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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선 Jan 14. 2024

1월 13일

최승주 화백 전시회. "주님과 함께, 다시"에 다녀왔다. 최 선생님의 전시회는 세 번째다. 처음 전시회에서 처음 만난 분이었고, 그림을 모르는 내가 참 어색했다. 선생님 그림은 단 한 점이라 아쉬웠다. 기독교 화가들의 전시회였고, 참가자들이 각각 한 점 혹은 두 점을 낸 것이다. 이후 전시회에서뿐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만났다. 그때마다 느꼈다. 소탈하다. 숨기는 게 없는 투명함. 차츰 그분 앞에서 무장해제다.

어제는 처음으로 만난 게, 한 달도 안 크리스 선생님과 함께였다. 신중해 보이는 분이다. 덜렁대고 실수투성이인 나는 나보다 젊은 그분 앞에서 조금 조심스럽다. 그런데도 솔직하신 듯. 많은 걸 배울 수 있을 듯하다.

4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했다. 크리스는 ‘왜 굳이 예수 얼굴만 그리는지’ 묻기도 했다. 다른 그림을 그리려 해봐도 안 되더란다. 어리기만 한 18살 유학길에 오른 이유와 과정, 독일에서의 삶과 그때는 몰랐던 ‘발도르프 대학’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아쉬움. 그리고 귀국과 결혼, 30년간의 쉽지 않은 삶을 들으며, 크리스의 물음과 아직은 ‘다른 그림을 그리려 해봐도 안 되더라’는 최 선생님의 답을 어쩌면 이해할 듯하다. 자신은 모를지 모르지만, 내가 보게 되는 소박한 보석 같은 느낌!




최 선생님은 현재까지 미술교습소를 운영하고, 크리스 선생님은 과거 학원을 운영하셨고, 기금은 논술 선생님으로 과외를 하신다. 손자 해의 그림과 학업능력 이야기를 자연스레 풀어놨다. 해의 그림, 나 역시 예사롭지 않게 여겼는데, 요즘은 신통치 않게 느낀다. 그런데 얼마 전 페이스북에 내가 올린 해의 그림을 보고 최 선생님은 “디테일과 표현력에 스토리까지 완벽합니다.”라고 댓글로 칭찬하셨다. 오늘은 그 이유에 대해 디테일과 스토리가 있다는 건 관찰력을 의미한다고 하셨다. 요즘 그림이 별로인 건, 다른 사람들이 그린 그림을 보며 흉내 내는 데서 온다고도 하셨다. 그게 어떤 아이에 대해서는 굳이 미술학원에 꼭 보낼 이유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최 선생님이 그냥 칭찬해주신 건 아니었음을 알게 되니, 그리는 시간이 제일 좋다는 해에 안심이 된다.

그림, 음악, 책 등 조예가 깊다고 하니, 두루두루 본인은 얄팍한 지식만 있을 뿐이란다. 그러니 학위와는 무관한 ‘박사’인가? 크리스 선생님에게 사교육 시장의 층위에 대해 들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건, 그 아이의 언어로 그 아이의 능력을 끌어내는 게 중요하다. 그게 핵심이다.’ ‘그건 아이를 관찰함으로 가능하다’

그거였다. 관찰! 그건 관심이고 사랑이다. 그게 중요하다. 앞으로 해가 다닐 학원. 영어 학원과 수학 학원, 달이 다니기로 한 영어 학원에서 그런 선생님을 만날 수 있을까?

한때 사교육이 무용하다고 생각했는데, 내 과거가 생각났다. 나도 과외로 따라가기 힘든 수업을 극복했다. 좋은 선생님들 덕분이었다. 큰딸을 래가 가르치다가 도리어 아이의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포기했고, 학원의 도움을 받았다. 결국 놀 시간 없어질 해와 달, 교육비 부담될 딸,

모두 모두 가엾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이런 걱정하게 될 줄 몰랐다.




크리스 선생님과 나는 같은 3호선 전철을 탔다. 나는 원흥역, 크리스 선생님은 주엽역.

전철 안에서는 책과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가 이어졌다. 서로 다른 사람들의 동거. 그 안에서의 배려와 혹은 가스라이팅에 대해서도.


원흥역에서 하차.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얼마 전부터 에스컬레이터가 고장이다. 월드컵경기장역도 그렀다 내가 이용하는 전철역 곳곳이 그렇다. 과연 언제까지 이런 문명의 삶이 지속될 수 있을까? 결국은 문명의 역습이 우리를 무너뜨릴 것이다.

엘베앞에 서있는데 뒤에서 누가 나를 잡아당겼다.

남편이다. 너무 다르지만, 배려하며 사는 사람. 두 손 꼭 잡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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