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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선 Oct 17. 2023

10월 15일

어제 작은딸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읽었다. 아이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지만 일일이 묻지 않는다. 바쁜 아이들을 성가시게 하는 게 눈치 보이고, 아이들이 자신들의 일에 집중할 시간을 빼앗을 것 같아서다. 대신 아이들이 SNS에 올린 글과 사진을 보고 읽는다. 큰딸은 아들 둘을 기르고,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느라 SNS에 글을 올릴 여력이 없다.

작은딸이 올리는 글을 읽으면서, 나와 모든 사람 역시 그렇지만, 말하고 보여지는 것과는 다른 모습들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 재미있게 말하고, 유쾌한 딸아이의 깊은 내면을.

주중 근무하거나, 근무시간이 일정하게 정해지지 않은 곳에서 일하는 딸이, 보통 토요일에 열리는 집회 대부분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는 가보다. 집회라는 상황을 통해서만 상기할 수 있는 삶의 방향, 느낌적 연대감을 경험할 수 없어 마땅히 함께 있어야 할 이들에게서 멀어지고 있으며,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거나 이미 잘못되었다라는 의식이 커가고 있다고 한다. 정말 오랜만에 시간이 되어 전국 전세사기, 깡통전세 피해자 집중 집회에 참여했다고 한다.


“시민 기본권조차 보호하지 못하는 정치, 그 위에서 남의 기본권을 자기 초과수익창출원으로 삼는 수혜 범죄자들이 활개칠 수 있는 사회가 여전히 대한민국이다. 눈물 흘릴 일이 아니라 분개해서 그 추진력으로 해결해야 할 사안이지만, 이곳에서 육성으로 듣는 전세사기 피해자의 이야기는 눈물 없이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정말로 기가 막히다. 시스템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인데 시스템 때문에 해결되지 않는다.”

“나는 운이 좋아서 전세사기를 피했다. 당시에나, 2년 전 매수한 빌라의 불법증축 문제를 뒤늦게 통지받고 해결 중에 있는 지금이나, 세입자 혹은 매수인이 사전에 확인 가능한 모든 서류에는 매물에 관해 세입자 혹은 매수자가 떠안게 될 수도 있는 위험 요소를 완전히 투명하게 알 수 없는 위험이 그대로 존재한다. 이 상황에서 누군가는 기막히게 운이 좋아서 피해가 없고, 누군가는 높은 확률에 딱 걸려 피해자가 될 뿐이다. 이 조건을 사회에 그대로 두는 국가가 말 그대로 범죄 동조자다. 정치인들의 책임은 직접적으로 가장 크다. 얼마 전 총선에서 여당이 당연히 참패한 서울시 강서구 지역의 전세사기 피해 금액이 전국적으로 최대 규모다. 10개월간 6935억 원. 그리고 오늘 집회 자리에 초대받았으나 묵묵부답과 불참으로 반응한 유일한 정당은 집권 여당이다. 반면에 오늘 집회 발언자들 중에는 대전에서 온 분도, 부산에서 온 분도 있었다. 싸울 힘을 끌어모을 힘도 가까스로 차리는 상황에서 그 멀리서 유권자들이 직접 말하려고 서울까지 오는데 정작 들어야 할 이들은 피해 다닌다.”


비가 그치고 2차로는 빈곤철폐 집회가 열렸단다.

나도 딸과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산다. 어떤 일을 피해서 다행이다가 아니라, 혼자 피해서 미안한 마음. 나도 집회에 참석하여 연대하지 못하고, 나누지 못함에 대한 죄책들. 나 대신이 아니지만, 딸이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에 내 마음도 조금 편해진다.


아침을 준비하는데, 갑자기 손자 가 오늘 친구들을 불러 생일파티를 한다고 한 게 생각났다. 케잌을 보내려고 했는데, 혹 늦은 건 아닌가 싶어 화들짝 놀라 한테 전화했다.


해! 오늘 생일파티 하지?”

“네”

“혹시 벌써 케잌 샀어?”

“아니요.”

“그래 다행이야. 할머니가 케일 선물 보내려고 했는데”

“와! 감사해요. 그럼 아빠가 사러 가야 하니까 아빠 카톡으로 보내셔야 해요”

 

다행히 늦지 않게 케잌을 보냈다.

다음 주에는 손자 달의 생일파티가 있다고 했다.

정신 차리고 잊지 말아야 한다.


산책 중에 모녀의 단톡방에 카톡이 울렸다.

“12월에 제주도 여행 가볼려?” “셋이서?” “셋이 여행가본 적은 없는디 ㅋㅋ”

“나야 좋디”

“언니도 갠추나면 셋이 시간 맞는 날로 해봐랴지”, “아 근데 1월이 날 스도 있다 ㅋㅋㅋ”, “매장이 12월 바빠서 미리 날 빼달라고 하거나 해야겠다”

“아무래도 좋디”

“12월이면 애들방학 ㅋㅋ”

“ㅠㅠㅠㅠ”

“용후니가 휴가내고 애들 봐주라 해야 함”

“아마 길게 몬낼 고 같아 ㅋㅋㅋ”

“그렇긴 하지”

“외할배집에 놓고 가면 외할배가 다 몬돌보겠지 ㅋㅋㅋㅋ”

“ㅎ”

“염(이모부)한테 돌보라구 할까…”

“애비가 제일 낫지”

“언니는 지금 현중이 생일파리준비중”

“족발사러감.”

“ㅎㅎ”, “애들 상차림에 족발이래~”

“ㅋㅋㅋㅋㅋㅋ”, “아주 올드훼션이네”

“일단 날짜를 봐야함”, “기묜중 평소에안사주는 치킨 피자”

“생일은 졍말 특별한 날이군”

“기매중생일파뤼는 2주뒤 ㅋ”, “그때또 지 취향을 받아줘야징”

“애덜 선물 내가 다 해거 보내버렸다고 염이 뭐라고 해서 내가 그럼 너는 치킨 피자 쿠폰 같은 거 보내라구 해서 알게따구 핸는데 그럼 무슨 치킨 무슨 피자 쿠폰으로 보내면 대?

왜 이모부는 배제시키냐고 이모만 기억할 거 아니냐고 염이 그런 것도 모른다고 뭐라뭐라 함 ㅋㅋㅋㅋ”


엄마가 아빠가 나이 들어가는 걸 딸들이 실감하는 것 같다. 나 역시 엄마가 지방으로 내려가셨고, 엄마가 조카를 기르고 계셨으므로 모녀간 좋은 곳에 다녀보지 못한 게, 이미 돌아가신 지금도 마음에 안타깝다. 큰딸이 아이들 놓고 가기가 쉽지 않겠지만 함께 제주도 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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