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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선 Oct 05. 2023

10월 4일

시간의 흐름에 둔감하지 않았다. 일월과 요일을 항상 인지하고 살아왔다. 그랬던 내가 얼마 전부터 오늘이 며칠? 무슨 요일? 한참 생각하는 일이 생겼고, 그런 날이 지속한다. 남편이 그런 경험을 말할 때, 나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뇌의 활동에 변화가 찾아왔고 이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겠다. 읽는 책들의 종류도 달라질 듯하다.

<복음과 상황> No395를 어제부터 읽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는 엄마라, 딸이 쓴 글부터 읽었다. ‘글이 좋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쓸데없는 걱정과 ‘의미 있는 글을 또 어떻게 재미있게 썼을까?’ 하는 기대로 읽었다. “들어갈수록 산과 가까워지는 동네”라는 제목이다. ‘백사마을 재개발’ ‘도심개발’, ‘허허벌판’, ‘맨손’, ’맨손들이‘, ‘함께 지은’, 생의 이야기’, ‘공가’, ‘타인의 삶’ 무겁고 진지하다. 다행히도, 이야기 안에 ‘건반이랑피아노’, ‘본동미디어’, ‘가지란 청양고추’, ‘자개 거울과 보랏빛 빨래판과 깔 맞춘 비누 선반’, ‘고양이’와 시바견이 등장하며 왁자지껄했을 옛 동네의 사람들이, 그들이 맨손으로 함께 지은 생의 이야기가 부드럽고 따뜻하고 정겹게 다가왔다. 개발이라는 이름, 파괴되는 소중한 옛것들, 그 잊어버렸거나 잃어버린 삶들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었다. 편집장의 편집 글, “동교동 삼거리에서” 만나는 문장이 가슴을 두드렸다. ‘이슈로 이슈를 덮는 세상’, ‘오늘의 화가 어제의 화를 밀어내는 세상’, ‘잊히는 희생’, ‘사라져가는 생명’, ‘진실의 왜곡’ ‘꼬리에 꼬리를 잡는 기도’, ‘간토 학살 100주기’, ‘바다를 살리려는 온몸의 기도’, ‘세상의 아픔 앞에 선 기도’

그야말로 어제의 이슈를, 화를, 희생을, 생명을, 왜곡을 어느새 잊고 하하 호호하며 살아가는 나를 마주했다.

그리고 너무나 가슴을 울리는 문장, “기도의 소재는 세상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자끄 엘륄)

세상을 모르고, 세상을 외면하고 그리스도인들은 과연 무엇을 놓고 기도하고 있을까? 나는 어떤가?

내가 깨어난다. 매번, 매일, 누군가에 의해 깨어나야 하는 존재다. 편집장께 감사 메시지를 전하며, 그곳 기자님들께도 마음 전해주기를 부탁했다. ‘정부의 독서문화지원축소’, ‘독서공공도서관 운영지원금 전액삭감’, ‘OECD 국가 중 연간독서량 최하위’를 기록하며 책 읽지 않는 나라가 되어가는 지금 한 달에 한 권 <복음과 상황>을 읽는 이들이 늘어나기를 기대해본다.


수영장에서 돌아와 고구마 줄기와 토란대 껍딜을 갔다.

사람이 되어간다.

엄마가 되어간다.

어른이 되어간다.

이제서야. 비로소.


뿌리고.

거두고,

캐내어,

공들여 먹이는 사람.

중학교 졸업장만 갖고,

공장다니며,

부모와 동생들에게 돈 부치고,

맘씨 착한 남편 만나,

아들딸 셋 낳고,

다 키워낸 후,

이제는 나에게까지,

이것저것 퍼날러 먹이는 S언니 덕분이다.

적당한 관심은 좋지만 지나친 관심은 거부하는

쿨~한 나를 침범하는 사람.

그 성격에 뭣도 못하는 날 위해 다듬고 아예 요리까지 해줬을 텐데,

이번 추석은 일도 많이 하고,시간도 체력도 다 모자랐을 것이다.

"껍질 깔 줄 알지?"시범을 보여줬다.

 "비닐장갑 끼고 해야 해."

나도 좋은 일 한 가지. 지구 생각하며 비닐장갑 한 쪽만꼈다.

한 쪽 손이 흙빛이되었다.

 괜찮다.

차라리한쪽도 끼지 말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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