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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선 Dec 03. 2023

11월 29일

평전을 좋아한다. 좋은 작품을 읽으면 그 작품을 쓴 작가의 삶과 그가 살아온 시대에 대해 알고 싶다. 엔도 슈사쿠의 작품, <침묵>을 읽자마자 그를 좋아했고 그의 작품을 도서관에서 찾아 읽을 수 있는 대로 찾아 읽었다. 2012년까지. 그리고 다시 그의 작품을 찾아 읽으며 유난히 <남편 엔도 슈사쿠를 말한다>(엔도 준코·스즈키 히데코

성바로로)를 읽고 싶었다. 그의 편전이 될 듯했다. 이미 절판이고 알라딘 중고서점에서도 살 수 없었다. 운 좋게 <레미제라블>읽고 쓰기 모임을 같이 한 강동석 기자님이 엔도의 책을 많이 갖고 있었고 바로 이 책을 빌려주셨다.

엔도 슈사쿠의 에세이 몇 편을 읽으며 그가 오랫동안 질병에 시달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의 아내 엔도 준코가 말해주는 <남편 엔도 슈사쿠를 말한다>를 읽고서야 그가 얼마나 다양한 병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그리고 얼마만큼이나 심각하게 아파 왔는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래봤자 환자도 가족도 아닌 독자 수준에서. 누구도 환자의 아픔을 제대로 알 수 없다.

제대로 마취가 안 된 상태에서 수술을 받은 적도, 몸에 맞지 않는 약을 써서 가뜩이나 고통스러운 중 견딜 수 없는 가려움증을 3년 이상 겪었다. 그렇게 아플 때면 오직 작품을 쓰겠다는 열망으로 버텨냈고, 겨우 회복되면 다시 글을 써내고 이내 큰 병을 앓았고, 또 글을 쓰기 위해 그 병들을 이겨냈다. 마지막 욥기를 쓰겠다는 작가정신으로 버텨냈지만 결국 욥기를 쓰는 대신 욥기를 몸으로 살아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자신의 고통을 겪으며 의료 현장을 보며 ‘마음 따뜻한 의료운동’을 벌였고 어느 정도 의료 환경을 바꾸기도 했다. 나 역시 한동안 통증으로 고생한 덕에, 그의 아내 엔도 준코가 의료 현장을 들으며 내 상황과 오늘 의료 현장의 문제가 생생하게 다가온다. 그뿐만 아니라, 죽음의 순간에 대해 말해준 내용을 읽으며, 언제나 죽음을 생각하면서도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에 눈뜬다.


“수녀님도 아시지만, 신장은 신장, 간장은 간장이라는 식으로 인체를 분류해서 각 전문가가 자기 분야만 진찰하고 약을 투여하는 오늘날의 의로 체계는 몸 전체를 살피는 총괄적인 시각이 없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남편이 몸이 몹시 가려워서 견디기 어려워하던 시기가 있었거든요. 의사의 입장에서 보면, 신장병 환자가 가렵다고 호소하는 것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도 있었을 거예요. 그래서 가려움을 멈추게 하는 약을 처방해 주기는 했는데 의사는 그 약이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요. 별생각 없이 치료가 아니라 마음의 위안이나 되라고 약을 지어준 거예요. 어떻게 가려움증을 없앨까 하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구요. (중략) “이건 틀림없이 약물 부작용입니다.”라고 하시더군요. 알레르기 반응 검사를 하고 나서 약을 바꿔 보자고 하시기에 그렇게 했지요. 그랬더니 3년 동안이나 남편을 괴롭히던 뾰루지 같은 것이 단 2주일 만에 싹 없어져 버렸어요.” (228, 229)

“제 친구 한 사람이 암에 걸려서 수술을 받고 목숨을 건진 적이 있어요. 그런데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하도 심해서 “어떻게 정신과 전문의에게 상담을 받을 수 없을까요?” 하고 부탁했다가 “그건 분야가 달라서 안 된다.”며 일언지하에 거절을 당했다더군요. 암 치료에 정신과 의사도 참여하면 좋겠다고 그 친구가 울면서 호소하던 기억이 나네요.”(229)


"의식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손을 잡으면 마주 쥐었어요. 그러니까 의식의 더 갚은 곳에서 또 다른 의식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가와이 히야오 선생님도 책에 쓰셨는데, 인간은 죽음을 잘 맞이하는 것으로서 비로소 인생을 끝내는 것이므로, 그것을 법률의 힘이나 의사가 멋대로 내리는 판단으로 끊어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중략) 장기를 받는 쪽 사정만 먼저 고려하고 이제 인생을 마무리하려는 쪽의 기분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거예요. 죽음을 완성하는 것으로 그 사람의 인생은 완결되는 것이며, 어떠한 인간에게도 자기가 납득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일생을 마무리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중략) ‘이미 쓸모없는 인생이니까 상관없을 것이다. 필요한 사람을 위해서 유익하게 쓰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라고 생각하는 방식은 정말 두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중략) 죽음을 맞이하는 환자 당사자가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형편을 먼저 고려하는 법률은 인권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고 여겨져서 안타까와요.”(245)


엔도 준코의 말대로 오늘날의 의료 체계는 “몸 전체를 살피는 총괄적인 시각”이 결여되어 있고, “죽음은 중요한 작업시간”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는다. 나 역시 오랫동안 아프고 치료를 받으며 나의 신겨 이상이 척추로 인한 것일 수 있음을 밝혔음에도 신경과가 전혀 그걸 받아들이지 않고 준 약을 먹으며 일주일 만에 복시가 찾아오고 곧바로 백내장으로 진행되었다. 남편이 지금 재생불량성빈혈인데, 호중구 수가 한 달 새 260개가 줄었음에도, 혹 수면무호흡증이 한 원인일지 몰라 물었지만, 자신은 수면무호흡증 분야가 아니라는 답을 들었다. 아는 언니 한 분은 가뜩이나 다양한 병으로 여러 과로 병원 출입을 하는데, 최근에는 증상이 달라진 게 없음에도 내분비과를 각각 전문이 다르다는 이유로 두 곳으로 나눠 다니게 되었다.


죽는 순간에 대해서는, 임종을 중히 여기는 문화 안에 살면서 나 역시 그것을 어느 정도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그 순간에 환자의 의식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서 무지했다.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일이 중요하지만, 삶에서 죽음으로 건너가는 사람의 마지막을.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발달한 의료기술이 그렇듯,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발달한 분업체계라는 것들이 과연 그렇지 않던가!

과거 한 사람이 완제품 하나를 만들 수 있던 시대와는 달리, 오늘날 완제품 중 특정 부분만 만들 뿐인 시대다. 사람의 창조성이 도리어 문명으로 제한된 건 아닌지.

어릴 적 아버지는 부품을 사다가 TV를 직접 만들어 우리가 볼 수 있게 해주셨고, 모든 기계가 같은 원리인지 가전 제품이 고장나면 다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당신이 손을 보셨고, 심지어 자동차가 고장나도 어느 정도 스스로 수리해 고치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 이제는 세상사 모든 게 분업화된 세상에서 그런 모습은 그리기 힘들다. 복잡해진 세상에서 완제품 아닌 부속을 만들며 바로 그  세상에서, 세상을 굴리는 한 부속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죽음이라는 삶의 완성조차 보지 말고 살아남은 누군가를 위한 부속품이 되라는 요구를 받아들이라는 메시지를 받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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