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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선 Nov 11. 2023

11월 10일

어린 시절 남편이 숙직하거나 출장 가면 혼자 있는 게 싫었다. 젊은 시절? 남편이 일이 있어 집을 떠나면 그 시간을 즐겼다. 노년이 되자 남편이 오래 나가 있으면 잠깐은 자유로운 듯 좋지만 심심해지고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게 되었다. 이번 남편 여행은 또 다르다. 이런저런 병증으로 먹는 약이 많은데 거기에 대상포진까지 걸린 채 여행을 떠났으니 걱정이 되고, 나도 잘 지낼 수 있을까 싶었는데, 잘 지내고 있다. 청탁받은 원고를 써냈고, 늦은 시간이 지루하지도 않다. 굳이 누군가를 만날 필요도 느끼지 않고 혼자 지내는 게 그야말로 좋다. 그래도 S 언니가 점심 먹자는 제안에 응했고 나름 재미있는 시간을 가졌다. 게다가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줄줄이 약속이 있다. 이런 시간도 좋은데 혼자 만이 시간이 줄고 있는 데 대해 아쉬움이 크다.

혼자라도 잘살 거란 생각이 한때 있었지만, 정작 나이가 들으니 남편 없이 혼자 남겨진 삶을 생각할 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는데, 요 며칠을 지내며, ‘내가 이렇게 잘 적응해나가겠구나’ ‘미래를 준비하는 걸까?’ 등등을 생각한다. 어디까지나 남편이 내 앞에서 간다는 걸 전제한 생각이다. 최근에 등이 답답해지는 증상이 자주 나타난다. 어제도 그랬다. 그럴 때면 독한 편의 파스를 목 아래 등 부분에 붙이면 조금 나아진다. 이런 증상을 떠올렸다. 남편이 아닌 내가 먼저 떠날 수도 있다. 혼자 남게 될 남편을 생각하면 정신이 아뜩하다. ‘아니야. 절대 내가 남편 뒤에 가야 해’ ‘내년에는 제대로 된 건강검진을 받아야지’ 결심한다. 대비한들, 인간이 이생을 어떻게 언제 떠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할 수는 없음에도 말이다.      

남편의 삶을 생각한다. 자주 그런다. 그의 아프고 가여운 어린 시절, 가족에 대한 무거운 짐을 어깨에 메고 산 젊은 날들, 나와의 갈등으로 힘겨웠을 짧지 않았던 시간, 온갖 병을 얻은 지금. 나도 나이가 들어서야 철이 들어 그의 무거운 삶을 헤아린다. 이때까지는 내가 느낀 절망과 외로움으로 그의 입장을 몰랐다. 사람이 철들면 떠날 때가 된다는 말이, 그저 웃어넘기며 우리가 입에 담는 말들이 실은 선조들의 경험에서 비롯된 지혜임도 나이가 들어서야 깨닫는다.




MBC 드라마 <연인>을 시청하면서 인조 시대, 왕정 시대, 백성들의 삶을 보며 마음이 아프다. 평등한 인간 사이에 계급이라는 게 생기고, 인류가 하나인데, 국가가 생기고 국경선이 그어지는 현실, 이스라엘과 하마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 세계 곳곳의 불평등과 잔인한 전쟁을 어떻게 할 것인가.

며칠 엔도 슈사쿠의 작품을 읽었고, 지금도 그의 책을 붙잡고 있다. 인간, 국가의 양심, 죄책감이 모호한 일본이라는 나라, 그와는 다른 일본인 개인의 양심.

과연 진보는 멈추지 않는다는 빅토르 위고의 믿음은 유효할까? 낭만이 필요한 시대, <힘 쎈 여자 강남순>을 보는 시간, 황당하게 느끼기보다 웃을 수 있는 시간이다. 엔도의 에세이, <인생에 화를 내봤자> 의 2장, “삶은 비극이라네, 웃을 때 빼고” 그 제목이 와닿는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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