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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선 Apr 06. 2023

사랑하기도 부족한 날에~

딸과 점심 약속을 했다. 남편이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린다.

"자기들끼리는 잘도 만나면서, 내가 가려고 하면, 말이 많다니까?"

그리고는 딸네 줄 걸 챙긴다.

"모나카 갖다 줘야지."

"그냥 놔둬. 당신 좋아하잖아."

"나는 또 사 오면 돼지. 오고 가고 나눠 먹으면 좋잖아. 티셔츠 산 것도 갔다 줘야지."

"이미 주려고 가방에 넣었지."

"아휴. 센스가 있네."

남편도 오늘 나간다. 오후 1시에. 나는 12시 40분에 나오기 전, 남편 점심상을 차린다.

"당신도 먹고 간다구?"

"어리광 그만 부렷. 왜 그래 정말. 치매야? 그만 독립 좀 햇."

"이렇게 구박받으면서 밥을 먹으면 이게 다 독이 되지 않겠어? 그러니까 내가 재빈에 걸린 거 아니야~ ㅎㅎ"

나는 남편 옆에 가서 남편 볼을 감싸준다. 

"ㅎㅎ. 에고. 사랑스러운 남편. 마음 아픈 것 다 씻고, 오늘 안전하게 무사히 잘 다녀와. 제발 앞뒤 옆, 잘 살피고."

"왜? 마음이 아픈가 봐?"

"응. 당신 마음 아플까 봐 걸려."

"어서 일어나. 12시 40분 다 됐어."     

장난질처럼 시작된 다툼 아닌 다툼이지만, 이만저만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나이가 들면, 여기저기 고장이 나고, 나이와 무관하게 무수한 사건 사고가 일어나는 세상에서. 언제 어떻게 떠날지 모르는 인생인데 혹 무슨 일이 생기면, 그때 찾아올 아픔이, 그리움이 어떠할지 모른다. 오늘 하루 사랑하기에도 부족한 날들이다. 

저녁 약속까지 갔다가 늦은 저녁 들어오니, 싱크대에 딸기가 수북하다.

"어머나~ 딸기네"

"당신이 딸기 타령하니까"

그랬다. 딸기가 비싸서 못 사 먹겠다고. 도무지 싼 딸기는 없고 딸기값이 도리어 치솟는다고.

그래도 그렇지. 남편이 사 온 딸기는 무려 3킬로였다.

"이걸 무거워서 어떻게 가져왔어?"

"당신이 먹을 건데 무거워도 사 와야지. 실컷 먹어"

나는 남편의 사랑에 졌다.

저녁 약속에서는 나의 복잡한 나쁨을 마주했다. 어른이 된 줄 알았는데, 여전히 사리를 분별하지 못해 10년 넘은 우정을 아프게 했다. 내일은 딸기로 종일 배를 채우고,

나의 복잡한 나쁨을 조금이라도 희석해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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