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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선 Jan 02. 2024

1월 2일

수영장 가는 길, 전철 안에서 읽던 책을 놓지 못해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읽고 있었다.

"어휴. 어둔운 데 책을 보네. 나는 글자가 보이지 않아 아예 글자는 쳐다보지도 않는데."


"저도 힘들어요."


"눈이 밝아 좋겠다."


나도 책 읽기 힘들다고 한 말은 흔적조차 사라졌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책 읽는 나를 그리도 참견하는 분이 많은데, 한결같이 눈이 밝아 좋겠다는 부러움이다.


나도 책 읽기 힘들다. 점점 눈이 나빠진다. 시력도 시력이거니와 눈이 아프다. 은근히 걱정된다. 가끔 걱정은 과장되어 '이러다 언제까지 책을 읽을 수 있을까' 까지 이르기도 한다. 뿐만 아니다. 허리도 어깨도 아파온다. 책을 읽지 않는다면, 어쩌면 아프지 않은 게 어떤건지 모르는 지금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곤 한다.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읽는다. 그래도 쓴다. 파편처럼 흩어질 수 있는 내 삶의 조각들을 이어주며 통합해주는 의미있는 일이기에.

그런 읽기도, 쓰기도 좋지만 힘이 들기도 하다.


어디 좋아하고 의미있는 일을 하는 이가 그 일을 위해 힘든 대가를 치르는 이가 나뿐이랴?

음악을 잘 모르지만, 요즘 애청하는 <싱어게인>을 보면서도 그들의 노력 앞에서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나같은 사람은 사실 그같은 사람들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아주 작은 내 수고를 너무 쉽게 대하는 이들을 향해 편한 마음을 갖지 못한다.

아주 작은 수고와 노력을 하는 나이기에, 나는 감히 그런 분들을 향해 부러워하지 못한다. 존경할 뿐이다.


다른 이의 환경을 놓고, 부럽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심하게는 하루에도 몇번씩 들을 정도다. 나를 향한 말이 아니라도 그런 말을 하는 이들을 볼 때 나는 결코 너그럽지 못하다.


'뭐 그런 것 정도, 그냥 넘기면 되는 건데, 그리 까탈스러울까?' 생각하면서도 그리 되지 않는다. 타인의 노력을 가볍게 여기는 그런 태도가 싫기에,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도 그런 말에 나는 참지 않는다.

스트레스 수치가 고점을 찍어야 했던 친구들이 적지 않다. 그간의 고생을 들었지만, 그 고생은 완전히 잊고, 지금의 그 친구를 향해 "너 좋겠다. 부러워~ "라고 하는 친구는 내가 아무리 친구의 과거 고생을 상기시켜도 또다시 기억하지 못한다.


제발 타인의 어려움을 볼 줄 알면 좋겠다.


오늘도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들을 쓰고, 또 책 읽읽고 정리하는 게 벅차지만 기록하고 싶지만, 하고 싶은 만큼 읽지도 써내지도 못하고 있다.




연말연시 손주들이 왔다갔으니 손주를 향한 마음이 다중적이다. 사랑스럽지만 동시에 아리다. 가슴이 먹먹하다.


점심  식사를 하고 산책하면서 나눈 대화가 그야말로 사랑스럽고 대견했다.


"너희가 이 동네 사니까 할머니 할아버지는 이곳에 집을 산 건데, 너희가 세종으로 가버렸네. 거기 사는 게 좋아?"


"잘 모르겠어요. 저희도 금방 올라올 줄 알았는데 정착해 살게 되네요."


이때 제 엄마가 뒤에서 대화에 끼어들었고 해가 이어 내게 말했다.


"해는 대학가면 이모나 할머니 집에서 다니면 되겠다"


"할머니. 그때가 되면 할어니가 더 늙으실텐데요. 그러니까 저를 데리고 있기 힘드실 거예요.

제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자취를 하고 할머니를 도와드려야  할 거예요."


"그래? 가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면서 같이 있으면 되겠네. 하긴 니가 늦게 오고 그러면 할머니가 걱정되서 잠도 못자고 하긴 하겠다."


"근데 저는 늦으면 늦는다고 전화하는 편이예요."


그 다음날 아침 8시 정도였다.


"이모한테 전화해볼래?

이제 깼나?"


"이모도 새해인데, 잠 좀 푹 자라고 놔두죠."


그토록 이모와 이모부를 기다리는 놈이 한 말이다.


달에게도 물었다.


"달아. 너도 같은 생각이야? 이모 늦잠자도록 놔둬?"


"네. 사실은 엄청 깨우고 싶지만요."


그런데 초등학교 4학년인 해가 5학년이 되는 게 싫단다. 수학이 어려워져서  공부가 힘들단다.


밀린 수학 문제지를 갖고 왔고, 12시에 온 이모가 점수를 매기며, 해가 왜 수학 문제를 어려워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옆에서 들으니 이모가 해주는 설명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게 설명하며 도와줄 사람이 없었던 것.

'얼마나 답답했을까' 내가 생각하는데, 그때

해의 엄마가 말했다.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이모처럼 설명해줄 줄 모르니까 도리어 버럭  화낸거야. 정말 미안해."


내 전공이 수학교육이다. 나 역시 4학년이 되면서 산수가 힘들었다. 그때 심정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 그만큼 마음이 어려웠다. 그런 상태로 중학교에 입학했다. 중1때 좋은 과외선생님을 만났고 몇달 만에 과외를 끝냈지만 중3까지 수학은 문제없었다.

고 1 수학 선생님이 그야말로 형편없었고, 나는 수학에 관심을 잃었고 다시 어려워지고 말았다. 다시 6개월 정도 과외를 받았고, 다시 수학만큼은 자신이 붙었다.


수학은 조금 도움이 필요하다. 내 수학공부사를 손주 해와 해의 엄마에게 들려줬다.


"이모부한테 배우면 잘 할텐데~" 라고 내가 말하니,


하는 말이 이렇다.

"이모부 같은 선생님을 만난다는 건 전생에 나라를 구한 걸 거예요"


나도 해의 엄마에게 산수, 수학을 가르치며 얼마나 아이를 이프게 했는지 모른다.

공부방이라는 게 있나보다. 해를 그곳에 보내야겠다고 했다.


어린 것들이 자라나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고 아픈지

아이를 양육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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