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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선 Jun 21. 2023

레미제라블 읽기 2

불행! 결코 그대로 끝 나지는 않으리

2. “불행은 인간으로 하여금 추락과 상승을 거듭하게 하며, 지성을 길러준다.”

“확실히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불행은 인간의 지성을 길러준다.”(202)

 

지성이란 무엇인가? 미리엘이 G의원에게 말했던 양심일까? G의원이 말한 바에 따르면 그렇다. (“양심이란 우리가 우리 안에 가지고 있는 타고난 학문의 양이다.”) 그렇다면 미리엘의 지성, 고귀한 양심도 과연 불행에서 비롯된 것일까? 잘은 모르지만 그도 확실히 불행을 경험했으며 그 안에서 추락했고 또 상승했다. 그렇다면 장발장에게 닥친 불행은 과연 그의 지성을 길러줬을까? 그는 과연 추락했는데 다시 상승할 수 있을까? 불행을 만나 길러질 수 있는 지성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미리엘의 불행, 혁명으로 시작된 그의 몰락은 그를 어떻게 만들었는가?

미리엘은 분명 불행이라는 것을 경험했다.  

“혁명 때 우리 집에 몰락해서 나는 처음에 프랑슈콩테로 피난하여 거기서 한동안 내 두 팔로 노동을 하면서 알았소. 나는 굳건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소. 일거리는 얼마든지 있어서 골라잡기만 하면 되었소. (...) 1793년에 우리는 친척이 없었고 가진 거라곤 두 팔뿐이었소. 나는 일했소. 발장 씨 당신이 가려는 퐁타클리에라는 고장에는 아주 가부장적이고 아주 매력적인 산업 하나가 있소. 그것은 치즈 제조소인데, 그들은 프뤼티에르라고 부른다오.”(148)

그러나 그는 지금, 자비와 연민의 사람, 그리고 복음적인 사람이 되어있다. 그가 한 말들이다.  

“당신은 당신이 누구인지를 내게 말하지 않아도 좋았소. 여기는 내 집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집이오. 이 집의 문으로 들어오는 사람에게 이름을 묻지 않고, 그에게 고통이 있는가 없는가를 물을 뿐이오. 당신은 고통받고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이므로 잘 오셨오. 그리고 내게 감사하지 말고, 내가 당신을 내 집에 맞아들였다고도, 말하지 마시오. 여기는 피신처를 필요로 하는 사람 외에는 아무에게도 자기 집이 아니오. 당신에게 지나가는 당신에게 이 말을 하겠는데, 여기는 나의 집이라기보다는 당신의 집이오. 여기 있는 것은 모두 당신의 것이오. 어찌 내가 당신의 이름을 알 필요가 있겠소? 더구나 당신이 이름을 말하기 전에 당신에게는 내가 알던 이름 하나가 있소.(...) 당신의 이름은 나의 형제요.”(144)

그 누이가 한 말이다.  

“그(장발장)의 과거에는 과오가 있었고 그래서 오라버니는 그에게 그것을 상기시킬 만한 말은 일체 피하는 것 같았어요. 오라버니는 ‘순결하니까 행복하다’라고 말씀하시다가 불쑥 나온 그 말이 그 남자의 마음을 찌르는 무엇이 있지는 않을까 해, 갑자기 입을 다물어 버렸을 정도예요. 그 장발장이라는 사람은 자신의 비참함을 너무나도 뚜렷하게 가슴 속에 느끼고 있으니 그것을 잊게 하고 평범하게 대해 줌으로써 잠시라도 자기도 남과 다른 사람이라고 믿게 해 주는 것이 제일 좋은 일이라고 오라버니는 아마 생각하셨을 거예요. 이런 것이야말로 정말 자비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 아니겠어요? 그렇게 설교와 훈계와 암시 같은 걸 삼가는 마음씨 고운 태도야말로 정말 복음적인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사람이 가슴 속에 어떤 고통을 지니고 있을 적에 그것을 조금도 건드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연민의 정 아닐까요? 내가 보기에는 바로 우리 오라버니 마음속이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러나 어쨌든 내가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설령 오라버니가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해도, 오라버니는 저에게조차 조금도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에요.”(150)

“오라버니는 그에게 그 좋은 모브 포도주를 맛있게 했는데 오라버니 자신은 비싼 포도주라고 해서 그것을 맛있지 않았어요. 오라버니는 몇 번이고 그뤼랭이라는 좋은 직업 이야기를 되풀이하셨는데 그것이 그 사나이를 위한 안식처라는 것을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권유하지 않고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려는 것 같았어요.(…) 예수에 관해 몇 마디 말씀하셨을 뿐, 식사 중에나 그날 저녁 내내 그의 신분을 상기시키고 나 오라버니의 신분을 알리는 말은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어요.”(149)

 

미리엘에게 장발장은 어떤 사람인가?  

과연 주교 자신이 말한(144), 피신처가 필요한 사람으로 주교가 사는 주교관과 그곳의 물건은 바로 장발장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장발장은 얼마든지 누구보다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은그릇이 우리 물건이었던가? 그건 가난한 사람들의 것이오. 그런데 그 사내는 어떤 사람이었지? 틀림없이 가난한 사람이었소.” (189) “당신을 보니 기쁩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이오? 나는 당신에게 촛대도 드렸는데, 그것도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은이니 200프랑은 능히 받을 수 있을 거요. 어째서 그것도 그 식기들과 함께 가져가지 않았소?”(191)

“가시기 전에 여기 당신 초대가 있으니 가져가시오.”(192) “아 참, 다시 우리 집에 들르실 때는 정원 쪽으로 돌아오실 필요 없소. 언제든지 한길 쪽 정문으로 출입해도 좋소. 문은 밤이든 낮이든 걸쇠만 걸어서 닫아 놓고 있으니.”(192)

“장발장 나의 형제여, 당신은 이제 악이 아니라 선에 속하는 사람이요. 나는 당신의 영혼을 위해서 값을 치렀소. 나는 당신의 영혼을 암담한 생각과 영벌의 정신에서 끌어내 천주께 바친 거요.”(193) “당신은 슬픈 곳에서 나오셨군요. 들어 보시오. 하늘에서는 올바른 사람 백 명의 흰옷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명이 눈물 젖은 얼굴에 더 많은 기쁨이 있을 것이요. 당신이 그 고통스러운 곳에서 인간에 대한 증오와 분노의 생각을 가지고 나온다면, 당신은 가엾은 사람이요. 반면 거기서 호의와 온정과 화합의 생각을 가지고 나온다면, 당신은 우리 둘 중 누구보다도 훌륭한 사람이오.”(145)

 

장발장은 철저하게 불행했다.  

“그는 무지한 사람이었지만 바보는 아니었다. 타고난 빛이 그의 마음속에 불을 밝히고 있었다. 불행 역시 나름의 빛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이 사람의 정신 속에 있는 조금의 빛을 증가시켰다. 곤봉 아래서, 쇠사슬 아래서, 감방 속에서, 피로 속에서, 형무소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죄수들이 마룻바닥 잠자리에서, 그냥 양심 속에서 자신을 뒤돌아보고 심사숙고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심판대 올려놓았다. 그는 자기 자신을 심판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가 부당하게 벌을 받은 결백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했다. 그는 자기가 비난받을 만한 극단적인 행동을 저질렀다는 것을 자인했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만약에 달라고 했다면 아마 그 빵을 거절하지는 않았으리라. 동정심에서든, 일을 해서든, 어쨌든 그 빵을 얻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았으리라. “굶주리는 판에 기다릴 수 있을까?”라고 말하는 건 전혀 이론의 여지가 없는 이유라고 할 수 없다. 먼저 글자 그대로 굶어 죽는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다음으로 다행인지 불행인지 인간은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죽지 않고 오래오래 그리고 수없이 참아낼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러므로 참을성이 필요했다. 저 가엾은 어린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그게 더 나았을 것이다. 사회 전체에 난폭하게 대들고 도둑질로 곤궁에서 벗어나려고 생각한 것은 변변찮고 보잘것없는 사람인 그로서는 분별없는 생각이었다. 어쨌든 치욕으로 들어가는 문은 곤궁에서 벗어나기 위한 좋은 문은 아니었다. 요컨대 그는 옳지 않았다. 이어서 그는 자문했다. 이 불행한 사건에서 잘못한 것은 나 한 사람에게만 있었는가? 먼저, 노동자인 나에게 일자리가 없었고, 부지런한 나에게 빵이 없었던 것은 중대한 일이 아니던가? 다음으로 과오를 범하고 자백하기는 했지만, 징벌이 가혹하고 과도하지는 않았던가? 범죄인 쪽에서 범행이 잘못이 있었던 것보다도, 법률 쪽에서 형벌이 더 많은 잘못이 있었던 것은 아니던가? 한쪽의 저울판에 속죄가 실려 있는 저울판에 과중한 무게가 실려 있지는 않았는가? 과중한 형벌은 범죄는 조금도 없애지 못하고, 입장을 뒤집어, 범죄자의 잘못을 억압의 잘못으로 바꾸어놓고, 죄인을 희생자로 채무자를 채권자로 만들어 놓고, 바로 권리를 침범한 자 쪽에 결정적으로 권리를 부여하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았던가? 탈옥 기도로 계속 가중된 그 형벌은 결국 최약자에 대한 최강자에 폭행 같은 것이 되고, 개인에 대한 사회의 죄악이 되고, 매일 되풀이되는 죄악이고, 십구 년간 계속된 죄악이 되지 않았던가? 그는 자문했다. 과연 인간사회는 그 구성원들에게 어떤 경우에는 부조리한 무분별을, 어떤 경우에는 무자비한 경계를 모두 똑같이 받아들이게 하고, 결핍과 과다 사이에 노동의 결핍과 징벌을 과다 사이에 한 가련한 인간을 영원히 붙잡아 놓는 권리를 가질 수 있는가?”, (162, 163) “그는 자기가 받은 처벌은 사실 부당한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불공정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164)  

 

무엇이 증오를 만들어내는가?

“우연히 이루어지는 재산 분배에서 가장 적은 몫을 탄, 따라서 가장 배려를 받아 마땅한 구성원들을 사회가 그렇게 대응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 아닌가? 이러한 질문들이 제기되고 해결되었으면. 그는 사회를 판결하여 유죄선고를 했다. 그는 자신의 증오심으로 사회를 처벌했다.” (164)

“인간사회는 그를 해치기만 했다. 그는 일찍이 사회에 관해서는 사회가 정의라고 일컬으며 타격을 가하는 자들에게 보여주는 저 성난 얼굴밖에 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이 그와 접촉한 것은 오직 해치기 위해서 뿐이었다. 그들과의 접촉 중 그에게 타격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의 슬하에서부터, 누나에게 길러질 때부터 단 한 번도 다정한 말과 친절한 눈빛을 접해 본 일이 없었다.”(164)

“그는 마흔 살에 학교에 가서 읽기, 쓰기, 셈하기를 배웠다. 그는 자기의 지능을 강화하는 것은 곧 자기 증오심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경우에는 교육과 지식이 악을 보조하는 구실을 할 수도 있다. 말하기도 애처롭기만, 그는 자기 불행을 만들어 놓은 사회를 판결한 후에 사회를 만들어 놓은 신의 섭리를 판결했다. (…)그리하여 고통과 예속의 십구 년 동안 이영혼은 상승과 추락을 동시에 겪었다. 한쪽으로는 광명이 비쳐 들고 다른 쪽으로는 암흑이 들어왔던 것이다.”(165) “어떤 본래의 빛이 이승에서 부패할 수 없고 저승에서 사멸할 수 없는 어떤 거룩한 요소가 선 의하여 발전하고, 북돋워지고, 불붙어 타올라 찬연히 빛나며 악에 의하여 결코 완전히 꺼지지 않는 그 어떤 거룩한 빛이 모든 사람의 영혼 속에 없을까? 특히 장발장을 영혼 속에는 그러한 것이 없었을까?”(166) “이 거칠고 무식한 사나이는 연달아 일어난 그 사상을 아주 또렷이 깨달았을까? 그러한 사상에 따라 그는 차츰차츰 올라갔다가 이미 여러 해 전부터 그의 정신의 내부 세계가 되어있던 그 처량한 상태까지 떨어져 버렸던 것이다.” (167) “그의 모든 사상의 출발점은 도착점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법률에 대한 증오였는데, 이러한 증오심은 만약 그것이 발전 중에 하을의 뜻에 의한 사건으로 말미암아 멈추어지지 않는다면, 어느 때엔가는 사회에 대한 증오가 되고 다음에는 인류에 대한 증오가 되고, 또 다음에는 천지 만물에 대한 중오가 도어, 마침내는 누구든 어떤 생물이든 상관없이 해치고 싶은 끊임없고 막연한 야수적 욕망으로 나타났다.” (172)

통행권에 ‘극히 위험한 인물’이라고 규정한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누가, 무엇이 그를 그렇게만 들었단 말인가? 과연 우리 중 죄 없는 이가 있는가? 그러나 그는, ‘죄인’이라는 이유로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다. 죄인들에게 불공정한 대우를 하는 게 늘 그렇지만 장발장은 특히 집정관 정부 시절(1796년) 죄인이 된 것이다.

“말씀 마십시오. 붉은 죄수복에 둥그런 차꼬, 잠자리는 널빤지, 추위와 더위, 노동, 죄수들, 몽둥이찜! 아무것도 아닌 일에 쇠사슬 두 겹으로 채우고, 말 한마디 잘못하면 토굴을 속에 집어넣고, 누워 있는 환자에게까지 쇠사슬을 채우고, 개들이 더 행복하지요. 그렇게 십구 년간을요! 지금은 이 노란 통행권! 이렇습니다.”(144)

 

장발장은 유죄선고를 받았다. 법정이 규정은 명백했다. 우리들의 문명에는 무서운 시기가 있다. “1796년 4월 22일 집정관 정부가 500인회 보낸 혁명 제 4년 2일의 통첩에서 부오나피르테라고 불리우는 이탈리아군 총사령관이 몬테노테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이 파리에 전해졌는데, 바로 그날 비세트르에서는 많은 죄수들이 쇠사슬에 묶였다. 장발장도 그들 중 하나였다.” 157.

 

그는 파브롤의 가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일곱 명의 어린아이를 먹이기 위해 빵을 훔친 일로, 목에 쇠사슬을 차야 했을까? 그로 인해 그의 과거가 깡그리 무시되고, 이름조차 지워지고, 24601호가 되어야 했을까? 누나는? 그의 어린 조카들은? 살아남은 그 불쌍한 사람들을 누가 생각이나 할까? 하나님의 피조물들이라고? 그가 19년 동안 번 돈은 109프랑 15수였다. (141) 주교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주교가 받는 기본 수입은 1년 15000프랑. 장발장의 년 수익의 2614배인 것이다. 게다가 그가 형무소에서 만난 주교란 어떤 사람이었던가!

“당신이 신부님이시니까 말씀드리지만, 형무소에도 부속 사제가 한분 계셨습니다. 그리고 또 한 번은 주교도 보았습니다. 모두들 예하라고 하더군요. 그분은 마르세유의 마조르 성당 주교였습니다. 여러 사제들 위에 있는 사제였습니다. 그걸 뭐라고 해야 좋을지 죄송하지만 잘 말할 수가 없네요. 말이 잘 안 됩니다. 저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는 분이라서! 하지만 신부님은 우리 같은 사람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 주교가 형무소 한가운데의 제단 위에서 미사를 드렸는데, 머리에는 금으로 된 뾰족한 것을 쓰고 있었습니다. 대낮에 햇빛이 반사돼 그것이 번쩍였습니다. 우리들은 줄을 지어 서 있었습니다, 세 편으로, 그리고 우리들 앞에는 대포와 불이 붙은 화약심지가 놓여 있었습니다. 잘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 주교가 말을 했지만 너무 안쪽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들에게까지는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주교는 그런 사람입니다”(142)

때는 워털루 전쟁 패전 이후 혼돈과 갈등이 나라를 감도는 1815년. 비로소 자유를 그리며 나온 장발장은 공손했다.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고 증오를 품고 나왔지만, 그에게는 여전히 영혼의 빛이 있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공손했다. 시청의 헌병에게(115), (단지 나폴레옹이 엘바섬에서 탈출, 그르노벨에 들어와 그곳에 머물렀다는 이유로 유명해진 어느 여관 주인의 친척이 된다는 이유로) 시내에서 존경을 받는 훌륭한(?) 여관의 주인에게, 그리고 또 다른 여관이 주인에게, 그리고 또, 어떤 형무소의 간수에게, 그리고 조그만 이층집 주인에게(124). 그는 그들의 친절, 아니 지불하겠다는 돈에 대한 당연한 반응을, 혹은 환대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그를 향해 적의를 품었다. 심지어 개조차도. 쓸쓸한 기운의 자연마저도. 감옥 안에서 신에게조차 유죄판결을 내린 그는 성당을 지나치며 삿대질을 했다. 디뉴, 그곳은 종교전쟁에 여러 차례 포화를 견뎌낸 낡은 성벽이 있었고 성문은 이미 닫혀 그를 거부하고 있었으니 밀이다. 모두가 모든 것이 종교마저도 그를 냉대했다.  

 

누가 그를 되살릴 것인가?

“인류 사회의 냉혹한 진행이여! 가는 도중에 일어나는 인간과 영혼의 상실이여! 법률이 떨어뜨리는 모든 것이 떨어지는 바다여! 구원의 서글픈 소멸이여! 오, 정신적 죽음이여! 바다, 그것은 형벌이 벌 받은 자를 던지는 사회의 가혹한 밤이다. 그것은 엄청난 비참함이다. 영혼이 이 심연 속에 흘러들면 시체가 될 수 있다. 누가 그것을 되살릴 것인가?”(176)

 

친절한 아주머니, R 후작 부인

부인은 나그네가 돈이 없어 여관에 가지 못하는 줄로 알고 자신에게 있는 4수를 건넸을 뿐 아니라, 주교가 사는, 주교관 아닌 실제 주교가 사는 집을 알려줬다. 이 사소할지 모르는 이 아름다운 일이, 장발장을 미리엘 주교에게 인도했다. 이 일이 어떤 일을 만들어내는가? 부인 자신은 알지 못한 채.  

그리고 그는 주교 미리엘을 만났다. 그에게는 당장 피난처가 필요했고 그걸 기대했다. 그 주교는 어떤 사람인가? “그대에게 숙소를 달라는 사람에게 그 이름을 묻지 마라. 스스로 이름을 밝히기 거북한 자야말로 특히 피난처가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49) 라고 한 사람이다. 그리고 장발장이 바로 그 피난처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장발장은 주교의 ‘노형’이 되었고. 불을 쬐었고, 함께 저녁밥을 먹었고, 흰 침대보를 깐 침대에서 잠을 잘 수 있었다. 주교는 그에게 빛이었고 그 빛은 하늘로부터 온 양심이었다. 그 빛을 본 장발장은 어땠는가! 그냥 때때로 이상하게도 마음이 누그러지는 것을 느끼면서 그것에 저항하고 그것에 대해 최근 20년 동안의 오전 냉혹한 마음을 맞세웠다. 억울하게 당한 자기 불행에서 얻은 그 무서운 침착성 같은 것이 자기 마음속에서 흔들리고 있음을 깨닫고 불안을 느꼈다.(193) 그리고 마지막 악행을 저지르고 만다. 불쌍한 사부아 소년, 푸티베르제의 돈을 빼앗다니. 어쨌든 이 마지막 악이 그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 악행은 그의 지상 속에 있던 혼돈을 갑자기 뚫고 들어가 그것을 없애 버렸다. 마치 어떤 화학 반응 제가 혼탁한 혼합물에 작용하여 하나의 원소가 가라앉히고 또 하나의 원소는 정화하듯이 그 영혼이 처해있던 상태에서 그의 영혼에 작용했다. (204) 성경 제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 많다는 로마서 15장 20절 21절이 생각난다. 그렇다면 왜 하필 빛은 그 불쌍한 아이들을 더 불쌍하게 하면서, 드러나는가? 불행이 인간의 지성을 길러준다면, 그 사부아 소년에게도 지성을 길러지기를.  

 

빅토르 위고는 어떻게 이런 글을 쓰게 되었는가! 빅토르 위고의 불행

1802년 아주 약하게 출생한 그는 어려서부터 강하고 지혜로운 엄마와 소통이 안 되며 바람을 피우는 아버지와의 갈등, 그 싸우는 소리를 들으며 성장했다. 엄마의 부재, 아버지의 부재를 느껴야 했고, 민감했다. 엄마는 왕당파였고, 왕당파인 위고의 대부 라오리, 그리고 그가 매우 좋아했던 수도원의 교사였던 라 비에르(?)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1815년 그는 나폴레옹의 실패를 환호한 위고 역시 과격왕당파가 되기로 했다. 반혁명파였다. 그는 나폴레옹과 아버지 레오플을 매우 경멸했다. 그는 샤토브리앙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으며 샤토브리앙 또한 과격왕당파였다. 그는 1816년 7월 10일 자 일기에 다음과 같이 썼다.

"샤토브리앙이 아니면 무이고 싶다" (<빅토르 위고>126. ())나중에서야 프랑스대혁명과 나폴레옹의 다른 일면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마치 미리엘 주교가 국민의회 의원 G를 만났듯! 감옥 같은 기숙학교에서 끔찍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으나, 그는 엄마에 의해 자유를 획득했다. 어린 시절 불쌍하게 죽어간 노동자들을 보았고, 그의 문학적 능력으로 행동하기로 했다. 그가 보고 느낀 것들이 작품이 되어, 힘을 갖게 되기를 갈망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위고는 이미 12세에 ‘말에는 사람을 키우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이미 시인이었다. 그는 글을 쓰며 라비에르와 라오리가 배우도록 한 모든 라틴 작가와 그리스 작가의 형제가 되었다.(<빅토르 위고>104)

 

1815년 그해는 위고에게 어떤 해였던가? 엄마와 떨어져 감옥 같은 기숙사로 들어갔던 때이다. 나폴레옹이 복귀하고 왕이 도주했고, 다시 폐위로 이후 엄마와 재회했던, 그리고 대부이며 스승이었던 라오리를 위한 복수가 이루어졌던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빅토르 위고> 1815년) (아버지의, 아버지를 향한 변신)의 신비는 운문에서, 갈수록 웅대한 글쓰기 욕구를 가져온 동력이 되었다. (<빅토르 위고>)

쓴다는 것!, 빅토르 위고에게,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쓴다는 것, 그것은 그 모든 감정, 그동안 배운 모든 지식, 그리고 자신이 꿈꿔온 모든 것들을, 말모이를 벼리는 내면의 거대한 용광로 안에서 용해시키는 일, 쓴다는 것, 그것은 또한 드라공 골목의 대장장이들이 그러하듯, 잠잠한 인간내면의 온갖 것이 밖으로 흘러나오도록, 그리고는 용해된 주물을 망치로 두드리는 일, 쓴다는 것, 그것은 숨쉬는 일, 숨을 멈추면 죽는 것."(<빅토르 위고> 125)1)

“그는 스스로 다짐했다. 남에게 절대 의지하지 않겠노라, 설령 핏줄이라도! 오직 내가 해야 할 것만, 내 필요에 의한 것만 해야 한다! 그리고 일에, 나의 저술에 헌신한다! 자유에 이르기 위하여. 나이 열다섯, 확신했다. 장차 의지할 것은 오직 자기 자신 뿐.”(135)

그는 또 가난했기에, 글이 곧 생계의 수단이 되어야 했다. 그는 불행을 경험했고 그 불행에서 시행착오를 거치며, 자신의 지성을 길렀다. 그리고 그 역시 그 끔찍한 기숙 학교에서 친절한 사람, 조교였고 나중에 사감이 된 펠릭스 비스카라를 만났다. 그래서 숨 쉴 수 있었고, 그의 도움을 받았다. 친절한 후작 부인은 그 자신의 경험에서 나왔을 것이다.  

 

1) 박완서의 쓰기가 생각난다. 새날이 밝았다. 오빠가 오래간만에 잘 잤노라고 기지개를 켰다. 나는 앞으로 후퇴하는 정부가 수복 됐을 때 생각만 하고, 당장 당면한 또 바뀐 세상엔 어떻게 대처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대책 없는 식구들이 답답하고 짐스러웠다. 오빠를 손수레에서 내려 놨다고 해서 내 짐이 가벼워진 건 아니었다. 나는 바뀐 세상의 눈치를 보려고 조심스럽게 문밖으로 나갔다. 지대가 높아 동네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혁명가들을 해방시키고 숙부를 사형시킨 형무소도 바라다보였다. 천지에 인기척이라곤 없었다. 마치 차고 푸른 비수가 등골을 살짝 긋는 것처럼 소름이 확 끼쳤다. 그건 천지에 사람 없음에 대한 공포감이었고 세상에 나서 처음 느껴보는 전혀 새로운 느낌이었다. 독립문 까지  환히 보이는 한길에도 골목길에도 집집마다에도 아무도 없었다. 연기가 오르는 집이 어쩌면 한 집도 없단 말인가. 형무소에 인공기라도 꽂혀 있다면 오히려 덜 무서울 것 같았다. 이 큰 도시에 우리만 남아 있다. 이 거대한 공허를 보는 것도 나 혼자 뿐이고 앞으로 닥칠 미지의 사태를 보는 것도 우리 뿐이라니.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차라리 우리도 감쪽같이 소멸할 방법이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그때 문득 막다른 골목까지 쫓긴 도망자가 획 돌아서는 것처럼 찰나적으로 사고의 전환이 왔다. 나만 보았다는데 무슨 뜻이 있을 것 같았다. 우리만 여기 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약한 우연이 엎치고 덮쳤던가.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거야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 뿐이랴.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그래야 난 벌레를 벗어날 수 있다. 그건 앞으로 언젠가 글을 쓸 것 같은 예감이었다. 그 예감이 공포를 몰아냈다.  조금밖에 없는 식량도 걱정이 안 됐다. 다닥다닥 붙은 빈집들이 식량으로 보였다. 집집마다 설마 밀가루 몇 줌, 보리쌀 한두  됫박쯤 없을라구. 나는 벌써 빈집을 털 계획까지 세워놓고 있었기 때문에 목구멍이 포도청도 겁 나지 않았다._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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