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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선 Nov 18. 2023

11월 16일

작은딸을 여의도 더현대 백화점에서 만났고 집에 와서 같이 자기로 했다. 아빠가 여행하고 집에 혼자 남은 엄마를 위한 배려다. 더현대에서 같이 사진을 찍었다. 숏커트를 하니, 이마의 주름을 전혀 숨길 수 없고 거기에 백발에 가까운 흰머리가 그야말로 할머니임을 각인시켜준다.


바로 어제 예쁜 것과 매력 있는 것은 다르다는 엔도의 글을 읽고,  잠시 위로를 받았으나, '과거의 영광'(이건 진짜다)을 잃은 내 얼굴과 주름에 맘이 저린 건 어쩔 수 없다. 나는 내가 예쁘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다만 어느 정도 매력적이라 나 스스로 느껴왔다. 그래서 화장품도 쓰지 않고 다른 관리를 전혀 받지 않는 걸 도리어 더 멋으로 생각했다. 사실 나라고 더 예뻐지고 싶지 않았겠나. 화장하면 단지 선크림만 바르더라도 저녁 세수를 반드시 해야 하는 게 싫을 만큼 게을러서 그런 게 사실이다. 모든 일은 뿌린 대로 거두게 되어있다. 아름다움, 매력을 포기하고 잘 지낼 날이 온다면 바로 그때 인간의 나만의 매력이 드러날지 모른다. 아니다. 우리 엄마의 마지막 모습은 그야말로 안쓰러웠다. 딸도 같이 늙어가는 게 안타깝다.


집에 돌아와 집 앞 채소 가게에서 사 온 단무지를 썰고, 후딱 시금치를 무치고, 계란말이를 해서 김밥을 말아 먹었다.




사돈이 몇 시간 째 전화를 안 받아 딸과 사위가 걱정한다. 혹 집에 쓰러져 계산 건 아닌가? 집에 가봐야 할까? 괜찮을 거야. 원래 핸드폰 잘 안 보시잖아. 피곤해서 잠드신 건 지도 몰라. 집안일 하다 보면 몇 시간 후딱 지나가. 라면서도 계속 신경을 썼는데, 사돈 총각이 퇴근해 집에 가 연락했다. 보통은 그 시간이 주무시지 않는데 오늘은 주무셨다. 아이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이가 들면 모든 게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딸이 100% 땅콩버터가 몸에 좋다며 만들어줬다. 아침에 사과와 땅콩버터 샌드위치를 먹으면 체지방을 분해해 준다나? 딸들이 집에 오면 여전히 나는 엄마라 내가 아이들을 해먹인다. 그런데 아이들이 컸다고 꼭 뭔가 한가지라도 엄마 아빠를 위해 만들어주고 간다. 당근라페, 후무스 따위의 신식 음식을.

믹서의 컨테이너를 바꿔 물 없이 땅콩을 갈았다. 사용설명서가 눈에 읽히지 않은 지 오래라 믹서의 다양한 사용방법을 모른다. 대충 아무 버튼이나 누르며 땅콩을 갈다가, 아. 진짜 되는구나 싶은 순간, 본체에서 타는 냄새와 연기가 피어올랐다. 세상에~ 땅콩버터 만들다 비싼 믹서기 잡아먹었다 싶었다. 그러나 100% 땅콩버터가 확실히 건강한 맛이다. 비싼 편이지만, 앞으로는 사 먹어야겠다. 연기가 한참을 피어올랐음에도 두 시간 지난 다음 물을 넣고 돌려보니 믹서기가 작동된다. 멀쩡하다. 그렇지만 겁이 난다. 앞으로는 사 먹을까 싶지만, 또 사 먹기에는 믿음이 가질 않는다.





<비공식 작전>(1986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을 보다가, 한 번에 볼 수 없어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원래 영화 한 편을 한 번에 보는 게 어렵다. 그런데 오늘은 새벽 3시에 일어나 김치를 버무려 넣고 수영장에 갔다 와서 여의도까지 가서 딸을 만났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강행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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