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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선 Oct 30. 2023

10월 30일

내가 만나게 될 엔도 슈사쿠

하필이면 수영장의 요리를 잘하는 두 언니와 함께 그중 밥 해먹이기를 즐기는 S 언니 집에서 보리밥, 무청 김치, 파김치, 재래식 고추장, 들기름을 섞어 만든 비빔밥을 배부르게 먹으며 신나게 떠들고 나왔을 때였다. 그야말로 딱 동네 할머니인 나는 집으로 가려고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 이르렀을 때,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복음과 상황>의 강 기자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다. 순간 ‘나는 할머니에서 무명작가로의 변신을 느낀다. 그리고 혹시? 원고청탁?’을 생각하며 전화를 걸었다. 예감이 맞았다. 올해가 엔도 슈사쿠 탄생 100주년이란다. 3편의 커버스토리 뒤에 붙일 작은 코너 ‘비하인드 커버스토리’로 6명의 글을 실을 것이다. 그리고 500자 정도로 그중 하나의 글을 써달라고 했다. 이유는 내가 엔도 슈사쿠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다 커버스토리 청탁을 받을 때면 깊이와 분량을 생각하며 적지 않은 부담을 갖는다.  때로는 10일 정도에 A4 6~8매의 글을 써야 한다. 그때도 나는 거의 무조건 원고 청탁에 응한다. 순전히 나의 성장을 위해서다. 커버스토리와 비교할 때, 이번 글의 분량이 1/18인데 교료는 1/3이다. 나로서는 땡 잡은 거다. 그러니 당연히 500자 정도의 글을 쓰기로 했다. 그런데 순간 ‘내가 과연 엔도 슈사크를 좋아하는 건가?’ 자신이 없어졌다. 좋아한다. 그를. 게다가 나는 그로부터 분명 큰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고작 중·고등부 설교에 그의 작품 침묵을 언급했고, 그의 마지막 작품 <깊은 강>에 대한 글을 쓴 적도 있다. 그러나 좋아하는 만큼, 그로부터 영향을 받은 만큼 그를 알고 있는지 확신이 서질 않는다. 사실 강 기자님이 보내온 청탁서를 읽으면서부터 내가 엔도에 대해 참 몰랐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엔도가 자신의 이미지가 진지하게 소비되는 모습을 싫어했으며, 그래서 커피나 맥주 CF에 우스꽝스럽게 출현하기도 한 익살꾼이었다는데, 나는 그의 진지함만을 생각 해왔다. 게다가 아주 최근에 <엔도 슈사쿠의 동물기>(정은문고)를 읽기는 했지만, 그때까지 그야말로 오랜 시간 엔도의 책을 읽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 작품 <깊은 강>을 읽은 2012년 이후 11년 만에 읽은 것이다.      

일단 그의 책이 얼마나 되는지, 나는 그의 책을 얼마나 읽었는지, 알라딘에 들어가 검색했다. <엔도 슈사쿠 단편 선집><엔도 슈사쿠의 문학 강의><침묵><침묵의 소리><지금은 사랑할 때><사해의 언저리><사랑, 사랑한다는 것은><하얀사람 외><잃어버린 나를 찾아서><전략적 편지쓰기><삶을 사랑하는 법><여자의 일생><마음의 야상곡><마지막 순교자><바다와 독약><예수의 생애><그리스도의 탄생><잠 못 이루는 밤에 읽는 책><숙적1><숙적2><나를 사랑하는 법><유쾌하기 사는 법, 죽는 법><아버지><인생에 화를 내봤자><유모아 극장><유머 걸작선><사랑과 그리움으로 가득한 오후><모래꽃><날은 저물고 길은 멀다><스캔들><성서 속의 여인들><신의 아이 (백색인) 신들의 아이 (황색인)><마리 앙투아네트1><마리 앙투아네트2><내가 버린 여자><일본 기독교 문학선><전쟁과 사랑><나에게 있어서 하느님은><바보><사무라이><나의 예수><깊은 강><엔도 슈사쿠의 동물기>     

어쩌면 제목만 다른 같은 책일지도 모르는 것, 그리고 1, 2권으로 되어있는 것 해서 대략 40여권이 된다. 거기에 다른 이가 말하는 엔도에 대한 책으로 <엔도 슈사쿠 연구><남편 엔도 슈사쿠를 말한다><엔도 슈사쿠가 빚어 만든 신><흔적과 아픔의 문학> 4권이 있다. 그중 나는 8권<침묵><삶을 사랑하는 법><여자의 일생><바다와 독약><예수의 생애><그리스도의 탄생><깊은 강><엔도 슈사쿠의 동물기>를 읽었을 뿐이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 못한다. 아무리 짧은 글이지만, 내가 (작품으로 만난) 엔도를 쓰려면 적어도 최애 작품과 함께 엔도에 대한 다른 이들의 글을 읽어야 한다. 14일이라는 기간이 있다. 약간의 긴장이 즐겁게 다가온다. 어떤 책을 손에 잡을 것인가! 분명한 목적으로 책을 사는 것은 약간 궁색해진 가운데서도 기쁜 일이 된다. 내가 만난 엔도가 아니라 내가 만나게 될 엔도를 상상한다.

그가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달리 익살꾼이었다는 사실이 반갑다. 동네 할머니, 때로는 욕쟁이가 되는, 때로는 기쁨조가 되곤 하는 가벼운 나의 변모를 편하게 인정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가끔은 진지하지만, 보통의 나 역시 익살꾼이다. 강 기자님과 전화 통화 전, 수다쟁이 나는 익살스러운 동네 할머니였고, 통화 후에는 마치 진지한 글쟁이처럼 변신했는데, 그게 내 일상이다.

인터넷으로 내가 가는 삼송도서관과 마포중앙도서관에 들어가 엔도의 책을 검색했다. 고작 몇 권이다. 터무니없이 적다. 엔도에 관해 다른 이가 쓴 책은 마포중ㅈ앙도서관에 단 한 권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 도서관에 책이 참 적다. 안타깝다.      

당분간 어제 펼쳤던, 놀라운 책 <랍비가 풀어내는 창세기>(조너선 섹스|한국기독교연구소)는 손에서 놓을 것이다.      




오늘 남편이 경찰서로부터 며칠 전 접수한 고소 건에 대해 전화를 받았단다. 11월 1일 오후 2시에 경찰서에 와 진술을 하라고 했단다. 작은딸과 사위에게 연락했고, 어리버리한 할머니 와 할아버지가 된 엄마와 아빠를 위해 함께 가기로 시간을 조절해주겠단다. 어릴 적엔 우리가 키웠는데, 이제는 아이들이 우리를 돌본다. 그저 고마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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