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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선 Jul 04. 2023

레미제라블 읽기 4

정직, 법? 무엇을 위한 것인가? 신앙은.

상마티외 사건, 반격(1부 7,8장)  

정직, 진실성, 그리고 법에 대한 맹목적 경외란 가능한가? 무엇을 위한 정직, 진실성, 그리고 법인가! 

 

정직에 대하여 

무엇을 위한 '정직'이며, 무엇을 향한 '진실성'인가? '정직과 진실성'이 가치를 발하는 때는 언제인가? 어쩔 수 없이 한 사람이 그렇게 되어가게 하는, 가치관, 제도 등의 ’시대 상황', 그리고 개인의 '구체적인 상황'. 그러나 분명 그 안에서의 한계를 지녔음에도 '어느 정도'는 여전히 '자유'를 가진, 한 인간의 선택. 그 선택이 만들어내는 개인들의 대조적인 삶!  

 

자베르는 정직한 경찰이었고, 생플리스 역시 정직한 수녀였다. 그렇다면 마들렌은 정직한가? 

자베르. 문명에 봉사하는 야만인, 로마인과 스파르타인과 수도사와 하사가 뒤섞인 이 괴상한 잡탕, 한마디의 거짓말도 못 하는 밀정은 정직하고 명철하고 진지하고 성실하고 준엄하고 강렬한 양심을 갖고 있었다. (362) 그러나 그의 정직한 양심은, 전과자가 시장 노릇을 하고, 매춘부가 공주처럼 대접받는 꼴을 용납할 수 없었다. (510) 모든 권위에 대해 존경했고, 그가 제일로 여기는 교회 권위 안에 있는, 게다가 평소에 정직한 생플리스 수녀의 거짓말을 그대로 믿었다. (518) 

 

생플리스 수녀. 죽을 걸 알면서도 거짓말을 하지 않고 정직했기에 죽게 된 성인 생플리스의 이름을 얻었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았다. (518) 그러나 수녀는 거짓말을 했고, 그 거짓말 덕분에 정직의 사도 자베르의 생각에 의하면 반드시 잡혀서 감옥에 처박혀 온갖 고초를 당해야만 할 장발장은 잡히지 않고 도망할 수 있었다. 1) 

 

장발장. 그의 머릿속에 태풍이 일었다. 정신의 눈이 볼 수 있는 것 중, 인간의 마음속보다 더 무시무시하고 복잡하고 더 신비롭고 더 무한한 것이 있을까? (388)2) 장발장이 품고 살았던 두 가지 생각, 이름을 감출 것, 그리고 자기의 삶을 성화할 것, 다시 말해 인간들을 피할 것, 그리고 천주에 귀의할 것이란 결코,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것! (390) 그는 생각했다. 그의 행위가 지향하고 있던 엄격한 종교적 목적을 떠나서 생각한다면, 그가 이날까지 행해 온 모든 것은 자기 이름을 파묻기 위해 판 구멍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394) 그의 안에서 양심의 경련들이 반복해서 일어났다. (397) 그는 자기 대신 희생자가 될 샹마티외라는 위인이 나쁜 놈이기를, 그래서 그자를 형무소로 보내도 자신의 양심이 덜 아프길 바랐다.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그는 정직하지 않았고 위기를 모면하려고 했다. 그러나 끝내, 불쌍한 샹마티외에게 억울한 선고가 내려지는 순간 나서고야 말았다.3) 그는 무엇을 위해 정직을 택했는가? 정직해야 할 이유, 정직보다 높은 가치는 무엇이었는가? 그 상위 가치는? 정직은 과연 그 무엇을 위한 하위 가치였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정직하고, 무엇에 진실해야 하는가?  

 

법에 대하여 

샹마티외가 (사과를 훔친) 도둑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너무나 불쌍한 사람이었다.4) 재판장이 숭고한 장발장의 진술을 듣고도 장발장 체포 명령을 내인 이유는 재판장이 격렬한 왕당파라서였다. 장발장이 나폴레옹을 부오나파르테라 하지 않고 황제라고 한 데 불쾌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503) 법은 공정하지 않다. 언제나 그렇다. 사회적 악을 형성한다. 장발장이 법의 악용에 대해 말한다.  

“사람들이 나를 매우 고약한 불쌍한 놈이라고 말한 것은 옳습니다. 그러나 아마 모든 잘못이 그에게 있는 것만은 아닐 겁니다. 판사님 여러분 제 말을 들어 보십시오. 저같이 타락한 자는 주님의 섭리에 불평할 자격도 없고 사회에 건의할 자격도 없습니다. 그러나 아시겠습니까? 제가 벗어나 보려고 했던 치욕은 해로운 것입니다. 감옥은 죄수를 만듭니다. 이 점을 생각해 주십시오. 투옥되기 전에 저는 무지몽매한 가난한 시골 놈이었습니다. 일종의 백치였습니다. 감옥은 저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멍청하던 저는 간악해졌습니다. 우둔한 나무토막이던 저는 위험한 잉걸불이 되었습니다. 그 후, 관용과 친절이 저를 구했습니다. 마치 가혹함이 저를 파멸시켰듯이.” 

무엇을 위한 법인가? 법은 사람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 어떻게 바꾸는 방향으로 집행되어야 하는가? 법 자체가 맹목적 가치일 수도 그런 가치여서도 안 된다. 법은 어머니 같은 것이어야 한다.5) 

 

신앙에 대하여 

페르페튀 수녀. 줄곧 구시렁거리고, 병자를 함부로 다루고(…) 빈사지경에 있는 사람에게는 퉁명스럽게 대하고, 그들의 낯짝에다 하느님을 집어 던지다시피하고, 단말마의 고통 앞에서 우레같은 기도를 후려 던지고 뻔뻔스럽고, 정직했다. (…) (377) 

 

생플리스. 라틴어는 몰랐지만, 기도 책의 뜻을 잘 알고 있었다. (379) 필요한 말만 했고, 섬세한 몸이 투박한 모직 옷에 만족하고, 하늘과 천주를 잊지 않았다. 미덕의 특색으로는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 진실이 아닌 것을, 성스러운 진실이 아닌 것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 그녀가 무엇을 위해 거짓말을 그것도 주저함 없이 연달아 두 번을. (378) 

 

장발장. 그에게는 그를 바라보고 있는 양심이 있었다. 신이 있었다. (393) 

 

주님의 뜻은 어디에 있는가? 

주님의 뜻은 때에 따라 양심과 얼마나 드르게 느껴지던가? 팡틴에게, 장발장에게 느껴지곤 하던, 혹은 거친 페르페튀 수녀가 집어던지던 하나님의 뜻은 얼마나 일관성 없는 것들인가? 주님의 뜻은 양심과 무관하던가? 책임을 피하게 하는 합리화를 형성해가던가? 신의 뜻이라고? 종교는 얼마나 허다한 주문을 하던가?6) 

 

& 생플리스 수녀가 본 팡틴의 미덕은 어떤 것일까? 저자 역시 팡틴이 슬기롭다고 했다. 우리가 어리석게 보았던 그녀에게서 보지 못한 것은 무엇일까?  

좋은 방향으로의 맹목적인 신뢰일까? 톨로미에스를 믿고, 테르메디에 부부를 믿고, 시장 마들렌을 믿고? 믿음이 사라진 세상 아닌가! 나도 언제나 반복해서 속는다. 그러면서 생각하곤 한다. “속는 게 차라리 낫다고” 

1) “이 방에 수녀님 혼자 계십니까?” “예!” “오늘 저녁에 한 사람을, 한 사나이를 보지 않았습니까? 그놈이 탈주했는데, 우리는 그놈을 찾고 있습니다. 그 장발장이라는 놈인데, 그를 보시지 않았습니까?” 수녀는 대답했다. “아니요.” 수녀는 거짓말을 했다. 계속하여, 서슴지 않고, 재빠르게, 헌신적으로 연거푸 두 번 거짓말을 했다. (519~520)  

2) 인간의 의식! 그것은 공상과 탐욕과 기도의 카오스요, 몽상의 도가니요, 수치스러운 생각의 소굴이다. 그것은 궤변의 복마전이요, 정념의 싸움터다. 어떤 시간에, 깊이 생각하는 한 인간의 창백한 얼굴을 통해 깊숙이 들어가 보라. 그리고 뒤에서 들여다보라. 그 영혼 속을, 그 암흑을 들여다보라. 거기에는 외부의 고요함 아래에 호메로스의 작품에서와 같은 거인들의 싸움이 있고, 밀턴의 작품에서와 같은 용들과 히드라들의 난투와 구름 떼 같은 유령들이 있고, 단테의 작품에서와 같은 환영의 소용들이 있다. 인간이 누구나 자기 속에 지니고 있고, 자기 두뇌의 의지와 자기 생활의 행위를 절망적으로 그것에 어울리게 하는 이 무한은 그 얼마나 암담한 것인가? (389)  

3) 배심원 여러분 피고를 석방해 주십시오. 재판장님 저를 포박해 주십시오. 당신이 찾고 있는 사람은 저 사람이 아니라 저입니다. 제가 장발장입니다. (485) (…)자베르가 여기 없어서 섭섭합니다. 그 사람이라면 저를 알아볼 겁니다. (487)  

4) “나는 파리에서 목수를 했소. 발루씨 댁에 있었소. 그건 고된 작업이오. 수레 목수는 언제나 한데서 마당에서 일하지 않으면 안 되오. 다행스럽게도 좋은 주인을 만나면 헛간에서도 일을 하지만, 작업실 안에서 문을 닫아 놓고 일을 하는 법은 없소. 넓은 자리가 필요해서 그런 거요. 겨울에는 하도 추워서 좀 포근해지라고 내가 내 팔을 치지만, 주인은 그런 걸 싫어하오. 시간을 허비한다는 거요. 길바닥에 돌도 얼어붙는 추위 속에 쇠를 다룬다는 건 고된 일이오. 사람이 이내 지쳐 버리지. 그런 일을 하고 있으면 젊은 놈이 그대로 늙어 버리오. (474) 나는 하루에 30수밖에 못 벌었소. 주인들이 내게 삯전을 될 수 있는 대로 적게 주었소. 내 나이를 핑계 삼아서 말이오. 게다가 나는 딸년 하나가 있었는데, 그 애는 냇가에서 빨래를 해 주는 일을 했소. 그래도 조금은 벌었소. (474) 딸년은 애는 녹초가 되어 저녁 7시에 돌아와서는 이내 자버렸소. 그 애는 남편한테 늘상 두드려 맞았소. 그 애는 죽었소. 우리는 정말 불행했소. (475)   

5) 그는 감옥을 방문하고 사형수를 만났다. 있는 그대로의 사회적 상황에서 하층민들은 그 어떤 계급보다 더 많은 형벌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그들이 잘못이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지식이 부족했고 또 다른 면에서는 일거리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생활고가 그들을 내몰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떠한 빛도 그들을 밝혀 주지 않았다. 거기에 추락이 있을 뿐. 그냥 가장 비참하고 심한 착취를 당하며 다섯 살 때부터 일에 내몰리는 아이들을 구하고 싶었다. 그래서 분노가 치밀었다. "나의 입장에서 안락한 생활이나 권력을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관한 한 법은 더 이상 법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법은 어머니처럼 되어야 합니다"라고 절규했다. <빅토르 위고> 524.  

6) 종교의 주문은 방편이 아닌 실체가, 물신이 되는 주문. 그것은 정신을 잃게 하고, 주문의 노예가 되게 한다.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엄기호

나무연필.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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