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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선 Oct 11. 2023

10월 9일

일찍 일어나 일다 남은 <레미제라블> 4를 손에 들었다. 남편은 노인회 회원들과 철원에 갔고 나는 수영장에 가며 오며 레미제라블 4권을 끝까지 읽었다. S 언니가 나물을 싸 왔고, 나는 밥을 가져가 비빔밥으로 먹었다. 오랜만에 함께 먹은 점심이다. 언제나 내 시간을 갖고 싶어 점심 먹자는 제안을 거절해왔다.


1817년의 네 젊은이. 네 명의 소녀를 버리고 떠나면서 연극을 꾸몄던 그 파렴치한 젊은이들. 그중 팡틴과 코제트를 절망으로 내몰았던 펠렉스 톨로미에스에 대해 위고는 차후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며 한마디만 남기겠다고 했다.

“그는 이십 년 후 루이 필리프 왕 시대에 지방의 유력하고 부유한 거물급 변호사로서, 현명한 선거인이자 극히 준엄한 배심원이 되어있었는데, 여전히 도락자였다.”

그리고 이제는 그들과는 완전히 대조적인 앙졸라, 콩브페르, 쿠르페락, 장 플루베르, 푀이, 귀족의 성 앞에 붙이는 ‘드’를 거절한 보쉬에, 졸리, 바오렐 등(490)과 마리우스를, 어린 가브로슈, 에포닌, 마뵈프 영감을, 거칠지만 실은 술값도 조금 내거나, 안 내거나 하는 사람들조차 환대했던 코렌트 주점의 죽은 주인 위슐루 영감을 비롯한 그곳 식구들 이야기를 펼친다.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고, 마리우스를 제외하고는 하룻밤 새 죽어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죽어간 이들. 바로 레미제라블들, 혹은 레미제라블의 친구들. 의 행적을 세세하게, 그리고 애정을 담아 기록한다. (앙졸라의 추종자, 그랑테르가 등장한다. 그가 주절거리는 긴 이야기는 글조차 쓸 줄 모르는 밑바닥 소녀들을 앞에 놓고, 이해할 수 없는 현학적인 말놀이나 해대던, 1817년의 그 잡놈들을 연상시킨다. 그런 놈들은 늘 주변에 있으므로.


그렇다면 유력하고 부유한 거물급과 레미제라블이나 그 곁의 사람들. 그들 중 누가 세상을 구원하는가! 역사에 기록되는 장수인가? 군대와 병사인가? 나폴레옹이나 웰링턴인가? 혹은 캉브론들인가? (2권 워털루 74, 5) 이름도 빛도 없이 레미제라블 곁에서 스러져간 사람들, 거대한 혁명에서라면 고작 ‘합승 마차의 파리(485)’처럼 그 존재가 미미하거나 귀찮은 존재로밖에 비춰지지 않는 레미제라블 간의 작고 사소할지언정 진심이 담긴 그들의 사랑의 행보인가? 과연 누가 가 세상을 구원하는가!


저자 위고가 <레미제라블>과 그 외의 작품들에서 그랬듯, 각 나라의 작가들이, 프랑스뿐 아니라, 각 나라와 우리나라의 역사에 묻힌 채 드러나지 않도록, 기억에서 삭제되기를 원하는 세력들에 의해 숨겨진 이들, 그들이 보았고 참여했던 일들, 그 존재조차 결코 알지 못했을 일들의 진실을 드러낸다. 문학이 할 일이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합승 마차의 파리’처럼 여겨졌을 사람들. 크고 작은 동란, 전쟁, 혁명, 그리고 아무런 이름도 갖지 못한 사건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증언되어야 할.

<복음과 상황> 395를 읽으며 기억의 삭제를 종용하는 세상, 스스로 기억을 삭제하는 나를 만났다. 끊임없이 기억하기를 반복하게 하는 이 잡지가 감사하고, 힘없는 자들 곁에 선 일부 언론에 감사하다.


“Aha~ 어린 가브로슈!” 빈궁과 유쾌함과 존엄이 그 안에 함께 있는.

태어나면서부터 엄마의 사랑에서 배제되어 자라난 가브로슈. 그가 악당이 되었어도 가여울 텐데. 며칠 만에 사과 한 알로 끼니를 때우고, 때로는 그것마저 포기하고 가난한 마뵈프 영감을 불쌍히 여겨 악당에게서 훔친 지갑을 그 앞에 던져주고, 자신이 하나님 역할을 행하는 줄도 모르고, 진작에 수입을 위한 투자로 부유한 악녀에서 버려져 동생인 줄도 모르는, 거리로 나앉게 된 동생들을 거둬, 자기 빵을 나누고, 잠자리를 봐주고, 엄부로 자모로 보살피는 가브로슈라니.

(3권 9~) 파리의 미분자, 꼬마, 건달. 이 작은 인간은 셔츠도 신도 머리 위의 지붕도, 아무것도 없는 하늘을 나는 파리와 같지만, 쾌활하다. 날마다 먹지는 않고 마음이 내키면 연극을 보러 갔다. 발꿈치 아래까지 내려오는 아버지의 헌 바지를 입고 귀밑까지 내려오는 남의 아버지의 헌 벙거지를 뒤집어쓰고, (…) 뛰어다니고, 동정을 살피고, 구걸하고, 시간을 낭비하고,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거칠게 상말을 뇌까리고, (…) 그러면서도 악의는 없다. 마음속에 한 알의 진주가, 순진무구함이, 진창 속에서도 녹지 않는 진주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거리를 좋아한다. 거리에 자유가 있기에. 그에게는 그 자신의 놀이가 있고, 중산계급에 대한 증오가 근본을 이루는 그 자신의 짓궂은 장난들이 있고, 나름의 직업이 있다.

떠들고, 야유하고, 조롱하고, 빈정대고, 싸우고, 누더기를 걸치고 (…) 그는 프랑스의 라블레, 즉 풍자 작가다. (14)

파리 문밖의 이 어린아이는 고통 속에서, 사회적 현실과 인간사 앞에서, 생각에 잠긴 목격자로서, 생활하고 발전하고 맺어지고 풀린다. 그는 자기 자신이 무사태평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는 바라보고 웃으려 하나, 또한 다른 짓도 한다. 그대가 누구이든 간에 그대가 ‘편견’, ‘남용’, ‘파렴치’, ‘압제’, ‘부정’, ‘독재’, ‘불법’, ‘광신’, ‘포학’ 등의 이름이 붙은 자라면, 이 입을 딱 벌리고 있는 건달을 주의하라 이 꼬마는 커질 것이다.


“요 끔찍한 건달이 권총을 갖고 있지 않겠어요! 셀레스탱에서는 대포들이 담쭉 있는 것 같아요. 세상을 어지럽히고 궁리해 낼 불 밖에 모르는 부랑배들에 대해서는 정부도 어쩔 수 없을 게 아니요! 그 모든 불행한 일이 있은 뒤에 이제야 좀 조용해지기 시작했는데, 세상에, 나는 그 가엾은 왕비가 죄수 차를 타고 지나가는 걸 봤어요!. 그런데 이러다간 또 담배 값이 올라가겠죠. 이건 치욕스러운 일이야. 그리고 확실히, 나는 네가 교수대에서 목이 잘리는 걸 보러 갈 거야. 요 악당아!”


그들의 말대로 가브로슈는 교수대에서 목이 잘리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삶이 나아지기를 바라며 반란에 참여했다가 총에 맞아 쓰러졌다. 혁명을 위해, 진보를 위해, 반란을 위해, 연인의 사랑을 위해, 권력의 희생자이면서도 권력을 옹호하고, 자신들이 그로 인해 먹고 사는 쓰레기에만 관심이 있으며, 자신들을 위해 움직이는 혁명가들을, 어린 가브로슈를 저주하는 이들을 위해.


“네가 혁명가들을 욕하는 건 잘못이야. 쓰레기통 아줌마. 이 피스톨도 너를 위한 것이거든. 네가 네 치룽 속에 먹을 마한 것을 더 많이 갖도록 하기 위한 것이란 말이다.”


‘돈 많은 녀석들, 누룩 돼지같이 살찐 녀석들, 양껏 처먹고, 산해진미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놈들, 자신들이 하는 짓이 뭣인 줄도 모르고, 배때기가 터지도록 먹는 녀석들(431)’이 있다면, 어린 가브로슈는 그야말로 굶주렸으나 요정이며, 문학 건달이며, 의식하지 못한 채, 하느님 같은 역할을 해내는 진정한 철학자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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