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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선 Oct 27. 2023

10월 26일

아침에 눈을 뜨면 읽고 싶은 책이 있다는 사실은 하루를 즐겁게 한다. 감사로 시작할 수 있게 한다. <날다, 떨어지다, 붙잡다>를 6일째 붙잡고 있다. 왜 이 책이 내게 중요한 책으로 예감할 수 있었는지 비로소 알 수 있을 것 같다. 



작은딸 내외가 오는 날이다. 고양경찰서에 남편이 당한 사기건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하러 함께 가기 위해서다. 고소를 결심하게 한 것도, 준비 자료가 어떤 건지, 고소장을 서주고 증거자료를 준비한 것도 이 아이들이다. 고맙고 든든하다.

그러나 이런 이유와는 무관하게, 그저 아이들이 오는 게 좋다. 아이들이 오는 날이면, 전날부터 당일 아침부터 마음이 들뜬다. 세종에 떨어져 있어서 오기 힘든 아이들이 온다고 하면, 전날부터가 아니라 며칠 전부터 들뜬다. 남편은 그렇지 않은 듯, 태연한 듯하지만 나는 안다. 적어도 나만큼 들떠있다.

아이들이 오자, 준비한 자료들을 확인하고 수정하는 과정에서 남편이 손 떨림이 늘 그년 건 아니지만 가끔은 글씨를 쓰려고 할 때도 나타난다는 사실을, 남편이 말하면서 알게 되었다. 실은 어제도 걱정스러운 말을 들었다. 얼마 전 경주에 갔을 때 예상에 없이 수면다원검사 결과가 매우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게 뭔지 잘 알지 못하지만, 평균 4~5라는 수치가 남편의 경우 31이며 속히 양악기를 하지 않으면 심장마비가 올 수도 있다고 했다.

'아~ 잠을 자다가 갑자기 숨지는 사람들이 그런 이유로 죽음에 이르는 거구나' 생각하며 근심이 되었다. 아무래도 더 정확한 검사가 필요한 듯해서, 12일간의 동유럽 여행을 다녀온 후 검사하기로 마음먹었다. 11월 24일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에 예약이 되어있고, 이때 수면다원화검사 결과를 말하고 다시 검사를 받으려니 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손 떨림과 수면다원화검사결과를 듣더니, 여행 전에 검사해야 한다고 하니, 결정이 쉽지 않다. 어차피 날이 촉박하니 여행 후 검사하기로 했다. 



“나 지병있는 사람이야. 하시모토 갑상선염 말이지.”

“너만 지병있어? 나도 있어. 전정신경기능저하에 이석증도 있지.”

“엄마 쟤도 있어. 전립선염에 ㅇㅇ, ㅇㅇ 우하하하 치질도 생겼어.”

“와 우리 남편, 너희 아빠는 재빈(재생불량성빈혈)에 갑상선 기능저하, 간염에, 다발성말초신경병증도 있잖아. 거기에 녹내장에, 수면무호흡증까지 있어.”

“야. 너희 엄마는 또 언제 쓰러질 지 몰라.”

“아빠. 얘가 갑상선이 유전이래. 아빠 땜에 내가 그렇대.”

“너 정말 왜 그래. 내가 언제 그렇게 말했어? 나랑 아버님 사이를 이간시키려 하네. 제가 요즘 유전자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요즘 유전자 책을 읽고 있거든요. 그래서 한 이야길 저렇게 말하네요. 그럼 안 되지.”

“야. 너희 엄마는 또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사람이야.”


식사하러 가며 각자의 병 자랑을 했다. 유쾌하게!

동네 남원추어탕에 갔다. 내가 최근에 먹기를 배워 그 맛에 빠졌다. 나와 딸은 부추와 청양고추를 남들의 4배 정도를 넣었다.



경찰서에 가 고소장을 접수했다. 경찰서 민원실은 시끄러웠다. 상담을 원하는 어떤 분이 말이 안 되는 상황을 만든다. 그야말로 자신이 신호를 어겨 벌금을 받은 게 뻔한 상황(하도 시끄럽게 해서 그 내용이 뭔지 주변 사람이 귀를 기울여 상황을 파악했다) 인데 그냥 반복해서 떼를 썼다. 경찰 민원 업무가 얼마나 피곤할지 이해할 것 같다. 사람 대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면서, 가장 힘든 일임을 깨닫는다. 



되돌아와 간단하게 저녁까지 먹여 보낼 수 있었다. 이런 날, 이런 시간이 큰 행복이다. 예전에는 큰 행복이 이런 사소한 일상에서 얻어진다고 예상하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와 얼른 화상회의로 일을 마치고, 식사 후에는 급 졸음이 와 한숨 잔 사위가 고맙고 안쓰러웠다.


미리 소식을 접했던 <싱어게인> 시즌 3를 드디어 시작하는 날이지만, 수면습관을 위해 재방송을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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