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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선 Nov 26. 2023

11월 21일

이번에는 내가 집을 비운다. 대학 동창 둘과 셋이 일본에 간다. 여행 아닌 패키지 관광이다. 언어와 경험이 짧고 체력도 안 되니 자유여행이 하고 싶지만, 포기한다. 관광하기 전, 대충이라도 그 나라 그 지역에 대해 조금은 공부를 하고 떠나는 편이지만 이번에는 어디를 가는지도 기억하지 않고 그냥 떠난다. 아주 생소한 곳도 아니고, 가이드가 해주는 설명을 듣기로 한다.

새벽 5시 41분 공항버스를 탈 예정이다.

4시부터 일어나 남편과 티격태격했다. 나를 물가에 내어놓은 어린아이로 여긴다. 내 가방을 반복해서 열어보고 이것저것 챙긴다. 하긴 나도 나 없이 혼자 긴 날 떠나는 남편이 물가에 내어놓은 어린아이처럼 불안하니 할 말 없다. 나이 듦이든지, 사랑이든지. 뭐 그렇다.


대학 친구와의 여행은 그야말로 대학 졸업 후 처음이다. 최소한 44년 만이다. 6시 26분 공항 도착. 약속 장소로 가니 아무도 없다. 핸드폰을 보니 정화와 카톡이 있다. 핸드폰이 무음 상태라 약속 장소가 바뀐 걸 몰랐다. 한참을 걸려 친구를 만났다. 그동안 몰랐던 친구들 성격이 여기서부터 드러난다. 한 아이는 진작 출국장으로 들어갔다나. 한 아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반전이 일어났다. 성격이 급해 먼저 출국장으로 들어간 아이가 발을 동동. 함께 발권하고 짐을 부치면서 여권이 바뀌어 출국장 출입 불가. 혹 자신이 여권을 잃어버린 건 아닌가? 혼비백산했단다. 흐흐. 쌤통이다. 출국장을 벗어나서도 이만저만 급한 게 아니다. 놀려먹기 좋은 친구다. 모든 게 좋은 경험이다.


입국심사서를 쓰는데 깨알 같은 글자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확대해 보는데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이제 여행에도 돋보기가 필수다.


문득! 부어있는 얼굴이 불쾌하다. 그리고 푸석하고 붉은 기운까지 돈다. 손도 어느 정도 부어있지만, 얼굴이 그리된 게 오래다. ‘왜 그럴까?’ 걱정하다가 역시 문득 깨닫는다. 그동안 상당히 짜게 먹었다. 원래 싱겁게 먹는 편이다. 수영장 두 언니 덕분에 먹을거리, 특히 내가 좋아하는 나물류가 많이 생겼다. 그것들을 한 데 비벼 먹으면서 고추장과 들기름을 잔뜩 넣어 비볐다. 고추장은 역시 듬뿍 넣는 게 내겐 제맛이다. 상당히 오랜 기간 그리 먹었으니 붓고 푸석하고 불음 기가 도는 내 얼굴의 주범은 역시 소금이다. 타고난 체질이라는 게 있지만, 내 경험으로는 역시 음식이 몸을 만든다. 그동안의 식생활을 바꿀 것이다.

한동안 큰사위가 절식한 적이 있다. 보통 부어있고 푸석하고 붉은 기가 돌던 사위 얼굴이 가라앉고 붉은 기가 사라지고 편안하게 가라앉아 촉촉했다. 사위에게 음식 간을 약하게 먹으로라고 해야겠다. 그런데 잔소리가 되지 않을지.


운동 삼아 비행기 안에서 일어나 걸었다. 친구들과 비행기에 탄 사람의 태반이 자고 있다. 비행기를 타면 그렇게 잘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럽지만, (부럽다는 말을 싫어하는데, 어쩔 수 없이 쓸데가 있다) 이제는 밤에라도, 수면에 좋다는 온갖 약과 보조제를 먹고라도, 수없이 깨기를 반복하고, 때로는 결국 일어나 졸피뎀 반 일을 먹고라도 잘 수 있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하다. 뭐든 잃어보고서야 그 소중함을 알게 된다. 그 오랜 시간 불면과 통증을 겪고서야, 지금의 수면 상태도, 어느 정도 함께 사는 통증도 다 감사할 뿐이다.

이스타 항공 좌석, 내게 꼭 맞지는 않지만 그리 나쁘지 않다. 항공사마다 좌석 형태가 다르다. 다리가 저리고 어깨가 뻐근해지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감사하다. “너랑 함께 여행하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친구들이 한 말이다. 그렇다. 나는 회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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