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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선 Apr 13. 2023

일상 4/11

읽으며  생각하기<우리 위에는 하늘뿐>

"...현대 철학이 또 다른 중요하지만 쉽게 간과하는 측면에서 계속 '플라톤적'이 었다는 점이 다. 현대 철학은 우리가 인간에 대해, 인간의 조건에 대해, 인간의 생활 세상에 대해 얘기할 때, 우리가 언제나 기준으로 염두에 두는 것이 인생의 전성기에 있는 자유로운 어른 남성이라고 가정한다.(...) 나 역시 우리가 어떻게 삶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한 상태에서 살아갈 용기, 삶을 어떻게 긍정할 용기를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한 종교적 질문을 던져 왔는데, 오직 (확실히 다소 늦은) 인생의 전성기에 있으며 건강한 자유로운 성인 남성의 관점에서만 그런 질문을 던졌고 그런 사람에게 맞는 답이 모두에게 맞을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의 기준이 되고 대표성을 띠는 하나의 인간 유형이 있어서 그 사람이 삶과 합의할 내용이 나이, 성별, 조건 등등에 상관없이 다른 모든 인간에게 표준 양식처럼 작용할 수 있다는 '플라톤적' 가정을 해서는 안된다."_돈 큐핏. 74,75

*****

나는 늘 불안하다. 부족함을 느낀다. 쉽게 평안을 잃는다. 그럼에도 대체로 누군가 어떤 타인의 삶을 부러워하지는 않는 듯하다. 나의 모자람이 곧 누군가의 부요함과 연결되지 않는다. 그 점에서 다행이다. 어떤 점에서 느낄 수 있는 불안, 부족, 평안 없음을 조금은 덜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 그 이유는 내게 돈 큐핏이 언급하는 '하나의 기준이고 대표성을 띠는 하나의 인간 유형'을 내 안에 담고 있지 않아서인 듯하다. 비교 대상이 타인이 아니라, 내 안에 있기 때문인 듯하다. 물론 존경스러운 이들은 있다. 내 안의 내가 기준으로 존경스러워 하는.

어떤 이들이 나에 대해 하는 말들(언어)이,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나를 표현하는 말(언어)이 일치할 때가 있다. 일치하지 않을지라도, 그것들이 나이겠지만.

"너는 유별나다. 너는 또라이다. 네게는 확실히 똘기가 있다."

누군가에 나는 그런 사람이다. 그리고, 그들의 언어에 담긴 그 의미를 나 역시 받아들인다.

그리고 나는 지극히 내 나이와 여성됨과 자라왔고 지금 살고 있는 이 환경 안에 존재하는 어떤 한 사람에 불과하다.

그런 점으로 인해, 특정한 면에서 다른 어떤 이들보다 더 큰 아픔을 겪기도 한다.

다른 이가 아닌, 내 안의 나에 대한 기준 때문이다.


글을 읽고생각을 이어가며 그동안의 호칭에 대한 내 생각이 모순임을 깨닫는다. 얼마 전까지 나는 내 이름 석 자 뒤에 붙여지는 다양한 호칭을 싫어했다. 예를 들면 ‘목사’, ‘작가’ 같은 호칭이다. 그런 내가 다른 누구를 향해 ‘~대표님’이라고 하고, 내가 만일 내 이름 석 자만으로 불릴 수 없다면 별명으로 불리고 싶은 것과 그 외에 아줌마, 할머니 같은 호칭은 처음에 낯설었지만, 나중에는 매우 자연스럽게 들렸다는 건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결국, 내 안에는 내가 원하든 그렇지 않든 그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 그것 중 하나가 누군가에게 나로 비치는 것이다. 조희선 안에 그 모든 것이 있으나, 나를 만난 시기에 따라, 나와 맺었던 관계에 따라 사람은 나를 그중 하나로 불러주는 것이다. 내 이름 석 자로 불리고 싶은 건 겸손이 아니라, 실은 욕심을 포장한 것이다. 내가 싫어하는 류의 호칭을 거부했고, 나로서는 분명 부족한 어떤 타이틀로는 불리고 싶지 않은 완벽주의를 포장했다. 그리고 이제 그 모든 것을 나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딸로 태어나 조희선이 되었다. 막내딸인 나는 동생이 되었고 친구가 되었다. 아내가 되었고 엄마가 되었다. 아줌마였다가, 집사였고, 어느 날부턴가 전도사, 목사, 선생님이 되었다. 그리고 손주가 생기고 손주의 할머니, 그리고 다른 누군가에게도 할머니가 되었다. 내가 누군가를 할머니 혹은 할아버지로 부르듯. 그리고 그 모든 것에 더해 작가가 되었다. 이전의 모든 것들이 현재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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