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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선 Dec 28. 2023

12월 28일

"내일도 두시에 약속 있다고?"

"응"


"어제 크리스마슨데 남편 혼자 라면 끓여먹었는데도 안 미안해?"


"응" 이라 답했지만, 곧 약속을 취소했다.


"나, 약속 취소했어."


"그럼. 우리 내일 어디 가서 점심 먹을까? 스탠포드 호텔?"


"그렇게 하자. 내일 12시 거기서 만나."


그리고 다음날인 26일 12시에 스탠포드 호텔 식당에 마주 앉았다.


"당신 나 죽으면 살 수 있을까?"


"왜 죽을 것 같아?"


"아니. 그냥 걱정되지."


그리고 어제 27일 또 묻는다.


"나 죽으면 당신 정말 잘 살 수 있을까?"


나도 그제와 같은 말로 답한다.


"왜 죽을 것 같아?"


"아니. 내가 당신보다 오래 살건 데?"


"걱정 마. 당신이 먼저 죽으면 한 3년 힘들 거야. 그리고는 잘 살 걸?"


재생불량성빈혈로 호중구 수가 계속 낮아지는 남편과 나의 대화가 이렇다.


오진으로 혈액암 종류인 골수이형성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고서 그야말로 실감이 나지 않아, 멍한 상태로 몇날을 지낸 후,

자기는 미련없다고 내가 걱정이라고 말하는 걸 들으며 눈물을 흘린 게 벌써 1년 하고도 3개월이 지났다. 올해 오진임을 말고, 재생불량성빈혈(재빈)로 재진단을 받았지만, 우리 부부 둘 다 마음이 크게 요동하지 않았다. 상태가 경증이고, 다른 병들로 인한 병증은 완전하지는 않지만 약으로 잡히고, 정작 재빈의 증상은 느끼지 않기에. 그렇더라도 호중구수가 개선되기보다는 감소한다는 사실이 걸리는 게 사실이다.

나는 혹 남편이 이 일에 대해 너무 가볍게 생각해 어쩌면 닥칠 수도 있는 일들에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할까봐 염려한다.


그런 마당에 연 이틀  같은 소리를 하니, 마음의 준비를 하는가보다, 도리어 마음이 놓이기도 하는 형편이다.


그런데 과연 나도 남편도 실감하지 못하니, 사실 마음의 준비라는 게 가능한 지도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그제와 어제 같은 대화는 조금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지나치게 가벼운 대화가 과연 옪은 건가 싶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바람직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오늘 남편은 사위 둘과 셋 만의 시간을 갖는다. 신사동에서 식사 중이다. 큰사위가 세종에서 올라와 모처럼 갖는 회동이다. 이런 좋은 날들이 쌓이기를.


가끔은 남편이 호흡에 곤란을 느끼며, 힘들어하는 모습을 연상한다. 그러면 그때 그런 남편도 남편의 모습을 보는 나도 얼마나 힘들까!


그럼에도 도무지 실감할 수 없다. 당해보지 않은 어떤 일도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런데 오늘 수영장에서 가슴이 무서지는 소리를 들었다.


"이선균이 죽었대"


"그러니끼 지가 미친 놈이지. 그런데를 왜 가

뭐 녹음파일도 있다며."


"그거야 뭐 얼마든지 편집할 수도 있는 거지"


"그래도 다 지 잘못이야. 지가 잘못해 죽은건데 뭐"


두 할머니의 대화를 듣고 말았다. 죽을 수밖에 없는 그래서 죽기로 결심한 자의 그 심정을 이해해보려는 따뜻함을 찾아볼 수 없는 그분을 나는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지인은 영화 <서울의 봄>을 보고 나서, 뒷 좌석의 젊은이가 "그래도 어쨌건 (전두환이) 똑똑하네" 라고 하는 말을 듣고 울분이 찼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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