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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선 Nov 19. 2023

11월 17일

영화 <비공식 작전>의 남은 부분을 시청했다. 영화 <교섭>도 그랬지만 한 마디로 영화 참 잘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꼭 봐야 할 영화라 생각해 뉴스를 찾았다. 오마이뉴스에 영화 배경이 설명되었다.  (2023.08.03. Ohmy Neus “몸값 절반을 줄 수 없다”...‘비공식 작전’의 숨은 이야기 참고)

1986년 1월 31일 레바논 베이루트의 한국공관 2급 서기관 도재승이 납치되었다가 1년 9개월 만인 1987년 11월 3일에 돌아왔다. 당시 언론과 전두환 정권은 도재승 서기관이 어떻게 돌아왔는지 그사이에 건너뛴 이야기는 전혀 밝히지 않았다. 11년 뒤인 1998년 <신동아>는 익명의 제보를 근거로 석방 과정을 상세히 보도했다. 도 서기관의 비공식 구출 작전을 주도한 인물이 정보기관 출신 미국인이라고만 밝혔다가, 2013년에는 당시 비공식 구출 작전에 참여했던 미국인이 리처드 롤리스 미국 국방장관 고문 역이라며 그와의 인터뷰 내용을 공개했다. 당시 롤리스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도재승 서기관 납치 사건에 알려지지 않은 내막을 털어놓았다. 이와 관련된 자료는 2047년까지 기밀로 분류되어 있다.

영화는 이 구출 작전 과정을 보여준다.영화를 보며, (물론 영화이니만큼 각색되어 있지만) 사람을 구출하는 일도, 구출 직전에 협상 금액의 출금을 금지해 구출에 참여한 외교관까지 을 위기로 만드는 것도, 권력의 구조 안에서 계산되어 일어나는 일임을 마주한다. 영화를 보며 예술의 의미(예술은 금전적 이익에 앞서 충분히 정치적이어야 하며, 바른 삶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를 생각하며 감사하고, 권력의 이면을 보며 그야말로 씁쓸하다. 그런데도 여전히 세계가, 한 국가가 개인의 삶을 사소하게 여기거나, 국가니 나라니 하며 개인을 이용하고 희생시키는 일이 그야말로 비일비재다.




최근 <사도의 8일>(조성기|한길사)을 읽고, 드라마 <연인>과 <고려 거란전쟁>을 시청하고 있다. 집중된 권력 구조 안에서, 권력을 쟁취하고 빼앗기는 가운데, 어느 하나 희생되지 않는 이가 없다는 사실이 다가온다. 언제 한 사람 한 사람의 권리가, 그 삶이 존중될 수 있을까?


빅토르 위고는 그의 <레미제라블>에서 죽기 전 쿠르페락을 통해  개인을 향한 연민의 정을, 역시 죽게 될 앙졸라를 통해 진보를 말한다. 진보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고. 다만 민중보다 먼저 앞으로 나아갈 수는 없다고. 진보를 위해 과거의 전쟁, 폭동을 갖다 쓰지만 어쩔 수 없는 일임을. 그러나 진보는 멈추지 않는다고.. 빅토르의 자신의 바램일 것이다.

여전히 우리 앞에 있는 비정한 자본과 권력(자본이 곧 권력이 되는 세상이다)이 득세하고, 그 앞에서 고통스럼게 스러져가는 개인이 부지기수다. 진보를 위한 투쟁이 있지만 그 안에도 안타까움이 있다. 그러나  빅토르가 평생 그의 문학으로 (정치활동을 했으나 결코 성공할 수 없었다) 자신의 바램을 위해  노력했듯이 오늘도 많은 예술가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런 예술에 기대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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