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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선 Feb 03. 2024

2월 1일

<텐트메이커>(최주광

뜰힘)를 읽었다. 부제가 ‘이중직 목회자의 신학’이다.


10여 년 전, 함께 일하던 목사들과 광주의 어떤 행사에 참석했다가 5.18 광주 묘역에 이어 운주사를 찾았다. 그곳 자연과 조용한 분위기로 인해 마음에 평화가 깃드는 듯했다. 사진을 찍었고, “이런 곳에 소박한 교회가 있으면 좋겠다. 저녁 시간, 각자의 일터에서 이곳에 와 편한 마음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이어갈 수 있다면 좋겠다. 교우도 일터에서 오는 것이라면, 목사 역시도 교회 아닌 자신의 일터에서 돌아와. 목사도 교회 아닌 자신의 일터가 있다면 교우들과 삶과 연관된 실질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다.”라는 글과 함께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 글은 지금 사람들이 말하는 목사의 이중직에 관한 것이었지만, 내겐 지금 교계에서 언급되는 소위 목사의 ‘이중직’이라는 게 너무 자연스럽게 여겨졌다. 그런 구조가 되려면 개인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교계에서 제도적으로 밑받침해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그때의 나는 멍청한 낭만주의자였다. 그때 내 생각을 문제 삼은 이는 없었다. 정작 문제가 된 건, 절터였다. “목사가 어디 절터를 올려놓고 그런 말을 하느냐?”가 누군가 댓글로 비판했고, 다시 누군가 그게 뭐 어떠냐고 댓글을 달았다. 그렇게 내 페이스북에서 댓글 전쟁이 일어났다. 나중에 내 페이스북에서 그런 논쟁을 벌여 미안하다고 한 분이 퇴장했고, 나는 얼마 후 포스팅을 내란 것 같다.

목사의 이중직도, 불교 혹은 절터에 대한 내 태도가 사실 요즘 목사 중에도 일부에겐 문제가 되지 않는 듯하다. 나는 도리어 아직도 목사의 이중직이 문제가 되곤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저자 최광주 목사님과는 알고 지낸 사이다. 이미 일하는 목회자로 충분히 귀한 분임을 알고 책이 서점에 나오기 전 서점에 예약했다. 책을 읽으며, 늘 웃는 분, "동네책방, 괜찮아"에서 ‘독·께·비’(함께 독서하며 비 맞는)독서 모임이 있던 날, 처음 만난 그날도 잠깐 짬을 내 일터에서 도착, 메밀 칼국수를 사주신 그분이 그렇게 치열하게, 그렇게 낮아진 곳에서 묻고 고민하며 답을 내며 지금의 자리에 있게 된 걸 처음 알았다. "동네책방, 괜찮아" 한 켠 꽂혀있는 책들을 보았지만, 목수 일과 목사 일을 겸하면서 어떻게 책 읽을 시간이 있을까 싶었는데, <텐트 메이커>를 읽으면서 다양한 분야의 책을 탐독하며 고뇌하고 씨름하는 날들을 보낸 것도. 그래서인 듯하다. 저자의 생각은 지구의 입자(<박상설의 자연수업>에서 빌려온 말)로 지구에 덜 해롭게 살 수 있는 삶까지 이른다. 사람뿐 아니라 다양한 생명을 포괄하는 지구까지 품는 목회자라서 더 좋다. 교회 목회자만이 아니라 교우들이 굳이 논쟁이 될 필요도 없는, 이중직이라는 주제보다는 개인과 가정과 사회, 나아가 지구의 아름다운 보존을 위해 충실하기로 한, 한 사람의 분투를 일어낼 줄 안다면 오늘 사회로부터 비난받는 교회, 교우의 미래가 조금은 더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무신론자가 읽어도 좋겠다.


어제 청어람에서 각각 다른 모양으로 일하는 분들이 모였다.  텐트메이커를 놓고 자유로운 대화모임을 가졌다. 이분들이 하는 일이 겉보기에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목회가 아니지만 나는 목회라 말하고 싶고, 또 한편으로는 목회 만큼이나 어떤 노동도 소중하기에 굳이 이분들이 하는 일을 목회라고 말하고 싶지  않기도 하다.




모임을 마치고 최주광 목사님이, 자신이 어두운 길에서 돌이켜 지금의 모습으로 된 건, 절대적으로 어머니의 삶으로 가능했다고 했다. 책에는 다 기록할 수 없는 어머니의 헌신과 수고, 그분의 삶이었다고.


그때 나는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습관이 한번 무너져, 그 습관을 회복하기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내 기억에 깊이 남아있는 성경 구절'이 떠올랐다.


“다만 여러분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거룩하게 대하십시오. 여러분이 가진 희망을 설명하여 주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답변할 수 있게 준비를 해두십시오. 그러나 온유함과 두려운 마음으로 답변하십시오. 그리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여러분의 선한 행실을 욕하는 사람들이, 여러분을 헐뜯는 그 일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_(새번역) 베드로전서 3장 15, 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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