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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선 Nov 09. 2023

11월 9일

6일 이미 캄캄해진 저녁에 남편이 찬 바람을 맞으며 공항 안에 있는 최소 호텔로 갔다. 함께 가는 친구와 합류하기 위해. 전철 승차선 까지 배웅했다. 남편이 물가에 내놓은 아이같이 마음이 놓이질 않는다. 젊은 시절엔 해보지 않은 생각이다. 나이도 나이려니와 아침 식전, 매 식후 먹어야 할 약에 대상포진약까지 먹어야 하는 상황이 얼마나 번거로울까? 그런 형편이니 표현은 하지 않아도 몸에 대한 자신이 있을 리 없다. 내가 외출할 때면, 남편도 그런 심정으로 조심하라고 반복해서 잔소리한 것이겠구나 싶다.

오래전 폐렴으로 아버지와 엄마가 함께 병원에 입원했다가 아버지가 먼저 퇴원하고 엄마가 혼자 병원에 남았지만, 아버지가 엄마 병실에 있었다. 아버지가 걱정되어 거의 강제로 우리 집으로 모시고 올 때, 떨어지지 않는 발을 옮기는 아버지와 아버지를 보내며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던 엄마 생각이 난다. 갈수록 그렇겠지.

나이가 들고 집에 오로지 둘이 있어 붙어산 지 수년, 그동안 매우 친밀해진 터여서 그런지. 이제는 남편이 집에 없는 날이면 잠이 들지 않아, 수면제를 먹고 자는 경우가 많은데, 어째서인지 벌써 3일째 비교적 잘 자고 있다. 오랫동안 먹지 않고 있던 리스토레이트를 먹는 게 확실히 수면에 도움이 되는 걸 느낀다. 떨어지면 사서라도 먹는 게 좋겠는데, 아무래도 국민연금 외의 수입이 없는 은퇴자에게 비용이 부담스럽다. 7일 아침 일찍 프랑크푸르트로 떠나기 전 남편이 함께 떠나는 친구와 찍은 사진을 보냈다. 마일리지 중 20000원을 사용 둘 다 좋은 좌석으로 옮겼다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공항 라운지는 혼자만 사용할 수 있어 그곳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고.

막상 그가 없으니, 원고를 쓰기 위해 빌려온 책들을 집중해서 읽었고, 오늘 원고 ‘내가 만난 엔도 슈사쿠’를 끝낼 수 있었다. 쿠팡에서 구매 가능하다고 해서 주문한 <엔도 슈사쿠가 빚어 만든 신>은 실제 품절이라며 판매자가 주문 취소를 했다. 그럼 그렇지. 아무리 쿠팡이라도 뭐든 팔 수는 없지. 원고를 위해 빌려온 책과 산 책 한 권을 읽으며 정리하게 된 글이 꽤 많았다. 역시 엔도는 놀라운 작가다. 500자로 원고를 써 본 적이 없고, 정리하다 보니 쓰고 싶은 내용도 많아 걱정했다. 함께 하는 독서 모임에서 누군가가 한 말을 새기며 욕심을 버렸다.  

    

“‘아기 옷을 내놓았다.’라는 짧은 문장은 아기를 잃음과 그 슬픔을 담을 수 있다.”      


549자로 써 보낼 수 있었다. 그동안 너무 욕심으로 길게 쓴 글이 많았겠다. 원고를 썼으니 홀가분한 마음으로, 혼자서도 맛있게 저녁을 차려 먹었다.     

 

앗. 그리고 면역에 좋다는 고구마도 5킬로 주문했다. 퍽퍽해서 목이 메인다는 진짜 옛날 밤고구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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