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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선 Dec 25. 2023

12월 24일

12월 24일

지인이 계속 아프다. 상태가 심각한지 벌써 열흘이다. 워낙 긴 세월 건강한 적이 없지만, 최선을 다해 살았고 좋은 활동을 해온 분이다. 부부가 다 그렇다. 어쩌면 그런 분에게 이리도 가혹한 일이 끊어지지 않는지. 그런 상황에 내가 페이스북에 즐거운 모습을 연상하는 글을 쓴 게 마음에 걸린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페이스북 활동을 자제해야겠다. 재미있자고 올린 글 두 개를 나만 보기로 설정했다.




남편은 아들이 없어서인가? 늘 사위가 고픈가 보다. 아침 큰 사위가 크리스마스 안부를 전하려고 전화했다. 28일 사위가 서울로 출장을 온단다. 둘째 사위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단다. 정말 모처럼 만에 셋 만의 자리다. 축하해!




지인이 올린 글을 읽었다. 부족한 게 없는데(많이 가져서가 아니라, 감시한 게 많아서다), 마음이 허하다고 한다. 허함의 깊이가 몹시 깊다고. 왠지 모르게 그렇게 깊이 마음이 허하다고. 그러면서 가난한 심령이 복되다면, 그래서 복이 되기를 바란다고 한다. 왜일까? 그런 식으로 가난한 심령을 과연 복이라 할 수 있을까?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자족이란 어떻게 가능할까? 다른 생각을 해본다. 하루가, 하루의 의미가 내 안에서 인식되지 못할 때 그런 마음 아닐까? 그렇다면, 하루의 의미란? 내게 일어난 하루들을 차곡차곡 쌓아서, 바로 그 하루들로 연결된 나를 발견한다면 그 하루들이 의미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내게 기록하는 일이란 하루가 헛되이 사라지지 않게 하는 노력 아닐까? 나는 누군가의 이야기,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며 그것으로 인해 나를 만들어가고 그들의 이야기까지 팔아가며 글을 쓰고 있으니, 모든 이들의 삶이 내게 의미를 채워준다고 할 수 있다.

“당신은 아시나요?” 오늘도 당신은 내가 만들어지게 하는 분입니다. 당신이 그걸 아신다면. 아실 수 있도록 깊이 생각하며 글을,  당신의 과거들로 부터 만들어지는 당신을 쓰신다면 좋겠습니다.


"인격의 밀도는 쿠르트 몬다우겐이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페네문데 지역에 있는 사무실에서 그 법칙에 대해 '시간의 대역폭에 정비례하자'라고 설명한다. 시간의 대역폭은 현존, 즉 당신의 '지금'을 나타내는 말이다. 사람들은 삶이 과거와 미래를 더 많이 포함할 때, 인간의 대역폭은 더 두터워지고, 견고해진다. 하지만 인간의 감각이 현재에 더 맞춰질수록 그만큼 더 보잘것없어진다. 어쩌면 5분 전에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지점까지 이를 수도 있다."_<중력의 무지개> 작중인물 중, 쿠르트 몬다우겐이 전문용어를 설명해주는 부분. (<고전을 만나는 시간> 39. 에서 재인용)


"시간의 대역폭은 인간에게 필요한 그 밀도를 제공해준다. 속도를 늦춰줌과 동시에 더 많은 행동의 자유를 제공함으로써 '정신없이 바쁜 멈춤'의 상태로 묘사되는 상황을 개선해준다. 그것은 안절부절못하는 영혼을 치료해주는 연고와 같다." _앨런 제이콥스 <고전을 만나는 시간> 40.



그리고 또 다른 당신. 당신이 그분을 고쳐줄 것 같지 않지만, 달리 부탁할 만한 이가 없어 마음을 전합니다. “어쩌실 겁니까? 그분을. 병명이라도 증상의 원인이라도 알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냥 넋두리입니다. 당신이 그렇게 제대로 반응한 적이 언제 있으셨던가요? 바보처럼 그저 그 안에 함께 계시기만 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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