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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선 Dec 03. 2023

11월 28일

<복음과 상황> 397호가 집으로 배송되었다. 언제 읽어도 배울 게 많다. 내 500자 원고가 실렸다.  


오랫동안 질문했다. “만물과 나를 비춰줄 궁극적 진리는?” “내 출생의 기원과 삶의 목적은?” 누가 창조주 하나님을 말했다. 그 하나님은 나한테 맞지 않았다. 그래도 하나님이 필요했다. 내가 하나님을 만들었다. 전지한 분! 감출 수 없으니 감출 게 없었고 두렵지 않았다. 뭐든 물었다. 내 안에 계신 듯 답했다. 좋은 시절이었다. 3년 후 교회에 갔다. 많이 배웠으나 하나님이 작아졌다. 단순하고 투명하게 정리된 신, 배타적으로 타 종교를 혹은 비주류의 사람을 혐오하는 신. 내가 만들어낸 신과 교회의 신이 달랐다. 묻고 답하는 대화 아닌, 도깨비방망이 같은 기도가 나를 배신했다.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읽고, 고통을 없애 달라는 기도에 도리어 함께 고통받는 신을 만났다. 다른 작품들도, <깊은 강>도 읽었다. 그 안에서 마침내 내가 그리는 신을 만났다. <깊은 강>의 오쓰가 만난 신. 그 이름을 뭐라 해도 좋을 양파. 사랑의 손길. 어쩔 수 없는 인간(유다)의 업을 수용하고 사랑하는 예수를. 누구나 무엇이나 받아주는 갠지스강은, 오쓰가 그 사랑을 흉내 내는 예수를 얼마나 닮았는지.


이 500자 원고를 쓰기 위해 며ㅉ 권 책을 더 읽으며 그야말로 많은 생각을 했다. 생긱의 지경이 조금은 더 넓어졌다 그만큼 더 깊어졌다면 좋으련만.




이번호에는 처음으로 내 글과 딸의 글이 함께 실렸다. 딸은 결코 내 글을 어디엔가 공유하거나, 내가 쓴 책을 단 한 번도 홍보해주는 법이 없다. 그러나 엄마인 나는 거기에 섭섭해하는 법도 없이 딸의 글을 어떻게든 일리는 펀이다. 그러니 적어도 그에 대한 내 생각만이라도. 어쩔 수 없는 엄마다.


꽤 과거사를 잘 기억하는 편이다. 그것도 꽤나 정확한 맥락까지.

아이들이 자란 과정과 그 안에 있었던 사건 사고를 명확하게 기억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어느날 깨달았다. 내 뇌에서 사라져버린 기억이 상당히 많음을.


"엄마 예전에ㆍㆍㆍ 했잖아" 당연히 기억하리라고 생각하는 딸들 앞에서 "몰라. 기억 안나"라 답하면서 내 뇌의 노화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불쌍타기보다는 딸들에에 미안했다.


"실은 그때 내가 돈이 너무 궁해서 집이 좁다고 핑계대며 팔아묵었당"

딸아이가 내가 피아노 팔아먹은 이야기를 글에 썼다.

기억을 소환해 내주는 딸들이 고맙다.

피아노를 팔아먹은 것 외에 또 한 가지를 더한다면, 아이들에게 "피아노 더는 안 쳐도 된다"며 피아노를 그만 두게 한 것도 사실 돈 문제가 없지 않다.


큰딸이 체르니 40에 들어갔을 때 같은 나이 친척 아이가 치는 피아노 소리를 들었다. 그 아이의 피아노 소리가 우리딸 피아노 소리와 다르다는 걸 느끼는 순간, '아 우리딸은 피아노에 재능이 없구나' 생각했고, 순간 '피아노를 끊으면 경제적 부담도 줄겠고' 라고 전의식이 내게 말했다.


사실 나는 무리해서 애들을 키워본 적이 없다. 거의 돈을 들이지 않고 키웠다.

그리고는 후에 속 마음으로 '그때 좀 악착같이 뭔가를 가르쳤다면?!!' 하는 아쉬움을 갖기도 했다.


나처럼 한량으로 제멋대로 살아가는 아이들이 '내가 그때 안그랬다면' 지금 더 적극적이고 도전적인  인간 유형으로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아이들한테 미안함이 있다.


아무튼 딴 건 다 괜찮다치더라도,

자신을 온전히 표현할 정도로 피아노는, 기타던, 혹은 다른 악기던, 아무튼 예술적인 뭔가를 지속하게 하지 못한 건 늘 미안하고 아쉽다.

지금 손자들을 보면서도,

여전히 공부에는 욕심이 없지만, '예술'  은 포기하지 않으면 한다.

딸이 지금이라도 피아노를 시작해서 감사하다.


딸이 글에 적었듯, '탈아파트'의 삶이 많은 아름다운 삶을 담을 수 있게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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