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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선 Oct 16. 2023

10월 14

새벽에 잠자리에서 눈을 뜨면서 하루의 시작을 감사하거나, 평안을 기대하는 일이 드물다. 다른 무엇보다 나에 대한 불안이다. 하루를 헛되이 살게 될까 염려하는 불안이다. 이렇게 생에 부담을 갖고 살아야 하는 걸까? 아이들도 자 자라 독립하고, 끼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고, 이곳저곳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적지도 않게 여러 곳에 정기적으로 후원을 하고 있는데, 지금 누리는 물질과 여유로운 시간을 늘 미안해하면서 살아야 할까?


눈을 뜨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다. 책을 읽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다 그만두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사실 읽고 쓰고 싶기도 하 다.  기억력이 떨어지면서는 더욱 그렇다. 기록하지 않은 삶은 기억에서조차 사라질 것이다.


‘이리 사는 게 맞나요?’ 나의 신에게 중얼거린다. 불안을 안고 책상에 앉아 읽고 쓰면서 어느새 마음이 안정된다.  

다른 날보다 조금 늦게 일어나 책을 펼치려는데, 카톡 창이 밝아졌다가 꺼졌다. 아하! 토요일이다.  아침 7시, 애니어그램 줌 미팅이 있는 날이다.

많은 금액을 내고 해야 하는 검사지만, 김ㅇ동석 목사님께서 나와 작은딸 부부를 무료로 해주셨다. 애니어그램에 대해 배웠고 약간 아는 수준이지만, 목사님이 거의 네 시간에 걸쳐 강의와 대화를 통해 해주시는 검사는  내가 아는 것 이상의 많은 것을 알게 해주셨다. 딸 부부도 자신과 상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집에 돌아가서도 그것을 소재로 많은 이야기를 나눠 관계에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그런 고마움 때문에, 함께 책을 읽으며 줌으로 미팅을 하자는 제안에 기꺼이 원해서라기보다는 어느 정도 보답하는 마음으로 참여하겠다고 했으니, 처음에는 ‘뭐 더 선한 것이 나오랴?’하는 심정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회를 거듭할수록 더 구체적으로 나와 사람들을 알게 된다.


나는 5번 유형이다. 지나치게 나를 관찰한다. 매 순간 상황을 분석하고, 그 상황에 반응하는 나를 분석한다. 나는 그런 나, 늘 현재를 관찰하고 인식하는 내가 현재를 잘 알고 현재를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현재를 관찰, 분석하는 것과 현재에 존재하는 건 다른 것이었다. 수영장에서 걷고 나온 후, L과 S 두 언니와 함께 커피를 마시고, 함께 장을 보며 한 시간을 함께 보낸다. 그 시간을 나는 충분히 즐기지 못했다. 그 시간이 한편으로 재미있지만, 한편으로는 무익한 시간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사를 핑계로, 석달 동안 수영장에 가지 않았고 그 시간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을 가졌으나 몸이 다시 아파지자 다시 수영장으로 향했고 다시 한 시간의 수다를 가졌다. 그러다가 그 시간의 의미를 애써 찾아내려 했다. ‘이 시간이 없으면 내 하루가 재미없을 거야’


이런 이야기를 하자 7번 유형의  멤버 박ㅇ주 선생님이 “어머나 저는 주로 그런 시간을 가져왔어요. 그냥 그 시간을 즐겨요. 그러다가 최근에 그런 저를 인식하고 자리를 확 줄였어요. 인식하니까 저절로 줄이게 되더군요.”


그 말을 들으며 현재에 존재하는 게 뭔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주어진 시시간을 충실하게 누리는 것! 다른 이의 직접적인 경험을 들으며 비로소,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침에 눈을 뜨면 찾아오는 그 불안의 성격을 이해할 것 같았다. 주어진 시간을 맘껏 누리지 못하는 데서 오는 어떤 것!


같은 유형이라고 다 같게 경험하는 건 아니다. 다만 애니어그램뿐 아니라 다양한 타 검사들이 나타내는 검사 결과들이 다 그렇다. 5번 유형 김ㅇ석 목사님과 내가 관찰하고 인식하는 습관은 공통적일 수 있으나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은 다르다. 고유의 특질이 다르고, 성장하면서 갖게 된 가치관이 다르다. 가진 지식과 정보가 다르니 당연하다. 사람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고, 짧은 교육과정을 거쳐 자격증을 취득하고 검사 도구를 사용해 단순하게 사람들을 라벨링하는 검사들에 대한 불신이 있는데, 이번 모임으로 나 역시 점점 확장되어간다. 앞으로는 현재를 기꺼이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며칠 전 특별히 맛있는 식빵을 만났다. 모처럼 수영장의 두 언니에게 맛있는 식빵을 맛보게 하고 싶었고 오늘 같은 토요일은 수영장이 10시에 개장하니 시간적 여유가 있고 수영장에서 나오면 딱 점심시간이다. 샌드위치를 준비했다. 식빵 따로 챙기고, 속으로는 양파, 치즈, 달걀후라이, 토마토, 양배추, 아보카도를 준비했다. 현재에 존재하며, 누리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 나는 그곳에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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