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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선 Jul 24. 2023

7월 어느날 일기

음식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즐기는 음식은 지극히 적다. 딸아이가 엄마는 너무 음식을 가려먹는다고 할 정도다. 샐러드, 순두부, 비빔밥, 김밥, 갈치, 칼국수, 두부 요리 등이 전부일지 모른다. 거기에 더한다면 갈비탕 정도. 최근에야 추어탕을 맛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게다가 집밥을 더 좋아해, 거의 외식을 하지 않으면서도, 음식을 담기 위한 그릇들은 쳐다보지도 않으면서도 365일 음식 생각을 한다. 그런 사람도 있다.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경하기 위해 빵집에 들어가 둘러보고, 넷플릭스에서는 음식을 주제로 한 영화를 찾아보기도 한다.

그만큼 먹기를 좋아하고, 관심이 많다. 어제만 해도 멕시코 음식 타코에 관한 다큐를 보며, 혹 타코를 즐겨 먹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좋아하는 음식이 뻔~할지 모르지만, 얼마 되지 않는 좋아하는 식재료 만으로도 어쩌면 풍성할지도 모른다. 비빔밥과 샐러드에 들어가는 재료만 해도 그렇다. 거기에 거의 온갖 나물의 종류가 얼마나 많은가! 샐러드의 재료는 다양한 채소부터, 육류와 곡류까지 얼마나 다양한가!

이동식 대표께서 좋은 책을 보내주셨다. <음식의 말들>(김도은

유유)

펼치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단어와 문장들. '취향에 관한 얘기', '365일 먹는 것을 생각한다', '엄마의 도시락과 간식'

이런 말들이 나는 눈으로 보였다. 그리고 맛을 느낀다. 특히 엄마의 도시락. 그리고 엄마와 할머니의 간식. 다음에는 엄마와 할머니의 모습들.

그리고 나를 사로잡는 다음 말.

"막상 원고를 쓰기 시작하니, 마치 엉키고 얽혀 있던 실타래를 풀어나가듯 음식에 대한 기억의 실이 끝도 없이 술술 풀려 나왔다."

나도 써야 풀린다. 내 안의 엉키고 얽혀 있던 것들이.



책에서는 단맛은 원초적이며 매력적이지만 쉽게 질리며 짠맛, 쓴맛이 함께 조화돼야 음식을 맛있게, 오래 먹을 수 있다고 하며 사람과의 관계에도 이를 적용한다.

“어는 순간부터 단맛으로만 다가오는 사람은 피하게 된다. 달기만 한 관계는 오래 지속되기 힘들다고 믿는다. 단맛으로 시작된 관계에서 문득 예고 없이 쓴맛이 나타나면 더욱 더 쓰디쓰게 느끼는 탓이기도 하다.”

사실이다. 나를 좋기만 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분이 어느 순간부터 불편해졌다. 나를 나 이상으로, 나 아닌 다른 사람으로 규정하고, 자신이 나를 그래서 좋아한다고 감정을 표현하는 게 불편해진 것이다. 내가 그분이 생각하는 이미지에 갇히는 게 싫다. 그러면서 나를 되돌아봤다. 나는 누군가를 좋아할 때 내가 그를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는 편이다. 그저 은근히 바라볼 뿐이다. 그리고 그때의 감정 또한 덤덤하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지원한다. 다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독히 내향적이면서 동시에 도무지 누군가로부터도 자유로운 걸 좋아하는 사람으로 타인이 나를 자신의 관점으로 부각하는 걸 몹시 싫어하는 편이다.


오후에 인사동 카페에서 친구 둘을 만났다. 얼마 전 한 친구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읽다가 그녀가 걱정되었다. 참 열심히 살아왔는데, 이제는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은데 결정하기 어려운 것 같았다. 하고 싶은 일은 뭘까? 남편과 의논은 잘 될까? 만났으면 했다. 다른 친구 한 명도 함께 했다. 여자 셋이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들을 나누며, 서로 공감하며 지지할 수 있었다. 오늘의 만남이 서로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이곳에 적으며, 지금 내 앞에 계신 그분에게 들려지기를 바란다.

다시 비가 온다. 이번 비로 이미 피해를 본 분들은 복구작업에 차질을 빚을 것 같다. 지인이 페이스북에 올리는 피해 복구에 관한 글을 챙겨 읽는다. 다행히 돕는 손길들이 있어 다행이긴 하다.


오늘부터 다시 수영장에 가기로 했다. 날이 너무 덥고, 볕이 너무 따가워서 햇빛 알레르기가 있는 나는 밖에 나다니는 게 쉽지 않다. 오랜만에 일찍 나가며 그동안 활용해온 아침 시간을 잃을까, 은근 조바심이 나서 책상에 앉아 이 글을 쓴다. 내게 잘해주는 분, 그러나 나와는 전혀 다른 그분, 나와는 다른 식으로 나를 대하는 그분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분명히 내 마음이 이렇다면 그분도 뭔가 불편한 관계를 느끼고 있을 것 같다. 내 마음의 상태를 말로 표현을 해야 서로에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더 나은 관계가 가능하지 않을까? 그러나 서로 다른 이들끼리의 소통이 쉽지 않고 혹 진의가 다르게 전달될 수도 있다. 어제 체했다는 소식을 듣고, 죽을 주문했다가 오늘 아침 최소신청했다. 나도 그분이 내게 가끔 보내주겠다는 책을 거절한 마당에, 나는 허락도 없이 죽을 보낸다는 게 얼마나 일방적인가가 생각났다.

33년 지기부터 다양한 친구와 그룹이 있다. 각각 관계의 성질이 다르다. 각각 중요하다. 미주알고주알 부끄러운 것까지 다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고, 말을 할 필요조차 없이 그저 그 사람들의 생각과 삶이 좋아 바라보며 신뢰하는 관계들이 있다. 어느 정도 비슷한 성격들이라 자연스럽게 관계가 성립되었다. 고맙지만, 나와는 매우 다른, 나에 대해서 잘은 모르는 이분, 이 친구와의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나갈지 고민한다.


당신도, 참 다양한 이들과의 소통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우리 중 누가 당신의 뜻을 파악할 사람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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