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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선 Sep 27. 2023

경주나들이

9월 18~20. 경주 나들이다. 해보지 않았던 방식이다. 철도와 버스. 경로우대로 Ktx 평일 30% 할인이고, 이제는 여러 가지 질병이 있는 남편이 긴 시간 운전하는 부담도 있어서다. 나 역시 7년간 운전을 쉰 후로는 혹 운전 중 다리에 쥐가 날까? 30분 이상 운전을 하지 않는다. 떠날 때는 택시를 탈 수도 있지, 생각했으나, 알뜰한 우리 부부가 평생 택시를 탄 건 열 손가락을 겨우 넘을 것이다. 결국, 버스를 탔는데 그게 탁월한 선택이었다. 버스를 타고 지나가며 내리고 싶은 곳에 내려 걷는 여행이 주는 맛이 있었다. 경주라는 도시가 좋다. 경주 성동시장의 유명한 한식 뷔페에도 갈 수 있었다. 단돈 8000원으로 옛날 엄마가 해주던 온갖 나물을 한자리에서 맛볼 수 있었다. 온갖 나물을 넣고 비벼 먹는 밥, 평생 이런 비빔밥을 먹어도 질리지 않을 거다. 이런 건 현금으로 계산해야 한다는 생각. 마침 수영장 언니가 인터넷 쇼핑을 부탁하고 준 현금이 지갑에 있으니 딱 맞춤이었다. 귀경을 위해 신경주역으로 가는 길에는 중앙시장을 지났다. 시장을 좋아하는 내 눈이 동그래지며, 다음에 경주에 온다면 중앙시장에 가기로.

알뜰하고 짜기만 한 우리가 모처럼 호사를 부리기도 했다. 보통은 호텔 조식 외에는 호텔에서 식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에는 나이가 들어서였을 테다. 저녁을 호텔 포차에서. 고르곤졸라 피자 8조각 중 남편이 5.5조각을 먹었다. 치킨에 참나물 샐러드도. 곁들여나온 방울토마토 피클 맛이 일품! 만들어봐야겠다.

남편의 입원이라는 예상치 못했던 일도 일어났다. 여행지에서 이틀 중 하루를 호텔 방과 병원 입원실에서 따로 지낸 것이다. 남편의 20년 지기 안과의사를 만나기로 되어있었다. 황반변성이라는 진단을 받은 지 이미 오래고, 그에 따라 정기 검진 역시 오랜데, 녹내장이 진행되었고, 약을 써야 한다고, 하지만 조금 더 지켜보자는 이야기를 서울의 안과에서 들은 바다. 아는 사람이니 더 성의있게 봐줄 거다. 기왕에 경주까지 왔으니 그의 병원에서 안과 검진을 받는 것까지 이번 여행 일정에 있었다. 그러니 나까지 함께 검사를 받자는 게 남편이 생각이었지만, 결벽증이지 싶을 정도로, 아는 사람에게 조금도 신세를 지지 않으려 하는 나는 남편의 제안을 거절했다. 검사가 오래 진행되었다. 진료실에서 의사를 만났고, 남편의 말대로 아는 사람이어서? 그보다는 아는 사람이니 남편이 자신의 질병들을 다 말했고 그걸 들어줄 수 있어서였던 것 같다. 게다가 원래 그분의 성격이 좀 그렇다. 안과 의사로 만나 20년의 인연이 이어진 게 남편과 그 의사의 성격 때문이듯!

“녹내장은 약을 써야 하는 정도다. 내가 생각하는 안약은 서울 병원에 가서 처방받아 바로 사용해야 한다. 진료소견서를 써주겠다. 황반변성? 아니다. 시신경 이상인데, 이건 치료가 불가하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자 보자. ‘다발성말초신경병증’, ‘녹내장과 시신경 이상’, ‘재생불량성빈혈’, ‘갑상선기능저하증’ 등등. 다 각각의 증상으로 볼 수도 있지만, 혈관성 질환으로 볼 때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수면무호흡증으로 자는 동안 산소를 공급받지 못해 생기는 현상으로 생각할 수 있다. 수면다원화검사를 하는 게 좋겠다. 믿을만한 서울 병원으로 소개하겠다. 만일 수면무호흡 증상이 심하다면 2차 검사를 거쳐 양악기를 사용해야 한다. 나이가 있으니 양악기로 해결한다 해도 다른 병증이 회복될 수 없다. 다만 진행을 늦출 수 있을 뿐이다.”

의사의 소견이었고, 나와 남편은 기왕에 이곳에 왔고, 진료받은 이곳 안과에서 입원해 검사를 받기로 했다. 남편은 나를 호텔에 데려다주고, 다시 병원으로 갔다. 약할 때, 우리는 가까워진다.

이미 캄캄해진 밤, 나는 호텔 앞 버스 정류장에서 병원으로 가는 남편을, 남편은 고작 5분도 안 되는 호텔까지 걸어 들어가야 할 나를, ‘매우’ 안타까이 여기며 염려의 마음으로 상대를 보낸다. 그리고 그 5분 뒤에는 호텔에 들어갔는지? 30분 뒤에는 병원에 도착했는지? 서로 확인했다.

남편이 곧 검사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접하고야, 여행이면 늘 준비해가는 졸피뎀을 먹고 취침했지만 잠이 늦게서야 들고, 계속 깼으며 2시 50분부터는 잠이 들지 않아 깨어 있었다. 낮에 아이들을 준다고 산 경주빵과 찰보리빵이 여간 무거운 게 아니었다. 그동안 그 빵들 만큼이나 가장으로 그가 어깨에 짊어지고 살아온 짐들을 떠올렸다. 다음날 새벽에 돌아온 남편과 사우나와 식사를 함께 하고, 버스를 타고 또 중간에 내려 걷다가 병원에 들러 의사와 함께 점심을 먹고 신경주역으로 향했다.

그게 뭔지 모르지만, 검사 결과 수치가 27이라고 했다. 보통 사람의 경우 4~5란다. 해석하는 데 2주 정도 걸리고, 결과지를 보내준다고.

이 모든 이들이 새로운 경험이다. 그 의사가 한 말이 생각난다. “과거의 사람과 현재의 사람은 사실 완전히 다릅니다. 세포가 계속 새롭게 대체되는 거죠.”

노화는 자연스러운 거고, 그저 받아들이면 된다고 생각은 하지만, 남편에게는 아무래도 힘든가 보다.

“그동안 말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나 이제 정말 늙었나 봐.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한 데가 없고, 머리도 잘 돌아가지 않고, 뭘 할 기운이 없어.”

“그래 늙었지. 힘주지 마. 힘을 빼고 살아.”

나도 마음이 한풀 가라앉는다. 남편은 늘 힘을 주고 살아온 것 같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러나 남편에게 힘든 어린 시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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