운 성찰과 따스한 마음을 읽어낼 줄 안다면 그녀를 향하려던 연민을 우리 자신에게 돌리게 된다. 나를 포함해 어느 정도 공부했고, 그럭저럭 괜찮은 자리를 꿰차고 앉아있는 모든 이들이 도리어 연민의 대상이 되고 만다.      


한국, 스웨덴, 베트남. 영국, 프랑스, 미국, 독일,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 한국전쟁, 6일전쟁, 프라하의 봄, 천안문 사건 …, 노동, 평화, 단어, 토론, 요양원, 음식, 전쟁과 무기, 핵, 달착륙, 우측통행, 세금, 노예무역, … 섹스피어, 막심 고리끼 … , 케네디, 존슨, 마틴 루터 킹 …, 여러 영화, 심지어 얼마 전 넷플릭스로 시청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얼어버린 시간 속에서>의 원작, <아라비아 펠릭스>까지. 그녀의 생각은 자유롭고 풍성하다. 자신과 가족, 일과 노동, 임금, 나라와 세계와 미래, 갖가지 열매와 음식, 요양원 … 그녀는 이 모든 것들과 한시도 분리되지 않고 연결되어 살고 있었다.

자신의 습작시 <갇히다>에 썼듯, 그녀는 노동, 독서, 사유, 쓰기 등, 그녀의 두 손으로 수많은 바닥을 닦으며, 피투성이가 되어, 세상에 존재해보지 않은 적이 없는 편견을 깨뜨리는 삶, 한 옥타브 높은 사고, 높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듯했다.          


<갇히다>         

나는 피투성이 두 손으로

모든 편견을 할퀸다

울타리 옆에는 또 울타리    

아무도 울타리를 없애는 일에 관심이 없다

울타리는 그곳에 있을 뿐

사람들은 더욱더 높이 만든다

울타리는 주위마다 있다    

왜 아무도 바깥에서 오지 않는가?

왜 나는 울타리 안에 머물러 있는가?

왜 이 모든 울타리가 있는가?     


그녀의 글을 읽으며 초등학교 4학년으로 공부가 끊겼던 전태일을 떠올렸다. <전태일 평전>을 읽으며 그가 곳곳에 남겼던 글과 그 깊이가, 그가 만들어낸 변화가 생각났다. 나도 그의 글을 읽으며 배웠고 조금 변했다. 나는 그를 작은 예수라 생각했다. 많은 이들이 그랬다. 그리고는 이내 연대청소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일부 학생들*이, 지난 8월 8일 서울 경기 지역 폭우로 많은 이들이 죽거나 행방불명된 상황에서 집으로 퇴근한 대통령, 시장, 구청장 및 공무원들을, 일가족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참혹한 현장을 찾아, 기껏 “국민의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홍보 사진을 찍은 어떤 이들*이 전태일의 삶에 겹쳐졌다.     

이상한 세상을 만들어내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가난한 여자·청소·노동자가 아닌 그 이상한 사람들을 향해 연민이 생겼다.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며 시위 중인 연세대 청소·경비노동자들을 상대로 일부 학생들이 형사 고소에 이어 민사소송까지 제기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련 논쟁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학내 커뮤니티 '에브리타임'과 대자보 등 온·오프라인에서 연세대 학생들은 찬반이 엇갈리는 반응을 보인 데 이어 한 교수는 학생들의 소송 제기를 비판하는 강의계획서를 냈다.     

3일 대학가에 따르면 이모 씨 등 연세대 학생 3명은 청소노동자들의 집회 소음으로 학습권이 침해당했다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연세대분회 집행부를 상대로 서울서부지법에 지난달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수업료와 정신적 손해배상금, 정신과 진료비 등을 명목으로 약 640만원을 지급하라고 요구했으며, 지난 5월에는 노동자들을 업무방해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소·고발하기도 했다.이씨의 소송을 놓고 학생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날 연세대 중앙도서관 입구에 붙어있던 대자보에 따르면 자신을 '같은 공동체에서 학습하고 있는 구성원'이라고 밝힌 한 학생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지 않는 공동체원들은 부끄러워했으면 좋겠다"면서 학생이기에 본인의 공부가 우선이라 생각하나. 그 특권의식 자체가 부끄럽다"고 비판했다. 이어 "당신의 학습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나 노동자의 삶 또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며 "존중의 공생을 모색하지 않고 노동자를 비난하는 평면적인 당신이 부끄럽다"고 했다. 나임윤경 연세대 교수는 2학기 '사회문제와 공정'이라는 수업 강의계획서에서 이번 논란을 다루며 소송을 제기한 학생들을 비판했다.(출처:7월 4일 연합뉴스)     

*8월 8일 중부지방에 80년 만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다. 서울 곳곳이 물에 잠기고 지반침하, 정전 등 사고가 잇따랐고 많은 이들이 죽거나 행방불명되었다. 예고를 듣고 심지어 퇴근길 침수되는 현장을 바라보면서도 윤석열 대통령은 튀근했다. 마포구의 경우 큰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구청장 박강수는 일을 끝낸 후 비 오는 날 꿀맛이라는 저녁 식사 사진을 인스타에 포스팅하면서 대중의 뭇매를 맞았다.(출처 : 8월 8일 언론사들)

작가의 이전글 <세상이 이상해지지 않으려면>-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