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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선 Feb 25. 2023

일상 2023. 2. 25

아는 게 거의 없다

어제 일이다.

전철 안 한 여자가 타더니 중얼거린다. 점점 그녀가 하는 말이 들리기 띄엄띄엄 들린다. “내가 아는 아버지는 말이지. 맘에 들지 않는 년놈들을 당장 죽여버리지. 까불지 말아. ....  중랑구와 색에 못사는 것들이 제일 많아. 그런데 그것들이 다 민주당 년놈들이야. 그런 것들 다 싹 죽여버리신다. 조심들 해. .....”

정신이 온전치 못한 건가? 그런데 중랑구가 수색이 그런 것까지 계산하나? 옷도 깔끔하게 입었고, 머리 손질도 나보다 잘 되어있으며, 선글라스도 끼고 있네. 마스크도 세련되게(?) 검정으로? 화장도 한 것 같은데....

옆에 계신 분이 탄식하듯 작은 목소리로, “주여~ 아버지~” 중얼중얼. 기도하는가보다. 아마도 권사님인가? 백발이시다. 그러더니 방언인 듯한 기도를 드린다. “슈슈...사카라...”


나는 책을 편다. <다시, 피아노>

피아노에 대해 1도 모른다. 바이엘 69에서 그만뒀다. 음표가 싫었다. 음악 자체를 모른다. 그런 내가 <다시, 피아노>라니. 시절 일기에 나오는 여러 책 중에 도서관에서 빌려 읽기엔 무리인 듯해 하필이면 이 책을 샀다. 다만 피아노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글을 읽고 용기를 내어 샀다. 과연 피아노만의 이야기가 아니고, 쇼팽을 모르는 나지만, 음악에 대한 손톱만큼이라도 이해할 수는 있을지? 아니 표현이 틀렸다. 모공넓이 마큼이 맞겠다. 그건 모르겠지만.

세상에는 왜 그리 내가 모르는 것임 많고 모르는 사람이 많은지. 그래서 책을 읽는다. 잊지 않으려고 기록한다. 기록하는 동안 한 번 더 머리에 남길 수 있을까 싶어. 그렇게 책을 읽을수록 도무지 내가 아는 게 없으며, 현재 알고 있는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동시에 여러 책을 읽는다. <어떻게 먹을 것인가>, <다시, 피아노>와 함께 장강명의 소설 <재수사>을 읽고 있다. 그의 에세이를 읽고서는 그의 작품에 별로 손이 가지 않는데, 딸이 재미있게 보는 듯해 빌려 읽는 중이다. 같은 작가가 이리도 다른 글을 쓸 수 있다니. 앞으로 그의 소설을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읽는 중이다. 치과에 갔다가 딸을 만나 딸의 집에 와서 책을 들고 있으니 딸이 말한다.

“엄마는 책 읽는 취미가 있어 다행이야. 나중에 심심할 일은 없겠어.”

“책 읽는 것만큼 돈 안 들어가는 취미도 없어.”

“맞아.”

“허리에 문제만 없으면 종일 읽고 쓸 수 있을 텐데.”


다이애너 애실이라는 전설적인 편집자가 썼다는 <소설 읽기가 시들해졌다>를 읽고 싶었다. 전설적인 편집자가 소설 읽기가 시들해졌다는 이유가 궁금했으나, 국내에서는 출판되지 않았나 보다. 대신 그의 <어떻게 늙을까>을 읽을 계획이다. 과거에 머물지 않고, 늙음을 즐기는 일이 가능할 것 같아서다. 비록 몸이 변하고 죽음으로 달려가는 인생이라도 말이다. 수입이 없는 사람이니 웬만하면 도서관에서 빌려 읽기로 다짐을 했다.


형님 한 분이 갤러리에서 민화 전시회를 하셔서 인사동에 나왔다.

이번에는 어느 남자분이 큰소리로 외친다. 하나님 안미으면 천벌을 받을 줄 알라고 협박한다. 그 내용이 참담하다.

 

"우리나라도 하나님 안믿으면 천벌받아 터키같이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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