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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선 Dec 07. 2023

12월 7일

어제 무리를 하긴 했지. 자면서도 통증을 느꼈고 다리에는 쥐가 났다.  다른ㅈ날 보다  늦게 수영장으로 향하며 역시나 전철에서 읽을 책을 들었다. 매우 피곤했지만, 역시나 무거운 책을 선택했다. 읽다가 내려놓았지만, 그 내용이 내 안에서 계속 싹을 틔우고 있는 책! <랍비가 풀어내는 창세기>(랍비 조너선 섹스

한국기독교연구소)


생각이 같은 자리에 멈춰있는 걸 견디지 못한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 멈춰있는, 정해진 해석이 있는 양, 무한하고 우리의 앎 안에 결코 갇힐 수 없는 신을 과거의 특정 교리나 해석에 가둬두는 현실을. 그걸 뛰어넘어 내 좁은 시야를 터주는 글과 책들을 만날 때, 나는 그걸 은총이라 여긴다. 은총이라지만, 그건 내가 지향하는 곳을 향해 내가 걸어가는 바로 그 길, 그 길에서 점점이 이어지는 순간순간을 ‘인식’할 때 에야만 발견할 수 있다. ​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온 건 은총이다. 얼마 전 몇 장을 읽으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언어'가 과연 무엇인지 이해했고, 나는, 솔직히 말하자면 적어도 내면에서는, 그 전과 조금 달라졌다. ​한참 만에 다시 잡았는데, 또 내 눈을 번쩍 뜬다.




저녁 시간에는 넷플릭스로 영화 <로망>을 남편과 함께 봤다. 부부에게 동시에 치매가 찾아왔다. 가난했지만 젊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하필이면 연탄가스로 딸을 잃었고 그 아픔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갓난쟁이 아들은 얼굴도 모르는 누이를 잃은 아픔을 너무 깊이 간직한 부모, 특히 아버지로 인해 마치 죄인처럼 느끼며 살았고, 장성해서까지 거칠게 대하는 아버지를 미워하며 살아왔다. 아내에게 치매가 먼저 찾아오자 젊어서 잃은 어린 딸에 대한 아픔은 폭력성을 띤 채 터져 나온다. 요양원에 맡겼지만, 겉으로 드러난 것과 달리, 속으로는 깊이 사랑하는 아내를 남편이 다시 집으로 데리고 오지만, 남편 역시 치매 증상이 나타난다. 아들 내외를 떠나게 하고, 부부가 집에 남아 서로 사랑하고 다투고 어린아이처럼 놀다가 남아 있는 현실을 생각하며 죽음을 준비하고 맞이하는 과정을 그렸다. 결코, 우리 부부에게 먼 이야기가 아님을 알기에 그도 나도 눈물을 흘리며 몰입했다. 비록 부부애의 모습은 다르게 그려졌지만, 영화 <아무르>와 그 끝이 다르지 않다. 모양은 다르더라도 살아가는 일이, 그리고 노화와 죽음으로 가는 일이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남편에게 가는 마음과 생각이 예전보다 한결 부드럽고, 그 또한 내게 이전보다 다정하다.



늦은 시간, 보고 싶지 않은 뉴스를 온라인으로 훑었다. TV로는 뉴스를 보기 힘들다. 글자로 보는 것조차, 쉽지 않은 게 뉴스다. 하물며 소리로 전달되는 소식들이란 몸과 마음을 그야말로 짓누른다. 날마다 그런 소식들, 억울하고 부당한 소식들이 넘친다. 뉴스를 보고 싶지 않지만 그럴 수 없는 건 억울한 이들과 마음조차 연대할 수 없는 악인이 되는 게 두려워서다.

오늘은 2018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24살로 숨진 고 김용균 씨 사고와 관련해, 대법원이 원청업체와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는 소식이다. 대법원은 원청업체 한국서부발전 법인과 김병숙 전 사장에게 무죄를 확정했다. 1심에선 유죄였다가, 2심에서 무죄로 뒤집힌 권유환 전 본부장도 무죄가 확정됐다. 김 씨가 숨진 태안화력 9호기, 10호기를 관리하고 감독한 10명은 유죄가 확정됐지만, 금고형이나 징역형의 집행유예로 실형은 없었다.


한국발전기술 소속의 24세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는 2018년 12월 10일)이 한국서부발전이 운영하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2018년 12월 10일 밤늦은 시간 태안화력 9·10호기 트랜스퍼 타워 04C 구역 석탄이송 컨베이어벨트에서 기계에 끼어 사망했다. 11일 오전 3시 20분경이 되어서야 기계에 끼어 머리가 절단된 채로 숨진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그의 유품으로는 면봉, 동전, 휴대전화 충전기, 지시사항을 적어둔 것으로 보이는 수첩, 물티슈, 우산, 샤워 도구, 속옷, 과자, 발포 비타민, 작업복과 슬리퍼 등 외에, 여러 종류의 컵라면과 고장 난 손전등, 건전지들이 있었다. 열악한 작업 환경을 여실히 보여줬다. 대전지방노동청은 태안화력발전소에 대해 특별근로감독을 벌여 12월 26일까지 과태료 1억 원에 해당하는, 40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을 찾아냈기에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했다. 원진레이온 사태 - 1966년 세워진 공장. 마을 사람들에게 ‘꿈의 직장’이라고 불렸던 원진레이온. 이 회사를 오래 다닌 사람들에게서 심상찮은 증상이 나타난다. 극심한 두통, 손발 마비, 정신 이상 증세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수십 명, 수백 명. 어떤 이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역시나 노동부는 이런 사실을 외면했고, 심지어 이 회사에서 1981년에 첫 이황화탄소 중독 환자가 나왔는데도 노동부는 1986년에 25,000시간 무재해 달성으로 원진레이온을 표창했다. 역시나 피해자인 노동자들이 국회를 움직여 정부도 직업병 인정기준을 개정했다. - 이후 1990년 개정된 지 28년 만이다.

2018년 1월 8일 태안화력발전소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가 한국서부발전과 한국발전기술 관계자들을 검찰에 고소·고발함으로 이루어진 조사에 의하면, 규정에는 2인 1조 근무규정이 있지만 지켜지지 않았고 김용균은 컨테이너 벨트에 홀로 일했다. 비상 상황에 대비해 레버를 당겨 컨테이너벨트의 작동을 멈출 수 있는 '풀코드'라는 장치가 있고, 2인 1조로 근무했다면 다른 근무자가 장치를 작동시켜 컨테이너벨트의 작동을 멈추게 해 김용균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한국발전기술 측도 "야간에 2인 1조로 근무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회사의 인력수급 문제로 1명씩 근무했다고 진술했다. 오래전부터 2인 1조로 근무할 수 있게 해달라는 근로자들의 요청은 묵살되었다. 그리하여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졌음에도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7일 업무상과실치사, 산업안전보건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병숙 전 한국서부발전 대표 등의 상고심 선고기일을 열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한 것이다.

국가가, 국가 기관이 국민 개인보다 나아야 하는 상황에 언제나 개인 피해자들의 죽은 목숨이 남은 이들을 살리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 상황은 어김없이 국가와 국가 기관이 뒤집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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